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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KF-21, '수출의 벽' 넘으려 엔진 교체하나...영국 롤스로이스, GE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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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KF-21, '수출의 벽' 넘으려 엔진 교체하나...영국 롤스로이스, GE에 도전장

미국 수출 통제에 발목 잡힌 KF-21...영국 "공동생산으로 위험 줄이고 기간 단축"
굳건한 한미동맹, 무역흑자 변수… 기술자립·외교관계 등 복잡한 셈법
자카르타에서 열린 방위산업 전시회에 전시된 한국산 KF-21 전투기 모형. 사진=EPA/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자카르타에서 열린 방위산업 전시회에 전시된 한국산 KF-21 전투기 모형. 사진=EPA/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차세대 엔진으로 자국 기업 롤스로이스를 참여시키기 위해 총력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는 이같은 움직임이 현 공급사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견제하고, 한국과의 방산 협력으로 자국 산업 기반을 재건하려는 영국의 전략적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 수출길 막는 美 기술 통제… 대안 부상한 '공동 생산'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GE 에어로스페이스의 기술을 빌려 KF-21의 현 세대 엔진을 생산한다. 그러나 미국의 엄격한 수출 통제가 KF-21의 수출에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미국의 기술 이전 제한 탓에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 잠재 구매국에 전투기를 팔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은 대안으로 자체 엔진 개발을 모색해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두산에너빌리티가 2030년대 중반 양산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KF-21의 엔진 개발 사업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끼어들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국방 전문가들이 주어진 기간 안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시각을 보이자 영국 관리들이 중간 단계로 해외 파트너와의 '공동 생산'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그 파트너로 자국 기업 롤스로이스를 내세운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국 관리는 "롤스로이스가 참여하면 사업 위험을 줄이고 일정을 앞당길 것"이라며 "이는 단순히 한국에 엔진을 파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엔진을 함께 개발하고 그 엔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롤스로이스는 공식 논평을 거절했지만, 인도의 자체 전투기 엔진 개발에 협력하길 원하는 등 다른 나라의 국방 역량 개발을 돕는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 '한미동맹'이라는 변수… GE도 사업 지속 희망


하지만 영국의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굳건한 한미 안보 동맹이 가장 큰 변수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미 해군 함정 건조 사업과 아시아 주둔 미군 전투기의 엔진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550억 달러(약 75조4215억 원)에 이르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라는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는 카드로 국방 조달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엔진 공급사인 GE 역시 KF-21 사업을 계속 맡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엔진 넘어 방산 전반으로… 깊어지는 한·영 협력


영국과 한국의 국방 협력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이뤄져 왔다. 롤스로이스는 한국 해군 호위함에 가스 터빈 엔진을 공급하며, KF-21의 사출 좌석은 영국 기업 마틴-베이커가, 미사일 시스템은 BAE 시스템스가 포함된 유럽 연합체 MBDA가 공급했다.

최근 양국 간 협력은 더욱 넓어지는 추세다. BAE 시스템스는 한화시스템과 손잡고 군사용 정찰위성 공동 개발에 나섰으며, 한화는 이미 BAE에 나토(NATO) 표준 155mm 포탄용 '모듈형 장약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화가 영국 안에 군수공장을 짓기 위해 BAE와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필요할 때 신속하게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상시 군수품 생산 능력"을 확보하려는 영국의 정책과 맞물린다.

이번 사안에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은 중요한 산업 파트너이며, 앞으로도 협력 기회를 계속 찾을 것"이라는 원론적 태도를 보였다.

GE 대변인은 "60년 넘게 한국의 믿음직한 파트너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검증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국 방위산업을 지원하고 앞으로의 사업에 기여하려 계속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은 "엔진을 해외 업체와 공동 개발할지, 어느 업체와 협력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국내 독자 개발과 해외 기술 협력 사이에서 기술 자립, 수출 규제, 개발 기간, 외교 관계 등 여러 요인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영국 롤스로이스가 적극 제안한 기술 협력은 한국 방위산업의 국제 관계망 확대, 기술 자립 가속화, 수출 다변화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략 동맹, 국내 기술 역량 확보, 산업 생태계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최종 파트너를 정하기까지는 상당한 검토와 외교적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KF-21의 '심장'을 누구와 함께 만드느냐가 앞으로 'K-방산'의 국제 경쟁력을 좌우할 가장 큰 관심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