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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넘어 해독하는 '약선음식' 내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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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넘어 해독하는 '약선음식' 내놓을 것"

[한국의 맛-이교찬 롯데호텔월드 총주방장]

"'요리'라는 한우물만 팠더니 음식의 새 세상 열리더라"


佛미슐랭 별세개 '따이유방'서 연수 가장 기억남아


조리사의 뜨거운 열정서 맛있고 창조적인 음식 나와


먹어서 즐겁고 몸이 가벼워지는 음식이 좋은 요리

▲이교찬롯데호텔월드총주방장
▲이교찬롯데호텔월드총주방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이교찬 롯데호텔월드 총주방장은 언론에 나서기를 극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의 ‘한국의 맛’이라는 코너에 어렵게 인터뷰에 응하기는 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단답형이다. 가급적 말은 아끼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요리에서 실력을 발휘하겠다는 그만의 철학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만만한 조리사는 결코 아니다. 국내 최고 호텔인 롯데호텔에서만 만 31년째 근무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늦깎이로 경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교찬 총주방장은 음식으로 사람을 고치는 힐링을 넘어 우리 몸의 독소를 해독하는 디톡스를 연구하고 있다. 짧지만 의미심장한 그의 답변에서 조리사로서의 자부심과 철학이 묻어나왔다. <편집자 주>

-롯데호텔에서만 30년을 넘게 일하셨는데….

“경희대 외식조리과의 전신인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을 졸업(1980년)하고 군 제대 후 1982년에 롯데호텔과 인연을 맺었어요. 이 직장, 저 직장을 기웃거릴 수도 있었겠지만, 부친께서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롯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어요. 물론 여기보다 더 나은 근무 조건을 갖춘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소공동 본점에서 27년 7개월 근무하다가 여기 온지 올해로 4년째입니다.”

-한 곳에서만 일한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회사와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점이 장점이라면, 여러 곳을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만 일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한 게 단점이지요. 그나마 다행히 해외연수를 많이 다녀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는 면했다고 생각합니다. 입사한 지 3년 만에 일본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고, 지난 2000년에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미슐랭 별 세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인 ‘따이유방’에서의 3개월 연수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미슐랭이 등급을 부여한 레스토랑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일본에 미슐랭 별 한 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이 많이 들어서긴 했지만, 별 세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한식 레스토랑이 미슐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별을 받은 곳은 없으며, 우리 정부 차원에서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한식 레스토랑 안내 책자를 발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레스토랑과 10년 전에 다녀온 미슐랭 별 세개 등급 레스토랑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셰프의 열정이 달라요. 미슐랭 별 세개 등급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그 레스토랑만의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물론 미슐랭은 서비스와 음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지요. 음식은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입으로 먹는 종합예술이므로 평가도 음식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모양이 색다른지, 맛이 뛰어난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조리사라면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요리를 하지만 셰프의 열정과 정성이 음식을 특별하게 해준다는 걸 배웠어요.”

-1999년부터 수많은 VIP를 모시는 연회를 담당하셨다면서요?

“각종 큰 행사를 많이 치렀고, 연회 쪽의 책임자로 10년 가까이 일했어요. 지난 2008년 8월 미국의 조지 부시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홈페이지에 제가 만든 상차림이 사진과 함께 올라가기도 했어요. 뿐만 아니라 세계철강협회 총회, 남북한 판문점 행사, 월드컵이 열린 일본의 요코하마 경기장과 프랑스의 생드니 경기장에서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특별 메뉴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어요. 특히 월드컵 경기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을 맞춘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FIFA가 요리주관사로 롯데호텔을 선정한 덕분에 월드컵 주경기장은 물론이고 지방경기장까지 맡아 캐터링을 했지요.”

-부시 대통령에게는 어떤 요리를 대접하셨습니까?

“당시 미국산 소고기를 거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던 때라 좀 특별하게 메뉴를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우로 만든 갈비구이와 미국산 알등심 등 화합의 의미로 한미 소고기를 동시에 요리했지요. 조리사는 음식을 하며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는데, 한미 두 정상을 향한 조리사로서의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어요. 앞서 한우갈비를 구하기 위해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을 다 뒤졌어요. 그래도 진짜 한우갈비를 구할 수가 없어 백화점의 회장님이 드시는 한우갈비라도 있으면 달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이교찬 총주방장이 외국 국빈을 모시면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장면 하나. 한겨울에 인도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자, 이슬람 교리나 예식에 의해 도살한 하랄고기(halal meat)와 알랑미를 구하기 위해 발이 푹푹 빠지는 눈속을 헤치며 구해와 겨우 저녁행사에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1990년에 열린 남북고위급회담도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회담장 안에까지 들어가 다과와 식사를 준비했어요. 남북고위급회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나머지 남측 취재기자들이 너무나 많이 몰리는 바람에 남측 통로로 못 들어가고 북측 통로를 이용했어요. 그때 된장찌개를 끓여 드렸는데, 사실 출장음식은 식재료와 조리기구가 제약을 받게 되므로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할 수 없어 아쉬웠어요.”

-요리철학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해준 밥은 먹고 나면 든든합니다. 어머니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쏟는 정성이 각별하기 때문이지요. 밖에서 식사를 하고나면 뭔가 허전한데, 정성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조리사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리사가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요즘은 조리사가 되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조리사를 꿈꾸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단지 어려운 생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리사를 택한 사람이 많았지요. 그러나 저는 추운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난 후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남기면 기분이 좋은 것처럼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은 요리에 도전해 성공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전국의 130여 개 대학에 조리학과가 있지만 당시에는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이 유일해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했어요.”

-30년 이상 요리를 해왔으니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30년 이상 요리를 해왔지만 아직도 배울 게 무궁무진해요. 손님들의 음식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는 만큼 조리사도 그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지요. 시간이 나는 대로 훌륭한 요리가 있다면 벤치마킹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후배 조리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을 가지고 일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요리는 조화의 세계이므로 자기만 내세우지 말고 동료와 화합하며 팀워크로 일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식 전공자로서 한식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약선 음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트렌드가 힐링푸드에서 디톡스푸드로 넘어가고 있어요. 환경이나 스트레스 탓에 치유를 넘어 우리 몸에 쌓인 독을 해소하는 음식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그래서 병을 직접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먹고 즐기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게 하려고 해요. ‘한방콘소메 갈비찜’은 설탕이나 간장을 넣지 않고, 비프콘소메에 한방갈비찜을 한 건데, 짠맛과 단맛을 배제한 영양가 만점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에요.”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요?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게 좋은 음식이라고 하지만 먹는 사람의 몸에 맞는 요리가 가장 좋은 요리이에요. 아무리 좋은 재료와 정성을 들여서 요리를 했다 하더라도 먹는 사람이 싫으면 좋은 요리가 될 수 없어요. 먹어서 즐겁고 몸이 가볍고 좋아진다면 좋은 요리가 아닐까요?”

-조리사로서의 꿈이 궁금합니다.

“나름 특1급호텔의 총주방장이 되었으니 조리사 개인으로서의 꿈은 이룬 셈이지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후배 조리사들이 조리사로서의 지위를 갖출 수 있도록 나뿐만 아니라 조리사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게 꿈입니다. 형식적인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걸 워낙 싫어해 인터뷰를 거의 안 합니다. 글은 얼마든지 미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제 스스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조리 분야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아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며 발전시켜나갈 생각입니다.”

-어떤 점이 해야 할 일인가요?

“우선 의식의 발전이 있어야 해요. 우리 식문화가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배고파서 먹었던 그 시절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음식을 즐기며 먹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문화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산업도 산지에서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가공처리산업이 많이 발전했지만 위생이라든가 유통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어요. 위생시설과 유통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우리 식문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볼 때 유통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현지 생산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요. 유통단계를 보다 간단하게 축소하고 각 단계마다 위생을 고려한 유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동네 시장이나 소매 상가를 가더라도 위생상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냉장시스템과 위생시설을 갖춘 유통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교찬 총주방장은 해외에 나가 유통시스템을 보면 일본, 미국, 프랑스가 대체로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은 수산물에 대한 유통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우리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식품 첨가물이 인체에 해롭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일부러 식품에 나쁜 첨가물을 넣지는 않았겠지요. 단지 영리를 위해 인체에 해로운 걸 넣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내가 못 먹는 걸 만들지 말고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만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엄마가 해주는 요리와 밖에서 먹는 요리의 가장 큰 차이는 정성과 조미료입니다. 엄마가 내 자녀에게 먹이는데, 조미료를 넣을 수 있겠습니까?”

이교찬 총주방장은 국내 특1급호텔 총주방장들의 모임인 셰프 테이블을 제외한 대외활동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조리사중앙회 이사도 거부했다고 한다. 본인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꺼이 동참해 차곡차곡 일해나갈 생각이다.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그가 아름답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