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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6)] 조문국은 신라 복속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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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6)] 조문국은 신라 복속국이 아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삼한시대 조문국 왕, 의성조문국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삼한시대 조문국 왕, 의성조문국박물관


탑리리 출토 금동관은 경주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관의 장식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신라 지역에서 출토된 예가 거의 없다. 이처럼 깃털 모양의 세움 장식을 부착한 관과 관식은 고구려 지역에서 오히려 더 많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에서 출토되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식은 그 모양이 탑리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탑리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신라의 수도인 경상북도 경주와 지방인 경상북도 의성의 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다.

황남대총이 만들어지던 5세기 전반 신라는 고구려와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지방 또한 신라 방식으로 지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시점이다.

황남대총에서 고구려 계통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는 사실은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급속하게 성장해 나가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금동관이 출토된 의성 탑리리 고분은 황남대총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전형적인 무덤인 돌무지 덧널 무덤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탑리리 고분군을 만든 세력은 이미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금동관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의성 지역을 매우 중시한 신라 왕의 하사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