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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 경영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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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 경영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2)] 문어발 경영의 문화적 배경

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이 지난 10월 23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이 지난 10월 23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주가 시세조종 혐의로 금융감독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1998년 인터넷 게임 포털 '한게임'을 창업해 '네이버'와 합병했고, 2008년에는 '카카오톡'을 출시하며 IT업계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4년 포털 '다음'과 합병한 후 문어발 확장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4월 계열사를 30~40개 줄일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계열사는 계속 늘어나 2023년 8월 현재 144개로 문어발 확장이 계속됐다.

이런 방만한 경영이 계속되는 가운데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김 창업자와 카카오까지 처벌 위기에 몰렸다. 주가조작이 인정돼 카카오뱅크 경영권을 상실하면 카카오 생존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카카오가 과연 20세기 말 외환위기 당시 사라진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에서 벗어나, 21세기 한국 경제를 이끌 ‘벤처 신화’로 평가받던 초기의 혁신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한다.
이처럼 대기업 집단이 특정 전문 분야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업종 분야를 넓혀가는 소위 ‘문어발 경영’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비단 카카오 집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국내 최대의 재벌그룹인 삼성·현대·SK 등도 ‘사업 다각화’라는 미명 아래 많게는 수백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자회사(子會社)’들을 거느리고 있다. 중소기업도 이에 질세라 여건이 된다면 ‘문어발 경영’을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문어발 경영은 어느 한두 집단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식 경영의 특징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 父子 중심의 문화


많은 경영학 서적에서 소위 ‘재벌(財閥)’을 한국식 기업 경영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재벌을 ‘chaebol’이라고 영어로 표기하면서 ‘기업집합체의 한국적 형태’라고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재벌은 주로 가족이나 친척으로 구성된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재벌은 다양한 영역에 걸친 계열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고, 대개 창업자나 창업자의 자녀가 경영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각의 계열 기업체들은 형식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상호출자’ 등의 방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창업자는 기업을 시작한 후 여러 영역에 걸친 계열사를 거느리며 각각의 아들들에게 개별 기업체를 운영하게 한다. 각각의 기업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맺어지면서 재벌을 형성하게 되고, 그 정점에 창업자가 있게 된다. 또한 처음 시작한 기업을 중심으로 각각의 개별 기업체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개개의 기업체는 ‘자회사(子會社)’, 즉 아들회사가 된다.

이런 문어발 경영의 모습은 비단 경제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학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교육부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의 특징이나 대학의 설립 목적에 맞게 특화된 학과 운영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권장은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다. 미국 대학의 경우 하버드(Harvard)나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처럼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학교(university)도 있다. 하지만 지역이나 설립 목적에 맞게 특정 학과를 집중 육성하고 있는 대학들이 허다하다. 예를 들면,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Hawaii) 대학교의 경우 해양생물학은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 특징을 살린 문화인류학 분야도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심리학의 한 영역인 ‘심리학적 인류학(psychological anthropology)’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랜시스 슈(Francis Hsu, 1920~1973)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가족 관계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 즉 ‘부자(父子)’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 부자 관계의 특징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부자(父子) 중심의 문화는 ‘포괄성(包括性)’이라는 특징이 있다. 포괄성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일정한 범위나 한계 안에 모두 끌어 넣는 성질’을 의미한다. 문어발 경영이나 재벌체제는 이런 우리 문화의 포괄적인 속성이 잘 드러나 있는 현상일 뿐이다.

재벌체제나 문어발 경영은 한국 특유의 기업경영형태

부자 중심의 문화에서 포괄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가정이나 한 부모 슬하에 여러 아들을 두고 싶어 한다. 만약 외아들일 경우 혹시나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만약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夭折)이라도 한다면 대(代)가 끊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염려가 현실로 드러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지난 7월 19일 오전 폭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작전 중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모든 죽음이 다 안타깝지만 특히 채 상병이 외동아들이고 장손(長孫)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서로 개성이 다른 여러 아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 부모는 모든 자식을 품에 안는 포괄성을 가져야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들이 많은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문을 지키는 데 더 효과적이다. 환경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다양성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 중에 의사‧판검사가 있어야 든든하다”라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아들이 없으면 이런 직업을 가진 사위라도 얻으려고 “열쇠 세 개”를 혼수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한두 형제가 잘되면 다른 형제들이 어렵더라도 서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경북 영주 출신의 3형제가 각각 은행장, 검찰총장, 금감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대표적인 집안으로 많은 부러움을 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포괄성은 기업 경영이나 대학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교육제도에서도 이런 포괄성이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과목만 잘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 여러 과목을 골고루 다 잘해야 한다. 한 과목만 잘하고 다른 과목들을 잘못한다면 내신 성적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교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공부하는 데 들어가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특출난 업적을 남기기보다 여러 방면에 두루두루 잘하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인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 체육심리학자는 우리 교육의 이런 특성을 ‘동물올림픽’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올림픽을 하면 오리가 금메달을 딴다. 오리는 호랑이보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땅에서 뛸 수 있다. 오리는 독수리보다 더 높이 날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날 수도 있다. 오리는 상어보다 멀리 헤엄칠 수는 없지만, 물에서 헤엄칠 수는 있다. 땅·하늘·물에서 다 살 수 있는 것이 오리다.” 하지만 올림픽의 목표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이다. 포괄적인 교육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 돼가고 있다.

다양성이 유리할 수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엔 한 분야에 역량 집중 중요


포괄적인 특성은 식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음식물은 처음부터 골고루 차려져 있다. 밥, 국, 반찬들이 식사를 시작할 때 이미 다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밥을 국에 말아서 먹는다. 국에 만 다음 숟갈에 밥을 퍼서 그 위에 반찬을 올려놓고 입으로 가져간다. 우리 음식의 진정한 맛은 입에서 여러 다양한 음식물이 섞일 때 나오는 오묘함에 있다. 양식처럼 한 품목씩 차례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처음 시작 때부터 설렁탕이나 곰탕, 해장국 등은 아예 밥과 국이 함께 말려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음식 중에서 ‘비빔밥’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포괄적인 문화적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비빔밥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의 포괄적 속성은 ‘의복(衣服)’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한복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 꼭 맞도록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성들이 입는 저고리나 치마도 비슷한 몸매를 가진 여러 여성들이 다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다만 고름을 조금 더 여미거나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남성들이 입는 의복은 말할 것도 없다. 윗옷은 물론이고 바지나 두루마기도 키만 비슷하면 거의 모든 남성이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문화는 이처럼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계속 변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들딸을 많이 낳기는커녕 걱정될 만큼 출산율이 낮다. 이제는 ‘퓨전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양식처럼 한 품목씩 차례로 제공되기도 한다. 또 한복보다는 양복을 입는 것이 대세다. 이제는 고만고만한 ‘아들회사’를 여럿 가지고 있는 것보다 역량을 집중해 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추세다. 카카오 집단의 문어발 경영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다. 미래가 불투명하면 다양한 영역에 발을 뻗는 포괄적인 특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