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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61)] 알뜰살뜰하게 만들어갈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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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61)] 알뜰살뜰하게 만들어갈 우리들의 이야기

바야흐로 1년의 시작이다. 교사인 나는 3월이 되어야 비로소 1년이 시작되는 것을 실감한다.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학교가 텅 빈 듯하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교정 곳곳에서 쟁그랑 쟁그랑 꽃망울이 피어날 것이다. 풋내 폴폴 풍기는 교생선생님도 아닌 데, 은근히 3월이 두려워지는 것은 왜 일까. 작년에 담임교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새로운 아이들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설레기도 하지만 자못 두려움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지 않은가. 사랑에 빠지면 물불 가리지 않게 되는 것처럼, 올해 내가 만날 아이들과의 진정한 사랑 만들기가 이러한 두려움을 가볍게 떨쳐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아직도 ‘사랑타령’이나 하는 ‘사랑이 서툰’ 철부지 선생의 아이들. 때로는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나? 고민할 때도 있지만,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 그것이 전해질 것이라 믿는 조금 고리타분한 선생을 만날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떤 아이들일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저마다의 성격으로 자랐을 아이들이 한 울타리에 모여 또 다른 가정을 만들어가는 일. 정현종 시인의 말마따나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인데, 34명의 각기 다른 일생을 마주한다니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비단 교사가 되는 일 뿐이겠는가. 부모가 되는 일, 한 사람의 평생 단짝이 되는 일 등 실로 많은 책임감과 헌신이 따르는 이 일들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용감하게도 이 자발적 희생을 선택하곤 한다. 인생에 있어 커다란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담임교사가 되어야 할까. 그리고 어떤 부모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학창시절, 나를 꿈꾸게 한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섬김을, 그 사랑을 가만히 떠올리며 해답을 찾아본다.

교사를 꿈꾸던 시절, 몇 번의 면접을 보며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지도하겠냐?’는 질문도. 교단에 서는 모습을 상상하며 간절한 꿈으로 글썽이던 그때의 나는, 그 질문에 ‘사랑으로 지도하겠다.’는 이상적인 말만 되풀이하곤 했었다. 뻔한 말을 너무나 진지하게 하는 내게,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순수한 건지 뭔지 갸우뚱하는 분도 계셨다. 몇 번의 좌절을 겪은 후 구체적인 방안을 답안으로 제시해야 함을 깨달았지만, 사실 나의 답은 ‘사랑’ 그것 뿐이었다. 그게 정말이었다. 그거면 필요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들으며 경험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선생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냥 그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생의 입장이었지만,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보다 참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매일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고, 관심과 사랑으로서 ‘사람’을 세워 나갈 수 있으니, 그 사랑으로 세워진, 그 ‘사람’ 하나가 세상에 나가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나비효과. 물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담감도 있다. 실제로 좋은 기억으로는 남지 않는 선생님들도 계시니까. 아무튼 그런 대단한 꿈을 꾸는 것 치고는 참으로 대책 없기도 했지만, 현재 나는 정말 꿈처럼 그렇게 교사가 되어있다.

교사가 되고 나서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 은사님들을 찾아뵙거나 우연히 라도 뵙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 깊이 참 반갑고 감사한 마음부터 들곤 한다.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누거나 학창시절 선생님과 함께 나눈 추억을 떠올릴 때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게 된다. 방전된 배터리가 채워지듯 덕분에 사랑을 채우면,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겸허한 자세를 되찾게 되면 혼자 있을 때 읽고 또 읽는 책이 바로 이상대 선생님의 ‘4050 학급 살림 이야기’이다. 3월부터 12월까지 마치 월령체 시가를 읊어내듯 학교의 풍속과 구성원의 삶을 노래하는 교사의 속 깊은 이야기. 이에 비하니 나의 사랑이, 나의 계획이, 문득 머쓱해진다. 말만 앞섰지 사실 아이들에게 이 선생님처럼 많은 노력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이다. 매달, 어쩌면 이렇게 살뜰히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를 쓰셨는지 나는 도통 할 말이 없어진다. 첫 담임시절부터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나를 성장시켜준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야무지게, 지치지 않고 수위를 잘 조절해 나갈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적응력과 자존감을 갖게 될까. 때로는 마냥 사랑을 표현하는 것 보다 짐짓 냉정한 척을 해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연기력이 부족해서 속마음을 감추지 못할 때가 많다.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도 되고……. 담임이 헤매면 아이들까지 덩달아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에 바짝 정신을 차리자 다짐을 해본다.

열정을 쏟아내는 일도, 정신없이 바쁜 것도 감수해야할 내 몫이지만, 바쁘고 다급할수록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수시로 자문하여 중심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교육에 있어 정도(程度)가 무엇인지,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그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요란스럽지 않아도 말없이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가는 주변 선생님들의 걸음에서, 가끔 ‘아, 저것인가보다’ 가늠해 볼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알뜰살뜰하게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살며, 사랑하며, 다시 또 살며 사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

어느 책에서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조금 위안이 되는 말이다.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욕심을 비우고, 반드시 잘 해내야겠다는 부담도 내려놓자. 신이 아닌 이상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리라. 그저 아이들과 희희낙락 웃으며 즐겁게, 알뜰살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스승들이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여러분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그 살뜰한 ‘마음’을 누긋누긋이 꺼내어보자. 교사가 되어보니 이제야 비로소 고마운 스승님들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마냥 동경할 뿐이지, 철부지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었던 선생님들의 노고. 일상에 젖어 살다보면 알면서도, 생각이 나도, 선뜻 연락을 드리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한 번쯤은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해보는 거다. 쑥스럽지만 그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사실 가장 충전을 받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학창시절 좋은 추억만을 남겨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본다.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