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우리가 마주 앉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뒤로 물러서서 모른 척 방관하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전문가와 석학들이 제기하는 인류 위협론은 결코 어떤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노린 가짜 뉴스가 아니다."
이 발언은 대서양 건너 워싱턴 백악관을 향한 직격탄이었다. 인공지능의 실존적 위협을 한낱 ‘사기극(Hoax)’이자 ‘역겨운 음모’로 매도하며,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규제와 안전판을 전면 폐기하고 무한 질주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맹목적 기술 민족주의를 향해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역사의 시계추는 다시 한번 '권력과 시장의 논리' 대 '인간 존엄과 영적 가치'의 거대한 대결 구도로 진입하고 있다. 135년 전인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자본주의의 탐욕과 산업혁명의 광풍 속에서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옹호하고자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했던 것처럼, 오늘날 그의 교황명을 계승한 레오 14세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신(新)기술의 쓰나미 앞에서 백악관과 빅테크 권력을 향해 다시금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들어라.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삼키도록 방치할 셈인가."
세계 가톨릭 14억 신도의 영적 지도자이자 인류 문명의 수호자로 나선 교황 레오 14세의 본명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이다. 2025년 5월 8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어 성 베드로 좌에 오른 그는 가톨릭 2천 년 역사상 ‘사상 최초의 미국 국적 교황’이라는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세웠다.
① 성장과 학문적 배경: 이성과 신앙의 균형
1955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이탈리아계 부친과 스페인계 모친 사이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다문화적 감수성과 언어 감각을 체득했다. 그의 초기 이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학(Mathematics)’을 전공했다는 점이다. 그는 필라델피아 근교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계열 명문 빌라노바 대학교(Villanova University)에서 수학 학사(B.S.) 학위를 받았다.
엄밀한 논리와 계량적 사고를 훈련받은 수학도 출신이라는 배경은 훗날 그가 인공지능, 알고리즘, 데이터 사이언스 등 첨단 과학 기술의 본질과 시스템적 위험성을 여타 종교 지도자들보다 훨씬 분석적이고 냉철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 그는 시카고 가톨릭신학연합(CTU)에서 신학 석사를 마친 뒤, 로마의 교황청립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안젤리쿰)에서 교회법 박사(J.C.D.) 학위를 취득하며 엄격한 법리적·제도적 역량까지 갖추었다.
197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O.S.A.)에 입회한 그는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85년부터 남미 페루 북부의 험준한 산악 교구인 출루카나스(Chulucanas)와 트루히요(Trujillo) 등지에서 오랜 세월 선교사로 헌신했다.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현장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페루 국적까지 취득한 그는, 교황청의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은 전형적인 '야전 사목자'의 정체성을 굳혔다. 그의 온화하면서도 치밀한 지도력은 수도회 내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전 세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를 총괄하는 총원장(Prior General)을 연임했다. 이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Chiclayo)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며 본격적인 고위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③ 교황청의 중추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온건 개혁 성향과 탁월한 행정력, 그리고 교회법적 식견을 겸비한 그를 주목했다. 2023년 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전 세계 주교 임명과 교구 관리를 총괄하는 교황청 핵심 부서인 '주교부 장관(Prefect of the Dicastery for Bishops)' 겸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했고, 같은 해 9월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라틴어와 독일어 문헌을 해독하는 그의 다언어 구사력과 국제적 조율 감각은 2025년 5월 콘클라베에서 전 세계 추기경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미국 태생이면서도 인생의 절반을 남미와 로마에서 보낸 그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정서와 '서구 선진 세계'의 현실을 동시에 꿰뚫고 있는 유일무이한 교량형 인물이었다.
장엄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의 함의
그가 교황명으로 '레오(Leo)'를 택한 것은 명백한 역사적·문명적 선언이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산업혁명기 기계 문명의 발흥과 자본-노동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는 기념비적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발표했다. 레오 14세는 취임 직후인 2026년 5월, 바로 그 <새로운 사태> 반포 기념일에 맞추어 자신의 재임 중 첫 사회회칙인 <장엄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을 반포했다. 이 회칙의 핵심 명제는 명료했다.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형태의 비인간화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의무는 지극히 인간적인 상태로 남는 것이다."
레오 14세는 AI가 단순한 생산성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 나아가 노동과 생명의 가치마저 잠식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수학과 교회법을 전공한 교황답게 그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는 통제 없는 확장과 데이터 독점, 그리고 알고리즘에 의한 인간 소외를 냉철하게 비판해 왔다. 특히 AI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무기화되지 않도록 국제적 통제와 ‘도덕적 무장해제’가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펼쳐온 정책 노선은 레오 14세의 사목적 신념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는 AI를 윤리나 안전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하게 '지정학적 패권 경쟁'과 '경제적 주도권'의 수단으로만 접근한다.트럼프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연설을 통해 인공지능 안전론자들을 향해 "데이터센터와 AI 혁신을 가로막으려는 비열한 음모론자들"이라고 맹비난하며, 미국이 속도 조절을 하는 순간 이득을 볼 유일한 국가는 중국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규제를 철폐하고 전력망을 무제한 공급하여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구축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레오 14세의 진단은 정반대다. 교황은 "많은 석학들과 AI 개발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밤잠을 설치며 경고하는 위험은 결코 음모나 가짜 뉴스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AI 지능 폭발이 가져올 제어 불능의 사태, 대량 실직과 인간 노동의 존엄성 붕괴, 자율살상무기(LAWS)의 통제 상실 등은 인류 전체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외치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므로 안전장치를 풀자"는 주장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스포츠카를 타고 절벽을 향해 질주하면서 옆 차선 차량보다 빨리 달리는 것에만 도취된 것과 다름없다. 레오 14세는 바로 그 브레이크의 부재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강대국의 리더십은 무절제한 질주가 아니라, 경쟁국인 중국마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어 인류 공멸을 막을 글로벌 안전 기준을 함께 제도화하는 데서 나와야 한다는 충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