[무용리뷰] 몸 기억과 흔적, 역사를 풀어낸 창작 발레…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기사입력 : 2019-05-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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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5월 11일(토) 오후 여섯 시 반,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조기숙 뉴발레단(예술감독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이 기획・공연한 러닝타임 한 시간에 걸친 한혜주(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안무의 창작 발레 <몸 이야기>는 다섯 무용수들(홍세희, 한혜주, 정이와, 최유나, 천소정)이 자신의 몸에 담긴 기억과 흔적 그리고 역사를 담담하게 춤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춤의 외침(cri de danse), 발레리나들은 신체의 각 부분과 다양한 동작, 의미 있는 상징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왔다. 무용수는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이것을 근육과 세포에 새기며 춤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과 광야를 걸어가는 순례자와 같이 춤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세상과 만나며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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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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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몸으로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자신(몸)을 온전히 인식하여 내재된 잠재력과 독창성을 발견하는 과정, 몸에 새겨진 기억과 흔적, 역사를 드러내는 과정, 자신을 포함한 세상과 소통하며 춤으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관객들은 발레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뉴발레의 기본질서로 파악한다.

이번 공연의 몸 이야기는 공연당사자(performer)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해설자(한혜주)는 “무용수들이 숨을 쉴 때 함께 숨을 쉬어 주십시오. 이들이 움직일 때 함께 파동을 느껴주십시오. 공간을 뛰어다니고 멈추어 섰을 때 온몸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설득하며 관객들을 무대 위로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몸 이야기>는 프롤로그, 1장: 숨을 쉬다, 2장: 몸을 깨우다, 3장: 기억을 만나다, 4장: 춤으로 삶을 이야기하다,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작품을 견고하게 떠받히는 음악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다지오’, 막스 리히터 재구성의 비발디의 ‘4계’, 음유시인 에스타스 토니의 ‘내부비행’(Internal Flight)이다. 음악은 치유와 명상으로 유도하듯 몸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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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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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프롤로그: 세 개의 대형 천이 내려와 있다. 탑 조명을 받은 검정 블라우스의 여성 해설자는 토크쇼를 하듯 부드럽게 몸을 이야기한다. 무용수는 춤으로 삶을 살아낸다. 몸에 깃든 기억, 흔적 그리고 역사를 풀어내며 춤추는 무대에 자신을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살아 숨 쉬는 춤이 몸을 이야기하면 네 장(場)에 담긴 여성들은 자신의 프레임 안에서 주인공이 된다.

1장, 숨을 쉬다: 소정에게 무용실은 쉴 새 없이 바쁜 일상에서 유일하게 숨을 쉬게 하는 공간이다. 그에게 '숨'은 자신을 온전하게 인식하게하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한다. 숨을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근육과 근육, 세포와 세포 사이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하나의 숨으로 시작된 몸짓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으로 확장된다. 숲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2장, 몸을 깨우다: 유나가 공간으로 뻗어나가는 움직임을 할 때 온 몸의 근육에서 기분좋은 감정들을 뿜어져 나왔다. 그 기쁨을 누리고자 더 멀리, 더 높게 움직여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근육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감 있게 뻗었던 몸짓이 사라지고,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몸 안 갇힌 감정들이 나의 등, 어깨, 발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낯설고도 반가운 감정들이 터져 나온다. 몽유도원에서 정제와 음미의 의미를 깨닫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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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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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3장, 기억을 만나다 : 세희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추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꿈과 상상이 가득했던 춤추는 그 순간을 행복해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연의 모습을 가린 채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하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멈춰있을 때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네 자신을 믿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라.’ 수정의 묘를 보인다.

4장, 춤으로 삶을 이야기하다: 이와는 깊은 고민과 숙려 끝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자신의 삶 속에서 진행 중인 춤의 한 조각이 응축되어 터져 나오는 한걸음이다. 그 걸음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삶의 이야기가 새겨진다. 우리는 모두는 그 길 위를 걷고 있다. 쉽지 않은 한 걸음을 내딛으며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낸다. 상호보완적 존재의 새로운 발견이다.

에필로그: 숨을 잘 쉬고 있는지, 내 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온전 나(몸)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몸에게 물어본다.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의 몸은 어떤 춤을 추고 있나요? 각기 다른 색깔의 의상이 상징하는 마음의 행로는 자신의 현재와 연관되어 있다. 일렁이는 마음들은 자신의 몸 이야기를 통해 차분히 가라앉는다. 신화로 묻어둔 몸이 디지털의 띠를 두른다.

조기숙 뉴발레단은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에 의해 창설(2005년)된 단체로 매년 신작 창작발레를 발표하는 아시아 유일의 발레단이다. 서양발레에 한국적인 내용과 미학을 기반으로 K-발레를 구축하고 있으며 21세기 한국에 맞는 컨템포러리 발레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이들의 저력은 한국 발레계의 미래이자, 나아가 대한민국의 순수 예술계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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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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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 이야기'

조기숙 뉴발레단은 14년간 18편의 신작을 발표하는 등 치열한 작품활동을 통해서 한국에서 아주 드물게 조기숙 류(유파)의 발레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몸 이야기>는 조기숙 뉴발레단이 추구하는 강도있지만 부드럽게 절제된 발레의 형식과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창조적 작인(作因)은 ‘시원을 거슬러 몸에 이르기’이다. 넓은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몸을 조망하는 작업은 대나무 숲에서 이원의 화사를 떠올리는 숭고미를 보여주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시대이다. 이번 공연은 길게 내려진 천이 사연을 담아 미풍에 살랑대는 스커프로 보이게 하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 조기숙 뉴발레단 주요작품

2018.6.5. <Contact and Connection>. 이화여대 삼성홀

2017.11.17. <감각, 체화 그리고 넘나듦>. M극장

2016.5.13.~14. <그녀가 운다-여신 무산신녀>. 이화여대 삼성홀

2015.5.15.~16. <그녀가 논다-여신 항아>. 이화여대 삼성홀

2014.9.25. <감각의 몸>. 이화여대 삼성홀

2013.6.1. <그녀가 온다 – 여신 서왕모>. 이화여대 삼성홀

2012.11.5. <Practice as Research>. 창무 포스트 극장

2011.5.12~13. <백조의 호수 Ⅳ -사랑에 통하다>. 이화여대 삼성홀

2010.5.13~14. <백조의 호수 Ⅲ-사랑에 빈하다>. 이화여대 삼성홀

2009.11.20. 포킨의 밤 <빈사의 백조>, <불새>. M 극장

2009.5.22~23. <백조의 호수 Ⅱ-사랑에 취하다>. 서강대 메리홀

2008.5.17. <백조의 호수 Ⅰ-사랑에 반하다>. 서강대 메리홀

2006.4.15. <꼼뽀지숑>. KBS홀

2005.4.8.~9. <몸놀이>. 호암아트홀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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