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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산허리에는 생명의 망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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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산허리에는 생명의 망울이…

[정경대의 의학소설-생명의 열쇠(55)]

생명의 열쇠(55)


8. 자연이 나였구나!


양지바른 산허리에는 생명의 망울이…


[글로벌이코노믹=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 입춘이 한참 지나서 하늘은 푸르고 맑은데 얼음처럼 차가웠다.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삭였던 열기를 아직 내 뿜지 않은 탓이었다. 그 덕에 잎사귀를 벗은 숲은 새순을 내지 못하였고, 알몸으로 더위를 나는 것들은 어딘가로 꼭꼭 숨은 몸을 내보이지 않았다. 겨울 풍경이 그런 것이야 모를 리가 없지만 천지자연의 이치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눈길에는 곳곳에 거두고 살리는 섭리의 자취라 여겨졌다.

음습한 계곡에는 삭막해서 생명의 자취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지바른 산허리에는 잎도 없는 진달래 한 그루가 가지가지에 작은 망울을 옹기종기 매달고 있었다. 그 까닭이야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단절되지 않게 생명을 순환시키는 섭리가 추위로 잎을 거두고 따뜻한 애무로 망울을 내놓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진달래 바로 옆의 동료는 망울을 내놓지도 않아서 늦게 잎을 틔우는 잡목 같았다. 키도 작고 가지도 몇 개 되지 않은 것이 죽어 말라버렸을 성싶었다.

그런저런 생각으로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온 소산은 서울로 이사 올 때 미처 준비하지 못한 봄옷 두어 벌을 사둘 생각으로 남대문시장으로 갔다. 참 오래 만에 가보는 시내이고 시장이었다. 대학시절 4년을 헤매고 다녔던 곳이라 고향에 온 듯 반갑고 정겨운데 버스 창문을 열어 본 숭례문은 가슴을 답답하게 하였다. 불에 탄 상흔을 복원하느라 가리개에 갇혀있어서 불쑥 화기가 치솟았다. 화가 났으면 났지 애꿎은 숭례문에다 불을 지른 늙은이가 새삼 괘씸해서 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빠르게 지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욕을 할 뻔 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쁜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 생각도 까맣게 잊었다. 시장 안에서는 오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걸음을 떼놓느라 애를 먹었다. 옷 가게가 즐비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냥 눈에 띄는 가게로 들어가 첫 눈에 마음에 드는 잠바와 셔츠 하나씩을 대충 몸에 맞춰보고 사서는 배낭에 넣어 짊어졌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hs성북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