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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치료의 신세계 줄기세포(39)] 첨단 의료 규제, 희귀 난치병 환자 버리고 제약사만 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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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치료의 신세계 줄기세포(39)] 첨단 의료 규제, 희귀 난치병 환자 버리고 제약사만 살리나?

첨단 의료 규제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희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첨단 의료 규제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희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된다. 사진=로이터
최근 한국의 줄기세포 규제 환경이 제약 산업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정된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상업적 이익에 치우친 측면이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첨단바이오재생법은 바이오기업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힘입어 개정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임상 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 가능성이 명시됐다는 점이다.
기존 법안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상업적 시도를 제한해 왔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제약사들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임상 시험이 필수적이다. 임상 시험은 재료를 준비해 시험 방법을 정하고 통계적 의미를 도출하도록 시험적 모델을 운영해야 한다.
현재 이러한 연구는 대학 병원에서 제약 회사의 제안을 통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 병원에서 암 환자 등 희귀 난치병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임상 시험을 실시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이 과정을 통해 제품이 기획되고 이후 정식으로 IND(Investigational New Drug) 임상 시험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임상 시험에 들어가게 된다. 보통 이 단계는 제품 출시 전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특히 난치병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보통 1인당 1억 원으로 매우 고가에 형성되어 있다. 수백 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창기 법 제정시 환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 다만 규제로 인해 연구 활동을 크게 저해해 결과적으로 한국이 국제적으로 줄기세포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조항이 변경됐다. 기존 법안 제10조는 희귀 난치병에 대한 임상 연구를 시행할 때 복지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으나 개정된 법안에서는 단순히 임상 연구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첨단 의료의 실시'에 대해서도 승인을 받도록 범위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모든 의사들이 줄기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조직공학 치료, 융복합 치료 등 선진적인 치료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매번 정부의 허락을 새롭게 받아야 한다. 이는 치료 방법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거나 실시 기관이 바뀌는 경우에도 매번 새롭게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러한 규제의 강화는 특히 의료 수가에 대한 엄격한 한국에서 첨단 치료법을 시도하는 데 상당한 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직 제약사와 협력하는 일부 대학 교수들만이 첨단 의료를 실시해 1~2% 정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병원 주도로 첨단 의료 기술을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법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심지어 5년 이하의 징역을 살 수 있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됐다.

이 같은 규제의 주된 목적은 소를 키우거나 양계장을 경영할 때 허가가 필요하듯,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닭에게 아무리 인삼을 먹여도 달걀은 달걀인 것처럼 생명체가 관여하는 제품들은 생명체를 새로 개발하지 않는 한 최종 결과물에 큰 차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생명체는 오류가 생기면 스스로를 파괴해 변이를 막는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서는 매일 수천 개의 암세포가 발생하지만 자연적으로 제거된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청(FDA)을 상대로 의사 주도의 줄기세포 치료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승소했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자연의 법칙을 인위적으로 막아놓는다면 엉뚱한 물길이 생기게 된다.

세포 배양에서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특성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지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발상이 어디서 왔을 지는 명백하다.

배양 과정의 규제는 그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병목 지점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을 위해 모든 제약사의 세포 치료제는 배양 과정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배양을 거치지 않은 세포 치료는 효과에 한계가 있으며 경제성도 없다.

줄기세포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배양 없는 치료는 막지 않아야 한다.

줄기세포 치료 수요를 효과가 제한적인 비배양 치료로 충족하려고 보니 관련 의료기기 상품들의 과장된 광고로 엉터리 진료(Malpractice)가 넘쳐나고 있다.

수명 연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권리다. 그러나 임상 시도와 논문을 통해 수명 연장 효과가 통계적으로 입증되더라도 이를 국가 보험 급여로 인정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 클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제약산업의 독점적 요구와 국가적 책임감이 서로 결합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화는 불가피하다. 다만 너무 이른 시기에 예방 조치를 취한다면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방어적인 태도로 인해 우선적으로 규제를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의료 분야에서도 관찰된다. 바로 방어 진료다. 응급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요하는 의료진에게 과도한 처벌이 내려질 경우 오히려 불필요한 검사와 조치 등을 촉진할 수 있다.

이번 법 개정에 대해서도 반감은 없으나 이에 편승해 효과없는 치료로 이익을 추구하는 전 세계 의료진들의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바로 이들 때문에 이런 규제가 생겨난 것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지만 일본을 제외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고가의 배양 세포가 주요 문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징역형보다 더욱 가혹한 민사 배상으로 인해 거짓말이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미국의 법정 판결은 필자가 고안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급한 지방줄기세포(SVF) 시술이 인정돼 승소할 수 있었다. 승소의 결정적 요인은 지난 2008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식약처가 허가한 효소처리가 장기간 동안 문제가 없었다는 식약처의 공식 문서다.

항소심에서도 승소가 확실시 되어서 이제 세계 의료 분야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배양에 대한 규제가 곧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직면한 고민은 현재 치료 중인 희귀 난치병 환자들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환자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비용을 책정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는 무료 진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환자가 겪는 인생의 상실감과 특히 나이가 어린 환자와 가족들이 처한 상실감을 고려해 지난 2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의 규제 환경에서는 법적 처벌의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됐다.

희귀병 임상 시험의 승인 절차가 간소화되더라도 초기 비용과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정부가 희귀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법이나 사례를 마련하지 않는 한 이러한 고민과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치료 중단을 알려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들은 강경한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한다. 법적 처벌의 위험만 없다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생각이다.

결국 미래 의료의 방향성은 자가 치료에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것이다. 자조적이지만 한국은 '선견지명'(?)으로 자가 치료로 떠미는 것 같다.

인공지능(AI)이 의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시대에 적절한 첨단 장비만 있다면 당장 해결될 수 있다. 이미 인슐린이나 체중 조절, 항노화 호르몬 등은 자가 주사로 해결하고 있다. 원격 의료가 허용된다면 좀 더 수월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 비용의 대폭 감소와 더불어 행복 추구권과 자기 결정권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가족과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근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 의료는 아직 꿈이다. 10년 전에 줄기세포 치료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 이희영은 누구?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은 1991년 성형외과 전문의로 의료계에 발을 내디딘 후 지방 성형을 자주 접하면서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대량 지방이식을 시작했다. 특히 전문의로서 지방조직을 연구하던 중 의대에서 배운 것과는 다소 다른 지방이식에 관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줄기세포치료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2007년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를 설립, 동료 의사들과 함께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희영 대한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