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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갈림길... 합의 방식의 한계와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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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갈림길... 합의 방식의 한계와 새로운 도전

변화하는 지정학 속 아세안 방식의 효용성 의문
생존을 위한 제도적 개혁과 정치적 용기 필요
아세안 로고가 4월 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장소 밖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아세안 로고가 4월 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장소 밖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로이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오랫동안 지역 안정과 조화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지만, 현대 지정학적 도전에 직면해 그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대립과 합의라는 '아세안 방식'이 과거에는 탈식민지 국가들을 통합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도구였지만, 오늘날 이 방식은 긴급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남중국해 분쟁은 아세안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 함정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영해를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구속력 있는 행동 강령 제정을 위한 베이징과의 협상이 20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집단행동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정치 위기도 비슷한 문제를 노출시켰다. 폭력 사태 완화를 위한 5개 합의가 군부의 무시로 효과가 없었고, 회원국들은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나, 태국과 베트남은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며 주저하고 있다.

더욱이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의 국내 정책이 새로운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3월에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2011년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기록했고, 루피아화는 199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간인 문제에 대한 군의 개입 증가와 다난타라 국부펀드의 투명성 부족은 거버넌스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이 아세안의 단합을 시험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안보 동맹 구축, 외교적 관여 강화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 중이다.

이러한 압력은 기존 분열을 악화시켜,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미국의 참여를 환영하는 반면, 다른 회원국들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로 베이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세안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운영 방식의 재고가 필요하다. 유럽연합과 같이 보다 유연한 모델, 즉 '아세안 마이너스-X' 접근법을 확장하여 같은 입장의 회원국들이 긴급한 문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접근법은 합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아세안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최적화해야 한다. 이 무역 협정은 무역장벽을 낮추고 지역 공급망을 강화할 플랫폼을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회원국이 동일한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저개발국 지원과 경제적 의존도 분산이 중요하다.

제도적 개혁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아세안의 미래는 정치적 용기에 달려 있다. 투명성 제고와 시민사회 참여를 통한 대중 신뢰 회복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 디지털 거버넌스, 기후 회복력 같은 신흥 분야에서 아세안은 규칙을 만드는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는 분열된 환경 속에서도 통합된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아세안이 이 역할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하지만, 변화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소극적 대응이 아닌 과감한 주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아세안이 실패한다면, 다른 세력이 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