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항공모함이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서도 마침내 항모 도입이 구체화 되고 있다. 미·중이 운용하는 중대형급 항모는 아니지만, 헬기 외에도 최신 함재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 도입 계획이 발표되었다. 경항모는 만재배수량 3만~4만t급 규모의 항모다.
경항모 도입은 지난 8월 10일 국방부가 발표한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서 공식화됐다. 국방부는 “경항모 확보사업을 2021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경항모급 상륙함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중기국방계획은 문 대통령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부가 발표한 경항모는 대략 3만t급 규모다. 여기에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운용한다는 계획이다. 해군 전력에 항공모함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군 안팎에서는 그 규모를 놓고 3만t급 경항모설과 7만t급 중형 항모설이 엇갈렸다. 최근까지도 항모 도입 찬성론자를 중심으로 이왕 항모를 운용하려면 중형급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국방 예산, 도입 후 운용비 등을 고려해 3만t급의 경항모가 적절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경항모는 현재 개념설계와 선행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33년쯤 전력화할 예정이다.
1996년 4월 당시 안병태 해군참모총장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수직이착륙기 20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항모 도입계획을 재가 받았다. 그 배경엔 이케다 유키히코 일본 외무상의 ‘독도는 일본 영토의 일부’라는 망언이 배경이 됐다. 당시 국방부는 2만t급 항모 건조 계획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해 서울에어쇼에는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국산 경항모 모형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추진되던 당시 계획은 육군 측 의견을 주로 반영한 국방부와 합참의 반대로 관련 연구개발비가 전액 삭감되면서 유야무야 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였다. 또 “한반도 자체가 불침항모(不沈航母,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인데 “항공모함이 왜 필요하냐”는 반대 논리도 강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항모 도입 검토는 있었다. 2013년 10월 최윤희 합참의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형 항공모함 필요성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무선에서 검토에만 그쳤을 뿐 추진하지는 못했다.
항모 도입 반대의 목소리가 더 높았지만 최근 들어 도입 찬성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는 데에는 우선 주변국 해군력의 급속한 강화 움직임 때문이다. 일본은 2015년과 2017년 취역한 이즈모급 헬기 탑재 호위함 2척을 F-35B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게 항모로 개조하고 있다. 개조 완료 시점은 2023년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온 항공모함을 개조해 2012년 랴오닝함을 진수 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국산 항공모함인 산둥함도 만들었고, 2030년까지 항공모함 4척을 확보할 계획이다.
국내의 국방전문가들은 “미군에 항상 기댈 수는 없고, 중국에 이어 일본도 항모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동북아 군비경쟁이 극심해 한국도 자체 보유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2020-2024 국방중기계획과 해군력 발전’ 문서에도 “해군은 수상·수중·공중 작전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입체 작전과 연근해뿐만 아니라 향후 원해에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경항모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선진적 조선 기술로 볼 때 항모 건조 능력은 충분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건조 비용과 향후 운영비를 놓고 봤을 때 한반도 근해에서 경항모의 가성비는 논란거리다. 경항모 자체 건조비만 2조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함정 운영비용은 연간 1000억~2000억 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또 여기에 탑재할 F-35B 도입을 놓고도 이견이 많다. 비용에 비해 무장탑재 능력 등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공군 측은 내심 F-35A 추가 도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게다가 항모를 보호하기 위한 호위 함대를 충분히 확보해 운용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더 들어가게 된다.
항모 도입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계속 되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는 “현재 전력으로도 한반도 전체를 방어하기 충분한데 항모가 왜 필요한가.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반면 “경항모가 아닌 중형항모급 능력을 갖추도록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오히려 규모가 더 큰 항모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항모는 단거리 또는 수직이착륙기 외에 기동이 불가능해 미군이 운용하는 함재기인 F35-C 등을 운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란에 대해 국방부 측은 “그동안 제기된 논란과 찬반 목소리를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 “다양한 여론과 급속히 변화하는 동북아 해상 정세 등을 충분히 감안해 신중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미국은 제7함대에 항공모함 2대를 추가 배치해 아시아에서 급성장하는 중국 해군력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가 모항인 로널드 레이건호(CVN-76)와 최근 추가 배치된 시어도어 루스벨트호(CVN-71), 니미츠호(CVN-68)까지 모두 3대의 항공모함이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배치돼 있다. 세 척의 항모에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해상작전 헬기 등 각각 70여대의 항공기가 탑재되어 있다. 미국의 3개 항모전단의 전력가치는 45조 원에 이른다.
러시아 군사 전문지는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1대를 격침하기 위해서는 중국 해군력의 40%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에 실전 배치된 이 항공모함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크고 비싼 항공모함이다. 건조 비용만 29억9800만 달러(약 14조5770여 억 원)가 들었다. 제럴드 R. 포드는 길이 320m, 높이 30m, 넓이 76m에 배수량 11만2000t의 초대형 항모로 2기의 원자력 발전기에서 동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최신형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전투기를 포함해 90여대의 항공기가 탑재돼 있다. 하루 220회 작전을 소화할 수 있고 무인전투기 이착륙까지 가능한 항공모함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모함 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수 십여대의 함재기 외에도 항모 전단에는 막강한 화력을 갖춘 각종 전투함이 포진해 있다. 미 7함대의 경우 항모 1척에는 구축함 4척, 이지스 순양함 2척, 유도미사일 장착 구축함 2척, 공격용 잠수함 4척,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 2척, 대잠함 정찰기 편대, 보급선 2척, 기함 1척, 병원선 1척이 함께 배치된다. 여기에 해병 1개 연대급 전투병력도 운용한다. 미국은 핵 추진 항공모함 등 모두 12척의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항모 공격용 무기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東風·DF)-26 중거리 대함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섰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는 “북한도 대함탄도미사일 개발에 나선 상태”라고 전했다.
우리 군은 최근 차세대 전투기(FX) 2차 도입 규모를 당초 계획의 두 배로 늘리고, 경항공모함에 실을 수직이착륙형 스텔스 전투기도 들여오기로 했다. 사업 규모만 8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는 당연히 경항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F-35 40대를 추가로 도입하기로 했다. 당초 20대에서 두 배로 늘린 것이다. 이중 '한국형 경항모'에서 출격할 수 있는 수직이착륙형인 F-35B 기종 20대를 먼저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F-35A 20대를 추가로 들여올 복안이다. 군 당국은 최근 이 같은 계획을 세우고 오는 10월에 열리는 합동참모회의에서 최종 승인할 방침이다. 군 소식통은 "당초 차세대 전투기(FX) 2차 사업의 규모는 20대였지만 경항모 도입에 맞춰 두 배로 늘리고, F-35B의 도입 일정도 앞당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2030년께 경항모 건조를 완료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개념 설계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기본설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갑판 등 함체 주요 부위의 설계를 위해선 F-35B의 상세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제조사인 록히드마틴 측은 보안을 이유로 계약 이전엔 정보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군은 구매 계약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 타당성 검토 등을 마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총사업비는 약 8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2021~2022년 사이 계약이 마무리되면 2020년대 중반부터 인수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F-35B는 경항모에 싣더라도 해군이 아닌 공군이 운용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졌다. 공군이 전체 도입 계획을 주관하고 이후 교육과 운용을 전담한다는 것이다. 항모 탑재기 비행을 공군이 전담하는 건 영국군 등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최근 국방부의 경항공모함 추진 계획과 관련해 “전체 구성과 운용에 30조~40조 원이 들 것”이라며 ”우리 안보 위협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전력에 이런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경항모 건조에 1조8000억 원, 탑재 항공기 확보에 3조~4조 원이 드는 등 경항모 구성하는 데만 5조 원이 들어갈 것”이라며 막대한 사업비를 강조했다. “경항모를 바다에 띄우려면 경항모를 적의 유도탄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지스함 2~3척이 필요하고 차기 호위함도 있어야 한다”며 “고속항진하는 경항모 선단과 동조 기동할 수 있는 원자력추진잠수함도 최소 1척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다 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2조 원이 들고, 여기에 운영유지비까지 다 포함하면 30조~40조 원이 들어가게 된다”고 추산했다.
일부 의원들은 “우리 안보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과 장사정포 위협이 우선적인 위협인데 이런 막대한 비용을 이런 직접적인 우리 안보 수요와 연관이 없는 곳에 넣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원해 해상교통로 방호를 위해 경항모가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논리에 대해선 “원해 해상교통로는 외교로 풀어야 한다”고 일축하고, “말라카 해협이나 호르무즈 해협 등 해상교통로가 한 번도 차단된 적이 없다”며 “이런 원해의 해상로 방호는 군사력이 아니라 한-미동맹과 아시아 인근 국가들과의 외교 협력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도 “현재까지 연구한 바로는 경항모 자체의 건조 비용은 ‘2조 플러스 알파’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항모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항모용 전투기라든지 지원 장비가 들어가면 상당히 많은 액수가 필요하다”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경항모는 30년, 50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전력이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사업을 하면 결국 최소 13~15년, 또는 그 이상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연간 투자되는 비용이 우리 국방비용 예산 범위 안에서 수용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 추진까지는 아직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자명하나 F-35B 도입 등 실제 예산은 훨씬 일찍 집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경항모 사업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다만 경함모 운용에 있어 재원이 과연 국방비에서 커버될 수준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