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SK하이닉스는 1기 팹에만 31조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향후 전체 투자 규모는 최대 6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단순 공장 증설을 넘어 AI 산업 기반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이다. 용인 클러스터는 향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 핵심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방한은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더욱 부각했다. 그는 최태원 회장과 국내 기업 경영진을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세계 기술 산업을 이끄는 인물들이 한국에 모인 것은 한국이 글로벌 AI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SK의 위상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1953년 선경직물을 창업한 최종건 회장에게서 출발한다. 전쟁 직후 산업 기반이 부족했던 시절 섬유사업으로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는 훗날 SK가 한국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세계는 기술 경쟁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은 첨단산업 육성에 집중했고 한국도 산업화를 가속화 했다. 최종현 회장은 이러한 흐름을 읽고 기업의 미래를 설계했으며, 그의 전략은 이후 정보통신과 반도체 산업 진출의 토대가 되었다.
1994년 SK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정보통신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 이동통신 시장은 성장 초기 단계였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의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 결정은 SK텔레콤 성장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미래 산업을 선점한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를 뒤흔든 거대한 위기였다.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겪으며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SK 역시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최종현 회장의 건강 악화까지 겹치면서 SK그룹은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기업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지기 시작했다.
1998년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재계는 SK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손길승 회장은 조직의 안정을 위해 최태원 체제를 지지했다. 그는 개인의 이익보다 기업의 지속성을 우선시했고, 이는 SK가 큰 혼란 없이 세대교체를 마무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반 SK는 여러 경영 위기와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경쟁력을 중시하는 전략이 유지됐고, 이는 시간이 흐르며 성과로 이어졌다. 어려운 위기에서도 미래를 준비한 선택이 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2012년 하이닉스 인수는 SK 역사상 가장 과감한 투자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투자 부담과 위험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데이터 경제와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급격히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이 인수는 SK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선택이 되었다.
2020년대 AI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HBM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며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태원 회장과 젠슨 황 CEO의 협력 역시 AI 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 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순 생산시설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진 비전과 도전의 결과물이다. 최종건의 창업 정신, 최종현의 미래 전략, 손길승의 의리, 최태원의 혁신이 현재의 SK를 만들었다. 기업의 미래는 결국 기술과 사람의 선택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