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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24)]제13장,十勝地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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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24)]제13장,十勝地는 어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은 심기신(心氣身)의 감(感) 숨(呼吸) 촉(觸)의 욕구에 의해 발생하니, 이를 금하면 신령한 본성과 통하므로 이에 십승지에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리훈을 해석한 그는 십승지에 들 수 있는 방편을 선도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법을 하루속히 알려야 할 때가 임박했음을 알고 마음이 급해 지난 한 해 가뭄과 홍수에 농사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단안을 내리고 초겨울에 상경했다.

지은 농산물을 내다 팔아서 목돈을 쥐기는 어려워도 그나마 식구가 셋뿐이라서 한 일 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은 없다 싶어 상경하는데 크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더욱이 아내가 함께하는데다 동생 선희도 동행해서 오히려 예전보다 마음은 편했다.



한성민은 계획했던 대로 최철민의 수련원에다 짐을 풀었다.

그리고 예전의 이름을 바꾸어 선도수련원이라 간판을 새로 내걸고 선희가 기거할 방도 하나 더 꾸며놓았다.
서울 올 때 장인장모가 친히 시골까지 내려와서 함께 있자고 사정도 하고 강권도 했으나 굳이 마다했었다. 처갓집 생활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출발할 선원(仙院)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련원에서 숙식하는 것이 나을 듯해서였다.

선원을 개원한 첫날에는 찾아온 수련생이 모두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최철민의 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된 수련원이라 옛 사람들은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대부분 그들이라 놀라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소진수 사범이 한성민이 직접 지도한다며 일일이 전화해 설득한 덕분이었다. 며칠이 지나서는 장인장모가 은퇴해 할 일없이 소일하는 선후배 친구들을 대거 스무 명이나 모아와 처음부터 선원 운영이 순조로웠다.

한성민은 수련생들을 오전과 저녁에 한 번, 오후에는 두 번으로 나누어서 되도록이면 소수인원을 한 반으로 조직해 직접 지도했다.

그리고 토요일 하루는 한 주일동안 배운 수련법을 반복연습하게 하되 2시간을 할애해 특강하는 날로 정하고, 일요일은 자율수련을 하게 하였다.

교육프로그램은 처음 한 달간은 건강을 위주로 집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손쉽게 행할 수 있는 양생수련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웬만큼 체력이 길러진 다음에는 숨을 고르게 쉬고 정신을 집중하는 수련법을 가르쳤다. 그가 가르치는 법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한민족의 전통기공법이었다.

어떤 행법은 무술에 가까운 활기법이어서 나이가 많은 장인장모 또래 수련생들은 불과 한 달 만에 활력이 넘친다며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입소문이 널리 퍼져 불과 석 달 사이에 수련생이 오십 명이나 더 불어났다. 이럴게 되자 초급 중급 상급반으로 나누어서 아내와 소진수가 도와주어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선희도 양생법을 배워서 초급반을 가르쳤다.

4개월 째 되는 날부터는 처음부터 배운 수련생들한테는 단전호흡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한 가지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토요일 특강 때 그 이치와 이론을 충분히 강의한 다음에 실습시켰다.

그런데 단전호흡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학문적 논리와 호흡법을 바로 인식시켜주기 위해 연 2회나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