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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소쩍새 울다'…유년-청소년-청년-여인에 이르는 사계를 소쩍새에 의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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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소쩍새 울다'…유년-청소년-청년-여인에 이르는 사계를 소쩍새에 의인화

현대무용가 최효진(한양대 겸임교수) 안무의 '소쩍새 울다'가 2017년 2월 11일(토)과 12(일) 포이동 M극장에서 공연됐다. 밤에만 우는 소쩍새를 의인화한 작품은 그녀의 유년, 청소년, 청년, 여인에 이르는 사계를 담는다. 그녀의 이번 네 번째 개인공연은 현대무용 기교를 바탕에 두고 한국적 기본 정서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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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함, 호기심, 탐구심을 징검다리처럼 건너 바쁜 일상의 틈에서 찾아낸 적(赤), 그 선홍의 열정은 기다림으로 그녀의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시린 가슴속에 묵혀두었던 추억들은 현(弦)의 울림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꽃의 신화를 일깨워주었다. 그녀의 춤은 천경자의 화풍(畫風)을 닮아 있지만 원색의 낭만은 남국의 이질이 아닌 남녘의 고향의 봄과 산하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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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과의 소쩍새는 수컷만 울 건만 그녀는 4월 중순이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울어대는 그 느낌을 공유하고자 공연 제목을 '소쩍새 울다'로 설정하고, 왼편에 항아리와 바른편에 홍매화로 무대를 꾸민다. 벤치는 그녀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색공간이 된다. 기억을 더듬는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 여인(최효진)은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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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를 뚫고 해빙과 함께 피는 춘란(春蘭)의 소박함을 벗어나 울긋불긋한 산하에 핀 야생화, 사월의 꽃나무에는 봄바람과 더불어 열정이 피어난다. 배치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나이로 갈래한 인화(人花)와 대비된다. 격한 서정으로 풀어낸 '소쩍새 울다'는 항아리 하나에 어머니, 다른 항아리에 장연향, 또 다른 항아리에 이숙재 선생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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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에 담긴 붉은 천으로 연결된 기억의 단자를 하나 뽑아 올리면 기억은 삶의 의지로 가득 찼던 뜨거운 열정의 청춘으로 변한다. 안무가는 자신의 존재를 붉은 색으로 내보인다. 젊은 날의 자신의 역동적 모습을 투영하는 붉은 원피스의 세 여인들(최은지, 박관정, 최진실)은 젊음의 춤을 추다가 독창적 상징적 개성을 보여주는 환희와 영광의 꽃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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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최효진은 현대무용의 난해함을 추구하다가 인간 본연의 순수와 열정의 미묘한 감정을 창호지를 파고드는 한 줌의 빛이나 정지된 듯 보이지만 일렁이는 신비적 마음의 결을 존중하는 태도로 춤 예술의 가치를 격상시켜온 춤 작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분명한 태도로 그의 몸 시(詩)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독자적 문화형성의 한 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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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춤의 ‘광란적’, ‘도발적’ 격정이 쓸고 지나간 듯한 후끈한 분위기 더미 위로 그 위대한 청춘의 여름을 회상하는 여인은 이제는 돌아와 현실 앞에 선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붉은 색으로 현실의 음습을 털어내고, 희망을 써내려가고 싶어 한다. 그녀의 생산적 힘의 정제, 내면세계는 현대무용과 창작무용의 유기적 흐름으로 미학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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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울다』의 꽃의 서사에서 자연과의 완전한 동화(同化), 몰입에서 오는 데코럼에 부합되는 춤 연기의 진정성, 현학적 묘사를 배제한 정교한 수사, 심연에서 뿜어내는 듯한 깊은 감정의 호흡, 현란한 춤 기교와 행동의 통일성을 구축하는 구성에서의 차별성은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차가운 머리로 온몸을 뜨겁게 만들었다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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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울다』, 그 정묘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이미지 총합은 경험적 상상에서 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스며든 리듬감과 붉은 색 주조의 시각적 비주얼은 지속적으로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서정적 가로 축에 역동적 세로축이 맺고 빚은 작품 속에 김재덕의 음악이 파고들고, ‘흑과 적’의 의도적 진실은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어 감동의 작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안무가는 자신의 ‘열정의 그림자’, 그 느낌을 다시 가슴에 담는다. 자신의 열정을 닮고자하는 후학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 상징으로 붉은 천을 날린다. 바람이 인다. 잡을 수 없는 세월의 덧없음,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는다. 시린 가슴을 달래는 노래가 비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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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시대색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개성을 견지하는 안무가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이미지 구조는 사랑과 소멸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 단절면의 뜨거움을 상징하는 꽃비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녀만의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흔들림이 없는 삶은 해마다의 상처가 될 것이다. 그녀의 신작 『소쩍새 울다』는 안무가의 상처의 일부이며, 상처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성장하는 법이다. 그녀가 커오는 봄을 앞두고 올린 작품은 수작(秀作)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