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마윈의 꿈"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을 막아서자, 알리바바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기술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쇼핑몰의 최강자였던 알리바바는 스스로 반도체를 만들고 인공지능 시대를 이끄는 중심에 섰다.
아파트에서 시작된 기적: 알리바바의 탄생과 폭풍 성장
알리바바의 출발은 소박했다. 1999년 봄, 창업자 마윈은 동료 17명을 중국 항저우의 자기 아파트로 불러 모았다. 이들이 모은 돈은 5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7,000만 원에 불과했다.당시 중국 공장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해외 바이어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마윈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전 세계 바이어와 중국 중소기업을 직접 연결해 주는 기업 간 거래(B2B) 사이트 '알리바바닷컴'을 열었다. 큰 기업이 아닌 "작은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마윈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2003년, 미국 전자상거래의 최강자 이베이(eBay)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중국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알리바바는 곧바로 개인 간 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Taobao)'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다.마윈은 "앞으로 3년 동안 거래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 더해 메신저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가격을 흥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가장 결정적인 무기는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즈푸바오)'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인터넷으로 돈을 보내는 것을 전혀 믿지 못했다. 알리페이는 소비자가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받은 뒤 '구매 확정'을 눌러야 판매자에게 돈이 지급되는 방식을 도입했다. 거래 불신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소비자들은 타오바오로 몰려들었다.
결국 미국의 공룡 이베이는 엄청난 적자를 보고 2006년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짐을 쌌다. 이후 알리바바는 백화점 브랜드 전용 쇼핑몰인 '티몰'까지 성공시키며 중국 인터넷 쇼핑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2009년 알리바바는 매년 11월 11일 솔로들을 위한 쇼핑 축제인 '광군제'를 만들었다. 이 행사는 하루 매출만 수십조 원을 기록하는 거대한 소비 축제로 자리 잡았다.
실력을 입증한 알리바바는 2014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상장했다. 당시 끌어모은 투자금만 250억 달러(약 26조 원)로, 당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였다. 알리바바는 단숨에 미국의 유통 공룡 월마트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으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기의 동맹: 손정의와 마윈
알리바바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벤처 투자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2000년 1월 베이징에서 성사되었다.당시 손정의 회장은 투자할 만한 중국 인터넷 벤처기업을 찾고 있었다. 마윈은 손정의 회장 앞에서 딱딱한 사업계획서나 재무제표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중국의 인터넷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자신이 작은 중소기업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손정의는 그의 말을 들은 지 단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
"당신의 눈빛에서 진짜 열정을 보았다. 당신은 그저 돈을 벌려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이다." 손정의는 마윈이 원래 요구했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2,000만 달러(당시 지분 약 30%)를 단번에 쥐여주었다. 직후 닷컴 버블이 꺼지며 전 세계 수많은 벤처기업이 도산할 때도, 손정의가 투자한 이 거액은 알리바바가 혹독한 위기를 버티고 타오바오를 키워내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었다.
창업자 마윈: 삼수생 영어 강사에서 IT 황제로
알리바바의 독특한 색채는 창업자 마윈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비롯되었다. 1964년 항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특히 수학 실력이 모자라 대학 입시에서 두 번이나 떨어진 끝에 간신히 항저우사범대 영어과에 들어갔다.마윈은 어릴 적부터 호텔 앞에 서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도시 안내를 해주며 영어를 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에 100위안(약 1만 5,000원)을 받던 평범한 영어 강사였던 그는 1995년 정부 통역 일로 미국 시애틀을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만났다.
검색창에 '맥주(Beer)'를 쳤을 때 미국과 독일 맥주는 수두룩하게 뜨는데 중국 맥주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의 기업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귀국 후 창업에 뛰어들었고, 한 차례 실패를 겪은 뒤 만들어낸 회사가 바로 알리바바였다.마윈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드를 짤 줄 모르는 대표적인 '문과 출신 CEO'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말솜씨와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무협 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그는 사내 모든 직원에게 무협지 속 고수들의 별명을 짓게 했다. 마윈 자신의 사내 별명은 무협 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검법의 은둔 고수 '풍청양'이었다. 그는 항상 "고객이 1등, 직원이 2등, 주주는 맨 마지막 3등"이라고 외쳤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보다 고객 만족과 직원의 성장이 먼저라는 철학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마윈은 2020년 10월 상하이 공식 포럼에서 중국 금융당국의 보수적인 규제를 "전당포 수준의 영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발언 직후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의 상장이 전격 취소되었고, 알리바바는 수조 원에 달하는 반독점 벌금을 두들겨 맞았다. 이후 마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농업과 교육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남긴 도전 정신은 여전히 알리바바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단순한 쇼핑몰로 시작한 알리바바가 어떻게 첨단 기술 기업이 되었을까? 알리바바의 기술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첫째는 인터넷 가상 서버를 빌려주는 클라우드 인프라(알리바바 클라우드)다. 현재 중국 시장 1위이자 아시아 전체에서도 독보적인 1위다.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알리바바의 서버 컴퓨터를 빌려 인공지능을 돌린다.둘째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팹리스 자회사 '핑터우거(T-Head)'다. 서버 컴퓨터에 들어가는 두뇌 칩과 인공지능 계산 전용 반도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특정 외국 기업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오픈소스 반도체 표준(RISC-V)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 셋째는 사람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이해하는 자체 인공지능 모델 '퉁이첸원(Qwen)'이다. 전 세계 오픈소스 인공지능 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며 강력한 두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칩 설계부터 대규모 서버 인프라, 그리고 가장 발전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한 손에 쥐고 있는 기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힌다. 알리바바는 2009년부터 자체 클라우드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매년 광군제 때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하려면 미국 기업의 비싼 서버 장비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중국 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어 4위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마치 발전소가 전기를 공급하듯 중국 전역의 기업과 연구소에 강력한 컴퓨터 연산 능력을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독립 자회사 핑터우거
2018년 알리바바는 반도체 전문 자회사 '핑터우거'를 설립했다. 핑터우거는 사자나 독사 앞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덤벼드는 동물 '라텔(꿀오소리)'의 중국식 이름이다. 미국의 기술 제재 속에서도 끝까지 독자 기술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핑터우거가 내놓은 대표적인 반도체는 다음과 같다.
이톈 710: 고성능 서버 컴퓨터에 들어가는 두뇌 칩(CPU)이다. 알리바바 데이터센터에 직접 장착되어 전력 소비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
한광 800: 쇼핑몰에서 사진으로 상품을 검색하거나 추천 상품을 띄울 때 초고속으로 계산을 처리해 주는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NPU)다.
쉬안톄 시리즈: 특정 외국 기업의 허락이나 로열티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오픈소스 반도체 규격(RISC-V)을 바탕으로 만든 소형 칩이다. 자율주행차나 스마트 가전기기 등에 널리 쓰이며 중국 반도체 자립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알리바바 인공지능(AI) 모델 '퉁이첸원'
오픈AI의 챗GPT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알리바바는 자체 거대언어모델인 '퉁이첸원'을 선보였다. 오픈AI나 구글이 자사의 최신 인공지능 내부 구조를 꽁꽁 숨겨두고 유료로 판매하는 것과 달리, 알리바바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처럼 인공지능 소스코드를 전 세계에 무료로 개방(오픈소스)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퉁이첸원은 복잡한 수학과 프로그래밍 코딩에 능통하다. 전 세계 무료 공개 모델들을 비교하는 벤치마크 평가에서 미국의 유수한 모델들을 제치고 수시로 1등을 차지할 만큼 코딩과 수학 문제 풀이 능력이 정교하다. 엄청난 분량의 긴 글도 한 번에 이해한다. 책 한두 권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문서나 복잡한 계약서, 기술 설명서를 한 번에 읽고 오류를 짚어내거나 요약해 준다. 글자와 그림을 동시에 이해하는 멀티모달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퉁이첸원은 단순한 글자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도표까지 정확하게 분석한다. 수억 개가 넘는 상품 사진과 상세 설명을 20년 넘게 다뤄온 알리바바 쇼핑몰의 방대한 데이터가 훌륭한 학습 교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단순히 인공지능 모델만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자들이 누구나 무료로 들어와 인공지능 모델을 내려받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모델스코프(ModelScope)'를 운영하고 있다.이곳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프로그래머가 모여들게 함으로써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는 알리바바 플랫폼을 쓰는 것이 가장 편하고 싸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인공지능 두뇌(퉁이첸원)는 무료로 널리 퍼뜨려 전 세계 개발자들을 끌어모으고, 이들이 모델을 돌릴 때 필요한 컴퓨터 서버망(알리바바 클라우드)을 유료로 빌려주어 막대한 돈을 버는 영리한 생태계 전략이다.
알리바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변화가 실로 놀랍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소상공인들의 판로를 열어주던 '전자상거래 회사'로 출발해, 수많은 쇼핑 거래를 처리하며 '데이터 회사'로 변신했고, 마침내 스스로 반도체를 깎고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 회사'로 탈바꿈했다.현재 알리바바는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규제라는 높은 장벽과, 오픈AI나 구글 같은 서구권 기술 기업들과의 치열한 생성형 AI 주도권 다툼이라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독자적인 칩을 만들어내는 핑터우거, 아시아 최강의 클라우드 서버망, 그리고 세계 수준으로 올라선 인공지능 퉁이첸원의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은 아파트에서 마윈의 무협지적 열정과 손정의의 과감한 투자로 싹을 틔웠던 알리바바는, 이제 인공지능과 첨단 반도체라는 실리콘 날개를 달고 21세기 디지털 기술 패권의 핵심 주역으로 그 원대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