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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서와 중복, 더위야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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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서와 중복, 더위야 물렀거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2558)]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 문화전문기자] “한여름 무더위가 몹시 심하지만 / 盛夏苦炎熱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 / 宵軒美景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 珠涵星照澗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 / 金漏月穿霞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 / 露重梅魂濕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 / 風凄竹韻多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 / 坐來無共賞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 / 幽興屬吟"

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 에 있는 <여름 밤 산가 마루에서 본 풍경[夏夜山軒卽事]> 시입니다. 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라고 노래하니 더위도 범접을 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이며, 잡절 중복(中伏)입니다.

▲ 김천 청암사 들머리 폭포(사진작가 최우성)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 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자리 위에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명 조식 같은 사람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고,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북한산에 올라 북한산수순비 탁본을 해올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남명과 추사는 9세기 동산양개 선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더위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지금 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간간이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그 안엔 이미 가을을 잉태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일입니다. “가을이 땅에선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선 뭉개구름 타고 온다."고 합니다. 가끔 들판에 나가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을 내 안에 담으면 이미 더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