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월가의 해결사에서 초지능 사령탑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백악관에 '초지능(SI) 태스크포스'를 신설하고, 미국의 AI 정책과 규제를 총괄할 이른바 'AI 차르'로 제이 클레이턴(Jay Clayton)을 전격 지명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챗GPT를 만든 개발자도,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초대형 금융위기를 수습했던 기업 전문 변호사이자,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그리고 미국 내 18개 첩보기관을 거느린 국가정보국(DNI) 국장이다. 컴퓨터 코딩 한 줄 짜본 적 없는 정통 법조 관료가 어떻게 미국 최고의 기술 사령탑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궤적을 따라가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드러난다.
제이 클레이턴(본명 월터 제이 클레이턴 3세)은 1966년 7월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학창 시절부터 수학적 논리력과 현실 감각이 남달랐던 그는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는 특유의 지적 호기심을 보였다.
그의 학력은 그 자체로 '융합형 인간'의 전형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유펜)에 진학해 공학(Engineering)을 전공하며 시스템과 기술의 작동 원리를 체득했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경제학 학사를 취득하며 거시경제와 시장의 메커니즘을 익혔다. 그리고 다시 모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로스쿨로 돌아와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으며 정통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공학적 기계 구조를 이해하고, 시장 자금의 흐름을 읽으며, 이를 법률적 계약서로 묶어내는 그의 독보적인 '삼각 축'은 훗날 그가 월스트리트와 행정부의 거대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새벽 2시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 월가의 특급 소방수
월가의 거물들은 그를 두고 "시스템이 무너져 내릴 때 가장 냉철하게 계약서를 완성하는 차가운 머리", "새벽 2시에 믿고 전화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사"라고 불렀다. 2014년 중국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입성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를 기록했을 때도 그 복잡한 거래의 배후를 설계한 주역이 바로 클레이턴이었다.
트럼프와의 운명적 만남: 화려한 말 대신 '결과'로 증명하다
정통 공화당원도 아니었고 정치적 색채가 옅은 무소속 성향의 실용주의자였던 클레이턴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며 공직에 입문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초대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트럼프는 직관적이고 거친 화법을 쓰지만, 자신의 곁에는 철저하게 법률적 빈틈을 메워주고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전문가를 원했다. 클레이턴은 그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SEC 위원장 시절 그는 과도한 금융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며 중소기업들의 상장 문턱을 낮추는 트럼프의 '친시장 정책'을 구현했다.
동시에 당시 광풍처럼 번지던 가상자산과 ICO(코인 공개) 열풍에 대해서는 "이름만 코인일 뿐 실질이 주식이라면 자본시장법의 철퇴를 피할 수 없다"며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댔다. 혁신을 응원하되 룰을 깨는 사기는 용납하지 않는 그의 원칙주의는 워싱턴 정가에서 초당적인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트럼프에게 클레이턴은 '정치적 구설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가장 깔끔하게 일을 끝내는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8개 첩보기관을 쥐락펴락하는 DNI(국가정보국장)의 무게
공직을 떠나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던 클레이턴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부름을 받았다.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을 거쳐, 그가 맡은 자리는 놀랍게도 '국가정보국(DNI) 국장'이었다.국가정보국(ODNI)은 한국 대중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미국 안보의 최정점에 있는 기구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CIA, FBI, 군 정보기관들이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테러 징후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 끝에 2004년 탄생했다.
쉽게 말해 CIA(해외 공작·스파이)와 NSA(도청·사이버 감청), FBI 정보국, 국방정보국(DIA) 등 미국 내 18개 정보기관의 칸막이를 부수고 이들을 총지휘하는 '정보공동체의 사령탑'이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국가정보예산(NIP)의 돈줄을 쥐고 있으며, 매일 아침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올라가는 1급 기밀 브리핑(PDB)을 총괄하는 인물이 바로 DNI 국장이다. 법과 금융의 전문가였던 클레이턴이 미국 최정예 첩보망의 총사령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왜 그가 '초지능 차르'인가
그런 그에게 트럼프는 왜 또다시 '초지능(SI) TF 수장'이라는 완장을 채워주었을까. 여기에는 트럼프식 권력 운용과 기술 패권 전쟁에 대한 냉혹한 현실 인식이 녹아 있다.
지금 미국과 전 세계가 목도하고 있는 AI 경쟁은 더 이상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돈 버는 기술' 싸움이 아니다. 국가의 운명을 가를 전략 무기이자 사이버 패권 전쟁이다. 특히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초지능 기술을 선점하지 못하면 국가 안보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백악관을 짓누르고 있다.
18개 정보기관의 첩보망을 한손에 쥐고 적대국의 기술 탈취 시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DNI 국장 클레이턴이야말로, 국가 안보의 시각에서 기술 주도권을 지켜낼 최적의 방패막이인 셈이다.또 하나의 이유는 거대 빅테크를 다루는 그의 '협상력'이다. 오픈AI, 구글, 메타, 엔비디아 같은 실리콘밸리 공룡들은 규제 관료의 말은 무시해도, 월가의 자본 논리와 법률적 칼날을 꿰뚫고 있는 클레이턴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최근 주요 빅테크 수장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모아 자발적 안전 기준과 '4단계 통제·감사' 체계에 서명하게 만든 막후에도 클레이턴의 치밀한 조율이 있었다.
120일간의 대항해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내에서 'AI' 대신 'SI(초지능)'라는 용어를 공식 채택하며 발족한 초지능 TF의 수장으로 현직 DNI 국장을 앉힌 것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구조적인 대전환을 시사한다.
첫째, AI 기술의 본질이 ‘산업’에서 ‘국가 안보 및 대외 첩보’의 최상위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차세대 초지능 모델, 자율 무기 체계, 양자 컴퓨팅, 사이버 전력은 더 이상 민간 빅테크 기업들의 상업적 성과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적대국(중국, 러시아 등)의 기술 탈취를 방어하고 패권을 선점해야 하는 전략 무기다.18개 정보기관의 첩보망을 한손에 쥔 DNI 국장만이 적대국의 위협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맞춘 국가적 대응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
둘째, 빅테크를 길들일 규제 협상력이다. SEC 위원장 시절 복잡한 월가 금융사들을 다뤄본 클레이턴의 경험은 오픈AI, 구글, 메타, 엔비디아 등 거대 테크 기업들과의 협약 및 ‘4단계 자율 통제·감사 체계’를 현실화하는 데 최적의 도구다. 정부가 민간 혁신을 압살하지 않으면서도, 국가 안보의 통제선 안으로 빅테크를 끌어들이는 정교한 '민관 동맹 모델'을 그가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레이턴은 120일간의 위험·기회 연구를 거쳐 연방정부의 새로운 역할 규범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공학과 경제, 법률과 첩보의 정점을 두루 거친 제이 클레이턴. 백악관의 'AI 차르'라는 완장을 찬 그가 설계할 새로운 초지능 전략은 미국의 기술 패권 지형뿐만 아니라 다가올 글로벌 안보 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클레이턴은 120일간의 위험·기회 연구를 거쳐 연방정부의 새로운 역할 규범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공학과 경제, 법률과 첩보의 정점을 두루 거친 제이 클레이턴. 백악관의 'AI 차르'라는 완장을 찬 그가 설계할 새로운 초지능 전략은 미국의 기술 패권 지형뿐만 아니라 다가올 글로벌 안보 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클레이턴은 취임 일성으로 "앞으로 120일 동안 초지능의 위험과 기회를 집중 연구해 연방정부의 새로운 행동 지침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기술의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되, 미국의 기술 기업들이 중국 등 적대국과의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규제의 족쇄를 풀어주는 정교한 방정식을 풀겠다는 의미다.공학을 공부했던 총명한 청년, 월가의 위기 때마다 불을 껐던 해결사, 자본시장의 규율을 세웠던 검투사, 그리고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첩보 수장에서 이제는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인 '초지능'을 지휘하게 된 제이 클레이턴.
백악관의 가장 신임받는 책사가 이끄는 120일간의 초지능 프로젝트는 향후 실리콘밸리의 기술 지형은 물론, 미·중 패권 전쟁과 글로벌 디지털 질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