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파워칩 반도체 제조회사(PSMC)가 일본 SBI홀딩스와 추진하던 일본 내 칩 공장 건설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PSMC는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의 과도한 지원 조건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을 고려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닛케이가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PSMC는 당초 SBI홀딩스와 손잡고 일본 미야기현에 8000억 엔(약 7조3843억 원) 규모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일본 정부는 최대 1400억 엔(약 1조2923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미야기현을 '칩 허브'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PSMC는 "일본 정부가 지원 조건으로 최소 10년 동안 대량 생산을 유지하도록 요구했고, 이는 대만 법률에 위배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경쟁사의 저가 공세 속에 수익성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PSMC는 일본 대신 인도 시장에 베팅했다. PSMC는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과 손잡고 구자라트주에 300mm 웨이퍼 팹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총 109억 달러가 투입되는 이 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전력 관리 및 디스플레이용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인도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PSMC는 타타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인도 시장을 선점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PSMC 회장을 직접 만나 "인도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PSMC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SBI홀딩스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SBI는 미야기현을 칩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반도체 산업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PSMC와 같은 규모의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BI는 최근 일본의 AI 유니콘 기업인 프러퍼드 네트웍스에 약 100억 엔(약 923억 원)을 투자하는 등 활로 모색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고 미야기현 칩 허브 구축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대만 PSMC의 일본 투자 철회와 인도 진출 결정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투자 결정을 넘어 국가 간 반도체 산업 경쟁과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먼저, PSMC의 결정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차질을 빚게 했다. 일본은 미야기현을 '칩 허브'로 육성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주요 파트너의 이탈로 인해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활 노력에 일시적인 후퇴를 의미할 수 있다.
반면, 인도는 PSMC의 투자 유치로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큰 동력을 얻게 되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직접적인 요청이 보여주듯, 인도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인도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PSMC의 결정 배경에는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있었다. 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번 변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인도의 반도체 산업 성장은 한국 기업에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인도와 같은 신흥 시장에 대한 전략을 재검토하고, 적극적인 진출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인한 위협은 더욱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해 한국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기술 혁신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PSMC와 타타그룹의 협력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기술 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협력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의 사례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효과적이면서도 유연해야 함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을 재점검하고, 글로벌 환경 변화에 맞춰 적절히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