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88)] 김세연(발레 안무가, 유니버설발레단 주니어 컴퍼니 전임 지도위원)의 2026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
이미지 확대보기동화 발레 '백조왕자'는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 ‘들백조’(1838년)의 원작처럼 중세 유럽 왕국을 배경으로 사랑과 희생, 기다림과 구원의 주제를 발레의 몸짓과 음악으로 풀어낸다. 마법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침묵 속에서 쐐기풀로 옷을 짓는 일이다. 한국적 서정을 담은 무용수의 움직임과 시각적 언어, 음악과 무대의 호흡은 목소리를 희생한 엘리제의 상처와 두려움, 서로를 향한 믿음과 희망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발레만의 서사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김세연 안무가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무대 언어를 통해 침묵에 담긴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새롭게 드러낸다. 클래식 음악과 춤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상처를 딛고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진실한 사랑과 믿음이 지닌 구원의 가능성,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울문화재단 예술활동 창작지원사업으로 탄생한 '백조왕자'는 와이즈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전의 재해석과 창작 발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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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2막 8장(1막 4장, 2막 4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정형의 발레의 틀 안에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성으로 발레의 격조와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었다. 1막은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여섯 왕자와 엘리제가 계모의 음모로 가족의 결속을 잃고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쉽게 의심과 권력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왕자들은 백조로 변하고 궁에서 쫓겨난 엘리제는 오빠들을 찾아 숲으로 떠난다.
이는 인간의 세계에서 추방된 이들이 자연과 환상의 세계로 이동하는 구조를 이루며,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가 지닌 서정성과 긴장감은 행복에서 불안으로 전환되는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뒷받침한다. 왕자들이 낮에는 백조, 밤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설정은 인간과 비인간, 자유와 속박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발레의 신체 언어를 통해 저주와 상실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엘리제는 숲에서 요정들의 도움으로 오빠들과 재회한다.
엘리제가 저주를 풀려면 쐐기풀로 여섯 벌의 옷을 지으며 끝까지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엘리제의 침묵은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희생이며, 쐐기풀을 뜯고 옷을 짓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몸으로 말하는 발레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한편, 그녀를 발견한 이웃 나라의 왕자가 엘리제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은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이미 오빠들과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엘리제의 내적 갈등을 예고하며 2막의 비극과 구원을 준비한다.
2막에서 엘리제는 입궁하지만, 침묵을 지킨 채 오빠들의 옷 짓기에 몰두한다. 그녀를 둘러싼 왕실의 의심과 왕의 신뢰가 대립하면서 침묵은 양면적 의미를 띤다. 슈베르트의 아다지오와 라벨, 무소르스키 음악이 빚어내는 서정과 불안의 대비는 엘리제가 왕과 함께하면서도 오빠들을 향한 그리움을 놓지 않는 복합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공동묘지에서 쐐기풀을 구하는 장면은 그녀의 희생이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죽은 영혼들의 구원으로까지 확장되는 순간이다.
마녀 누명을 쓴 엘리제가 화형대에 오르고, 끝까지 침묵하며 마지막 옷을 완성하는 순간 여섯 마리의 백조가 나타나면서 서사는 극적 전환이 된다. 거센 비가 화형대의 불길을 끄고 엘리제의 마지막 희생이 왕자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린다. 왕과 엘리제, 여섯 왕자와 영혼들이 모두 구원받는 결말은 개인의 희생이 공동체의 평화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악장과 함께한 축제의 춤은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뒤 획득한 자유와 화해를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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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주요 출연진은 엘리제: 김민영, 이웃 나라 왕자: Salamat Bekmuratov, 마녀 & 이웃 나라 대신: Taibinov Bair, 왕(엘리제의 아버지): 김동철, 6명의 백조왕자: Namsrai Mendbayar, Oyun Davaadorj, 김재민, 정세환, 김우준, 임상희이며, 김한슬 이지연 김도윤 김성은 변은지 김승혜 이재인 김정연 이채린 남궁현 박정은 서여진 안지원 이별림 이유주 인유진 조세민 최은수 남수민 서혜승 심시연 정보나 박종희 최혁준 김응성 남기현 송호영 등이 함께 열연했다.
김세연 안무의 '백조왕자'는 고전적 서사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침묵과 희생이라는 주제를 무용수의 몸짓, 클래식 음악, 무대의 시각적 언어로 확장하여 ‘침묵의 사랑’이 지닌 힘을 새롭게 환기한 작품이다. 선과 악의 명료한 서사 구조와 대중적인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클래식 발레의 격조와 동시대적 감각을 조화시키며, 엘리제의 고난과 구원의 과정을 통해 사랑과 믿음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특히 슈베르트, 드뷔시, 라벨, 무소르스키의 음악을 서사적 흐름에 따라 배치하여 인물의 내면과 극적 긴장을 음악적으로 강화한 점은 작품의 정서적 밀도를 높였다. 엘리제의 침묵을 수동적인 인내가 아닌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능동적인 행위로 전환한 안무적 해석은 고전동화가 오늘의 무대에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백조왕자'는 와이즈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로서 발레의 서사적 가능성과 대중적 소통의 지평을 넓힌 수작(秀作)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와이즈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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