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철수 속 페라리, 브랜드 정체성 걸고 전기차 시대 도전
비야디 양왕 등 중국 브랜드 전기 슈퍼카 공세 속 명차 브랜드의 생존 전략 시험대
비야디 양왕 등 중국 브랜드 전기 슈퍼카 공세 속 명차 브랜드의 생존 전략 시험대
이미지 확대보기로이터통신은 25일(현지시각) 페라리가 로마에서 루체 공개 행사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가격은 50만 유로(약 8억 8099만 원) 이상으로, 4도어 세단형 차체에 최고 시속 310km를 낸다. 오는 10월 첫 고객 인도가 시작된다.
"위험이자 모험"… 라이벌들이 멈출 때 페라리는 전진
경영 컨설팅 업체 그랜트 손턴 스탁스의 상무이사 필 던은 "이것은 위험이자 모험이지만 페라리가 선두를 이끈다는 점에서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페라리 자신도 두 번째 전기차 모델 출시를 수요 부진으로 2028년 이후로 미뤘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페라리가 루체를 내놓은 것은 시장 공략보다 브랜드 포지셔닝을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산업 분석업체 카 인더스트리 애널리시스의 펠리페 무뇨스는 "페라리가 루체를 대량 판매 모델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중국 경쟁자들이 화려한 신형 전기차 개발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페라리가 일종의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지금 당장 전기 슈퍼카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동화는 장기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다른 누군가가 먼저 정의하기 전에 페라리가 고급 전동화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체의 절반 이하 가격에 필적하는 성능을 내세운 중국산 전기 슈퍼카의 등장은 유럽 명차 브랜드들에 현실적인 경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12년 전동화 노정 끝에 탄생한 루체
루체는 하루아침에 나온 차가 아니다. 페라리의 전동화는 2014년 포뮬러원(F1)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도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2019년 첫 양산형 하이브리드 SF90 스트라달레를 출시하며 기술을 쌓아왔다.
최고경영자(CEO) 베네데토 비냐는 2021년 취임 이후 전동화를 가속했다. 마라넬로 본사에 전기차 전용 생산시설인 'e-빌딩'을 새로 지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 체계를 갖췄다.
루체에는 4개의 영구자석 동기 전기 모터가 탑재돼 4륜 구동을 구현하며, 1000마력 이상, 122kWh 배터리가 장착됐다.
루체의 외형과 실내는 전임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니 아이브가 설립한 스튜디오 '러브프롬(LoveFrom)'이 맡았다. 5년에 걸친 협업을 통해 완성된 실내는 터치스크린 대신 재생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촉각 중심의 아날로그 조작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원문 자료에 따르면 루체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하며, 외관은 기존 페라리 모델들과 확연히 다른 대형 차체를 채택했다.
페라리의 가장 큰 도전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도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배터리는 무겁고 가솔린 엔진의 지속적인 출력이나 감성적 호소력이 부족해, 기존 고성능 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라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파워트레인의 진동을 증폭해 전기차 특유의 '페라리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전용 음향 시스템을 개발했다.
던은 "페라리에 대해 모두가 연상하는 세 가지는 외관, 소리, 주행 느낌"이라며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전기 20% 목표로 낮춰… 내연기관·하이브리드와 병행
페라리의 전동화 목표는 현실에 맞게 조정됐다. 순수 전기차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기존 목표치 40%에서 절반으로 낮춘 것이다. 페라리는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모델 생산을 계속 이어간다.
비냐 CEO는 올해 2월 "고객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라며 루체 사전 예약을 3월부터 받겠다고 밝혔다. 페라리는 루체가 전통 고객층 전부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젊은 부유층은 전기차를 보다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란 전쟁으로 치솟은 유가도 전기차 매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던은 "루체가 페라리의 모든 고객에게 어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고객에게는 분명히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루체 한 모델의 성패보다 이번 공개가 유럽 명차 업계의 전동화 속도를 가름할 기준점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페라리가 어떻게 '페라리다움'을 전기차에 담아내느냐는 포르쉐, 아스턴마틴 등 라이벌 브랜드들이 전동화 속도를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