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세계 테크 산업의 중심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극적인 서사를 꼽으라면, 단연 인공지능(AI)과 가속 컴퓨팅 시장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두 거인의 이야기일 것이다.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수장인 젠슨 황(Jensen Huang), 그리고 파산 직전의 AMD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며 강력한 대항마로 우뚝 선 리사 수(Lisa Su). 이 두 걸출한 경영자가 대만 타이난(臺南) 출신의 피를 나눈 친인척 관계라는 사실은 이미 글로벌 경제계의 공공연한 화제이자 흥미진진한 지적 탐구의 대상이다.
세간에서는 흔히 두 사람을 ‘삼촌과 조카’ 사이라 부른다. 이들의 혈연은 리사 수의 외가(外家)와 젠슨황의 본가 사이로 연결되어 있다. 젠슨 황의 어머니인 뤄차이슈(羅采秀) 여사에게는 뤄전광(羅振光)이라는 이름의 오빠가 있었다. 이 뤄전광 선생이 바로 리사 수의 외할아버지다. 따라서 리사 수의 어머니 뤄춘메이(羅春妹)와 젠슨 황은 서로 외사촌 간이 된다. 나를 기준으로 어머니의 사촌 형제는 ‘외당숙(진외당숙)’이며, 촌수로는 5촌에 해당한다. 즉, 젠슨 황은 리사 수에게 ‘5촌 외당숙’이 되고, 리사 수는 젠슨 황에게 ‘외종질(사촌 여동생의 딸)’이 된다. 서구식 친족 호칭 체계로 따지면 사촌의 자녀를 뜻하는 ‘퍼스트 커즌 원스 리무브드(First cousin once removed)’이다.
일상적이고 통칭적인 대화에서 5촌 아저씨 뻘을 편의상 ‘삼촌’이라 부르고, 조카뻘을 포괄적으로 ‘조카’라 칭하는 관습에 비추어 보면 ‘삼촌과 조카’라는 표현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엄밀한 촌수와 계보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사람은 ‘5촌 당숙과 질녀’의 관계라는 것이 정확한 팩트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한집안에서 명절을 함께 쇠며 자란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대만 남부의 고도(古都) 타이난에서 출생했으나, 젠슨 황은 1963년생으로 9세 무렵 미국으로 건너갔고, 리사 수는 1969년생으로 3세 때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 1.5세대로서 각자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밟아 나간 두 사람은, 각자 공학자로서 명성을 쌓고 업계의 정점에 선 이후에야 집안 어른들의 족보 추적과 확인을 통해 서로의 핏줄 관계를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타이난에서 실리콘밸리까지
이들의 가계도 속에는 20세기 동아시아 현대사의 거대한 디아스포라와 기술 입국(技術立國)의 정신이 짙게 배어 있다. 대만 타이난의 뤄(羅)씨 가문은 대대로 학문과 교육열이 남달랐던 명망 있는 가문으로 전해진다. 젠슨 황의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매일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아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자녀 교육에 헌신적이었고, 리사 수의 부친 역시 수학자이자 통계학자로서 딸에게 조기 수리 교육과 공학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주었다.
미국이라는 낯선 대륙에 던져진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공학(Engineering)은 곧 신분 상승과 사회적 인정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리사 수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반도체 물리학과 소자 설계의 최전선에 섰다.
두 사람의 뿌리는 대만과 실리콘밸리를 잇는 독특한 반도체 에코시스템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오늘날 세계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TSMC의 모리스 창(Morris Chang) 창업자 역시 이들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미국 유학과 빅테크 기업에서 실력을 닦고, 다시 이들이 모국 대만의 파운드리 생태계와 끈끈한 신뢰의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반도체 밸류체인을 완성한 것이다. 젠슨 황과 리사 수의 혈연은 이러한 거대한 시대적 조류가 응축된 하나의 상징적 단면에 불과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시장은 피보다 냉혹하다
이들의 관계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시장의 비정함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AMD는 오랜 세월 PC용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에서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를 펼쳐왔다. 그리고 바야흐로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자, 두 기업의 전장은 인공지능 슈퍼컴퓨팅의 핵심 두뇌인 AI 가속기 시장으로 고스란히 확장되었다.
리사 수는 AMD를 이끌며 CPU 시장에서 인텔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특유의 집념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AI 칩 시장에서 ‘MI300’ 시리즈를 선보이며 엔비디아의 아성에 균열을 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적 가격 정책과 공급 부족에 불안을 느낄 때, 리사 수는 오픈소스 전략과 가성비, 그리고 강력한 칩렛(Chiplet) 기술을 무기로 대안 세력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이들의 경쟁에는 혈연에 따른 온정주의나 양보가 끼어들 틈이 없다. 공식 석상에서 서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두 사람은 공학자로서, 그리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서로를 깊이 존경한다고 답하면서도, 시장에서의 승부에 대해서는 한 치의 타협 없는 냉철한 결기를 드러낸다. 젠슨 황은 끊임없이 차세대 아키텍처를 쏟아내며 격차를 벌리려 하고, 리사 수는 기술적 빈틈을 파고들며 맹렬하게 추격한다. 피는 물보다 진할지언정, 시장 경제의 냉혹한 원리 앞에서는 피조차 끓어오르는 승부욕의 촉매제일 뿐이다.
우리는 젠슨 황과 리사 수의 족보를 보며 ‘가문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한 가문에서 시대를 좌우하는 글로벌 반도체 거물이 둘이나 나왔다는 사실은 분명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경제적·산업적 혜안을 가진 관찰자라면 이 흥미로운 족보 뒤편에 도사린 본질적 함의도 읽어내야 한다.
첫째, 기술 패권의 핵심은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젠슨 황과 리사 수는 결코 ‘금수저’로 출발해 기업을 물려받은 세습 경영인이 아니다. 젠슨 황은 덴스(Denny's) 레스토랑 구석 테이블에서 냅킨에 회로도를 그리며 엔비디아를 창업했고 수차례 파산 위기를 넘겼다. 리사 수는 무너져가던 AMD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기술 혁신으로 기적을 일궈낸 야전사령관이다. 이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혈통의 우수성이 아니라, 공학에 대한 지독한 몰입과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이었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과 인재의 유기적 결합이다. 대만이라는 작은 섬나라의 자본과 인재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연구 인프라를 만나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도 묵직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학벌과 인맥, 단기적 실적주의에 매몰된 산업 토양에서는 결코 젠슨 황이나 리사 수 같은 파괴적 혁신가가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없다.
리사 수와 젠슨 황. 5촌 외당숙과 조카라는 기묘한 인연의 끈으로 묶인 두 사람은 오늘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또 실리콘밸리의 연구실에서 인류 문명의 두뇌를 설계하고 있다. 이들이 펼치는 치열한 승부는 인류의 컴퓨팅 파워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고 있다.가계도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일은 흥미롭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실타래 끝에서 빚어지고 있는 거대한 인공지능 문명의 미래다. 두 천재 경영자의 아름답고도 치열한 라이벌전은 이제 막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