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에리 북유럽80일 (22)] ‘슈주’ 좋아 한국남자와 결혼

공유
0

[김에리 북유럽80일 (22)] ‘슈주’ 좋아 한국남자와 결혼

6월26일, 알타 한국동포의 집


노르웨이 이 북쪽 알타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유럽여행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청년 P는 고맙게도 일면식도 없는 내가 묵는 숙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찾아와줬다. 글쓰는 스타일을 보고 남자인줄 알았다며. 내가 알타에 온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고 싶다고 했었는데, 6월25일 이사하는 날임에도 저녁시간에 나를 만나러왔다. 심지어 다음날 점심에까지 초대를 해줬다. 아내가 무척 한국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6월26일 그가 알려준대로 버스를 타고 알타 공항을 지나 알타다리가 보이는 전망좋은 그의 집을 찾아갔다. 정류장에 마중나와있던 그를 따라 간 집은 마당을 공동으로 쓰며 그의 노르웨이인 장모와 친척들이 세 채의 집을 짓고 사는 곳이었다. 이모가 살던 집이 비면서 시내에 살던 이들 부부가 들어와 살게 됐는데,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들어진 아담한 집은 마치 산장처럼 예뻤다. 너른 마당에는 가족 공동소유의 두마리 개가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매어있긴 했지만 집 처마와 나무사이에 길게 쳐놓은 줄에 도르래로 오갈 수 있게 해놓아 자유로워 보였다.

장을 보러나갔던 그의 만 스물세살 동갑내기 아내 말레네(Malene Elverum)가 집안에서 기르는 파피용 종의 개와 돌아왔는데 한국말을 놀랍도록 잘했다. 알고보니 한류의 열렬한 팬으로 특히 슈퍼주니어의 김기범을 좋아한다며 “김기범 잡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대신 남편과 결혼했다”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말했다. 귀여운 인상의 이 고수머리 아가씨(유부녀이긴 하지만)에게 한국에 오면 슈퍼주니어와의 만남을 주선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부부가 만나게 된 사연도 놀라웠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영어의 필요성을 느껴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오는 사이트를 방문했던 P는 역시 한류에 반해 이 사이트에 온 말레네와 만나 2008년 이곳으로 왔다. 현재 결혼 비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는데, 노르웨이는 이 비자 받는데도 몇년씩 걸리는, 이민이 쉽지 않은 나라란다. 함메르페스트에서도 주말, 공원에 나앉아있는 흑인들을 많이 봤고 알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하는 흑인 처녀를 봤다니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란다. 아프카니스탄 등지의 아랍계 난민들도 좀 있단다.

그래도 이곳까지 살러온 한국인들이 있었다. 알타에도 그 말고도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한 명과 그의 중학생 또래 자녀 두 명이 있고, 다음 방문지인 트롬쇠에도 5명 정도가 살고 있단다. 이미 지나 온 최북단 호닝스보그에도 한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함메르페스트 같은 곳에도 중국식당이 있어 중국인 여자와 아이들을 목격했었다. P는 알타에도 중국음식점이 있다며 그들은 나름 이민비자 받는 수완이 좋다고 귀띔했다. 결혼이민을 온 태국 여자들도 꽤 있어 마트에서 동남아산 쌀까지 팔아 싼 값에 잘사먹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주식인 빵 값도 한국보다 싼 듯했다. 옷값 등 생필품은 한국보다 싼 것들도 많다고 했다.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고 해도 서민들도 살만한 나라인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한국어 가장 잘하는 한류팬

말레네가 한국말을 무척 잘해서 노르웨이어가 영 안 는다는 P. 언어에 재능이 있는 말레네는 독일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독학으로 배웠단다. 처음엔 인터넷 영상으로 익히다가 아마존닷컴을 통해 한국어교본까지 구해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발음연습도 많이했단다. 김옥빈이 출연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김기범이 나오는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를 찾다가 잘못 받아 봤는데, 이것이 첫번째로 접한 한국 드라마란다)와 ‘달자의 봄’을 가장 재밌게 봤다며 요즘도 ‘부부클리닉’, ‘무한도전’, ‘TV동물농장’ 세가지 프로그램은 꼭 챙겨본단다.

P와 온라인 채팅을 할 때 이미 한글 타자의 ‘달인’이었다는 말레네는 아마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 노르웨이인이 아닐까 싶다고. 말레네는 어려서 부터 그냥 동양이 좋았단다. 중국음식도 입에 잘맞고 동양인의 작은 눈에 매력을 느꼈고 일본문화에 먼저 매료됐다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슈퍼주니어 영상을 접하고 광팬이 됐다고 했다.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못 만나 아쉽다는 그녀는 지난해 자신이 일하는 마켓에 찾아온 한국인들이 자신을 쭉 둘러쌌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또렷한 한국어로 말했다. 알타로 놀러온 일군의 관광객들중 한 여자가 한국어로 “정말 비싸네”라고 하는데 자신이 한국어로 응대했더니 놀라워하며 자신에게 돌아가며 한 마디씩 시키더란다.

“알타에서는 뮤지엄 빼고는 갈 데 없는데 우리집에 안 왔으면 큰일날뻔 했다”, “우리집에 와주셔서 영광이다”는 말 등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했고, 존댓말도 적절히 잘 썼다. 이렇게 한국어를 잘하니 한국사람을 만나서 자꾸 말해보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에 가서 3개월을 보냈는데 한복도 예쁘고, 한국음식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진정한 한류팬임을 ‘인증’했다. 다만 알타 같이 자연의 혜택이 넘치는 넓은 곳에서 살다가 바글대는 사람을 보고 사람멀미가 나서 고생했다고. 서울 시내에 나갔다가 혼이 쏙 빠져서 카메라까지 잃어버렸다는데 인구밀도가 낮은 한적하고 널찍한 동네에서 살던 이이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버스 타기가 갑갑해서 먼거리도 무조건 걸어다녔단다. 가장 그리웠던 것이 알타의 맑고 깨끗한 물이었다고.

P는 여기와서 이 물을 먹고 여드름까지 싹 없어졌단다. 핀란드에서도 그렇고 북극권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바로 받아먹는데, PET병에 넣어 파는 물은 오히려 고인물이라 질이 더 안좋다고 생각들한단다. 물이 흔해서인지 이쪽 식당들에서는 물은 다 공짜다.

드라마를 많이 봐 한국문화에 ‘빠삭’한 말레나는 P가 한국에 가서 살자고 했지만, 그건 싫단다. 이곳에선 고등학교 수업도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면 모두 끝나는데 말도 안 되게 엄청난 공부를 시키고 일도 너무 많이 하고 휴가도 적은 나라에서는 못살 것 같단다. 그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부클리닉’을 봐서 한국의 결혼문화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시어머니!’ 하면서 진저리를 치는 시늉까지 했다.

말레나는 여기서 일할만큼만 하고, 번만큼만 쓰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복지가 잘 돼있어 그다지 걱정할 삶의 문제도 크게 없는 듯 했다. 한국어도 그냥 좋아서 열심히 공부한 것뿐이다. 거기에 대고 자꾸 성취지향적으로만 얘기하는 내가 좀 부끄러워졌다.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P는 밥을 안치고 버섯 쓱쓱 썰어 볶음밥을 만들어 고추장, 참기름과 내왔다. 그릇을 찾을 수 없어 그냥 밥통에 그득 담아준 밥의 양에 놀라 “남겨도 되느냐”고 해놓고는 바닥에 눌어붙은 밥까지 싹싹 긁어 다 먹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만에 먹는 한국음식인지. 맑은 된장국과 함께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히는 거다.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놀랐다. 기념으로 빈 밥통 사진까지 찍었다. 사실 한국음식을 안 먹고도 별로 불편을 못느끼는지라 싸온 고추장 튜브같은 것은 꺼내보지도 않았다. 안 먹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이걸 꼭 싸가야하나 망설이다가 3개들이 한 박스와 인스턴트 가루 쌀죽과 인스턴트 미소 된장국을 조금 가져오긴 했다. 근데 역시나 짐만 된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쌀밥과 고추장을 접하니 오랫동안 앓던 소화불량이 웬말. 예쁘게 살아가는 이들의 환대를 받고 나서니, 쌀밥에 배도 든든해졌고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버스 막차 시간에 맞춰 알타 박물관에 다시 가서 어제 못본 암석화를 봐야한다. 말레나 얘기로는 안 그래도 지역신문에서도 버스시간 단축에 대해서 ‘깠다’고 했다. 다만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져서 숙소에 가서 옷을 더 입고 나오기로 했다. 말레나도 “이건 여름 날씨가 아니”라며 배웅 나와 떨었다. 버스는 한 시간 내 다시 타는 건 무료라고 P가 가르쳐줘서 서둘러 숙소에 갔더니 세탁실이 여전히 잠겨있다. 리셉션 가서 사람을 불러온 시간도 없어 ‘비장의’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시 30분마다 한대씩 오는 버스를 잡으러 서둘러 뛰었다.


◇교양미 넘치는 유럽인 노부부들의 관광

“은퇴하면 부부동반으로 여행이나 다녀야지”라는 말들을 곧잘 하는데, 여기에도 정말 머리 하얀 부부가 짝을 이뤄 여행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나란히 다니는 노부부들의 모습이 참 보기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 같다. 대부분 교양이 넘치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닌 표정에 영어도 웬만치 잘하는 이들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이 참 친절했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 많이들 오는 듯 했다.

알타 박물관 입구에서 “나 또 왔어” 하고는 열심히 나무 트레일을 따라 도는 도중 한 백인 노부부가 사진을 찍어주길 청했다. 두 컷 찍어주고 내 갈 길을 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아내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하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불러 세운다. 그녀는 내가 쓴 마스크가 궁금했던거다. 사실 내 꼴이 진짜 우습기는 했다. 후드재킷을 뒤집어써 머리카락은 하나도 안보이고 오리털 파카로도 부족해 허리에도 검은 점퍼를 하나 두르고 흰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쪽에서도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배드 클로우즈(형편없는 옷차림)”하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마스크는 왜 쓰고 있느냐”길래 “한국과 일본에서는 감기 걸렸을 때도 쓰고, 방한용으로도 쓴다”고 대답하니 “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진짜 좋다”며 감탄을 한다. 그러더니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 접경지대에 산다는 이 할머니는 궁금한 것이 많아 “학생이냐, 혼자 여행하느냐”며 집중적인 질문에 돌입했다. “6월7일 헬싱키로 들어와 계속 북쪽으로 이동해 노드카프까지 갔다가 지금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덴마크, 스웨덴까지 한 석달간 돌 거다”고 얘기해줬더니 “정말 혼자 여행하느냐, 뭐 타고 다니느냐”고 감탄하며 몇 번씩이나 확인한다. 노르카프 어땠냐고 묻길래 “노르카프 가시냐”고 하니 그렇단다. “거기 직원 말로는 날씨가 점점 나아지고는 있다는데, 나도 풍경 감상은 좀 할 수 있었다, 진짜 날씨에 달렸다”고 답해줬다.

핀란드 소단퀼라에서 이나리로도 오스트리아인들과 같은 버스로 이동했었는데, 역시 음악의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유독 상냥들했다. 빈(비엔나)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사이클러에게 “피아니스트인 내 사촌 하나가 빈에서 유학했는데 진짜 비엔나 커피 맛있다고 얘기하더라”고 했더니 “한국인들은 훌륭한 음악가들”이라고 좋아하며 “여기 버스정류소에 커피 한잔 사먹으러 가는데, 비엔나 커피 생각하면 이건 물도 아냐”라고 한다. 그와는 이나리 시다박물관 관광안내소에서 또 마주쳤는데,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암석화, 고대인들이 보내는 사인에 빠지다

드디어 어제 못봤던 암석화를 찾아 나섰다. 이른바 바위 새김(rock carving)인데 파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페인트로 채색해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증거는 없지만 본래 이런 붉은 갈색으로 칠해졌을 것으로 믿어져 이런 색깔로 복원했단다.

어제는 입구 찾는데도 한참 걸려서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했다. 오후 5시에 떠나는 막차 안 놓치려고 나무 트레일 코스를 뛰어다니면서 감상했다. 홀로 서둘러 길을 찾아다니는걸 보고 인자한 인상의 노부인이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지반이 융기되면서 드러난 암석화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73년 가을. 알타에서만 4개 지역에서 발견됐는데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알타박물관이 있는 Hjemmeluft 지역 것이라고 한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7000여년 전(기원전 5000년께)부터 2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사미인들의 조상일 것이다.

그냥 바위에 낙서했다고 봐도 그만이지만 사람, 배, 고래, 엘크, 순록, 거위, 개구리까지 그 모양들이 어찌나 키치적이면서도 또 어찌보면 세련됐는지 그 조형성과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카피요르드 지역에는 오로라를 표현한 암석화도 있단다)

선사시대로부터 온 메시지를 일일이 해석하다보면 며칠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 다 알수없는 시대로부터 온 인간 조상의 메시지가 감동적이다. 그 시절의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 사냥하는 모습, 어획하는 모습, 새끼를 밴 순록과 출산하는 모습들 같은 게 상당히 구체적이다. 배를 타고 다니는 그림을 토대로 1991년 가죽배를 재현해 박물관 내에 전시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몸체는 동물 가죽으로, 순록머리 뱃머리 장식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바닷바람이 몰아치고 날씨가 추워 개별적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각자 자기 나라 언어들로 된 안내서를 들고 암석화와 일일이 대조해보면 열심히들 감상한다. 남편에게 일일이 구절을 읽어주는 노부인도 있다. 나도 영어를 해석해가며 그 그림들을 들여다보는데 끝없이 즐겁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한글로 보고 한눈에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다.

문득 이문열의 소설 ‘들소’가 떠올랐다. 원시시대 예술가 소설이랄까, 박중훈이 원시인으로 분장하고 영화를 찍다가 결국 완성을 못해 개봉 못했었지?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소재로 사냥에 뒤처진 나약한 원시인이 예술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승화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신을, 주변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테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