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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5)] 불친절이란 이런 것, 트롬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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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5)] 불친절이란 이런 것, 트롬쇠

6월29일, 트롬쇠


6월29일 낮12시 시청건물에서 백야마라톤 사무소의 문을 연다고 해서 일찌감치 찾아갔다.

취재란게 언제나 그렇다. 주최측이 대단한 홍보의지를 가지지 않는 한 귀찮아하는 것을 뚫고 내 나름의 목적을 달성해야한다. 사람들이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런데 있다. 하루 이틀 겪어온 것 아니지만 어쨌든 난 이 마라톤 취재를 위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얻었고, 호텔 예약까지 주선 받았으니 취재 예행은 다 한 셈이다.

근데 나름 국제대회라고 생각했는데 언론담당자가 없고 그냥 몇 명의 직원이 꾸려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들이 대회 운영을 위해 바쁜 것은 안다. 경주감독이 바쁘다며 나를 다른 남자에게 넘겼고, 그 남자는 내 명함도 받지 않고 작년 겨울 열린 북극곰 마라톤대회 우승자로 운영을 도와주고 있는 M에게 나를 넘겼고, M은 어쩔줄 모르겠다는듯 L에게 나를 넘겼다. 그냥 자기일이 아닌 것에 귀찮다는 투였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어 무척들 바빴고 나중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배려해줬으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무슨 공도 아니고 이리 저리 토스를 해대는데, 왜 그냥 곁에 있는 사람에게 떠넘기는지도 모르겠고 떠넘김을 받은 사람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난 아주 기본적인 팩트와 내가 취재할 행사만 확인할 목적이었는데, 나에 대해 설명도 안해주고 줄줄이 넘기니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다시하고 설명하고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프레스를 접해보지 못했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듯했다.

이곳에 오기전에 유럽여행 카페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의 상점점원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옆에서 누가 도둑질을 해도 나는 물건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도둑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모른 척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더 안정적인 사회기반을 가지고 있으니, 또 그런 바탕이 있기에 개인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시스템이 굴러가기에 그렇게 사는 것에 길이 들여진 것에 내가 뭐 할말은 없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온 나로서는 이러고도 공동체가 유지되고 굴러간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질려버려서 이미 대회 소식지를 통해 파악해둔 스케줄에 따라 “오늘 오후7시에 폴라리아 수족관에서 있는 파스타 파티에 갈거니 거기나 들여보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가면서 “이미 예약이 꽉 찼어!”라고 난리인 것이다. 그래서 “난 취재 왔어, 난 마실 것도 음식도 필요없고, 그냥 보고 그에 대해 쓰기만 하면 돼. 이해하겠니?” 했더니 그제서야 조금 알겠다는 듯 끄덕끄덕한다.

질문했을 땐 아무런 행사가 없다고 하더니 정오가 되자 시청관계자인 듯한 여자와 경주감독이 대회 선포식을 한다. 이건 또 뭐? 이들에겐 이건 행사가 아닌가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나 진짜 화났거든. 나 한국에서 열몇시간 비행기 타고 왔는데 좀 심하잖아. 언론홍보담당자가 따로 없으니까 이러는건 알겠는데, 나 일단 떠난다”하고 나와버렸다. (나중에 이곳 교포에게 들은 바로는, 이들은 이렇게 세게 나와야지 조금 일이 진척된다고 한다. 잔뜩 서류를 쌓아놓고 몇년씩 묵혀놓기 일쑤라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계속 재촉을 해야한단다)

◇트롬쇠가 북구의 파리라고? 웃겨들

화도 풀 겸 좋은 것들 둘러보면서 관광이라도 좀 해야겠다 싶어 노르웨이 해안을 도는 쾌속선 후르티루튼 항구 곁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갔다. 7월2일 새벽1시30분에 후르티루튼 탑승 예정이라, 낮12시에 호텔 체크아웃하고 연재물을 써서 보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3명의 여직원이 안내 데스크 안쪽에 있는데 한 명은 인생에 지친듯한 인상 안좋은 노파, 다른 한명은 아직 학생인듯 보이는 백인여자, 못생긴 젊은 동남아 여자 한명이었다. 근데 이들의 특징은 별로 바쁘지도 않은 일에 달려들어 있으면서 손님이 와도 못본 척 한다는 것이다.

노르카프홀에 갔을 때도 같은 일을 봤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길거리에서 오가다 만난 것도 아니고 안내데스크에 온 사람은 당연히 이곳이 낯선 관광객이고 안내가 필요해서 온 사람들인게 너무 명명백백한 데도 여기 사람들은 “뭐 도와줄까”라고 먼저 묻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그냥 종이 쪼가리 뒤적뒤적하고, 의자 같은거 매만지면서 딴청 피우기 일쑤다. 그래도 노르카프홀에서는 붙잡고 물어보면 나름 아는대로 응대는 해준다. 그런데 당연히 걔네가 할일을 하는건데도, 물어보는 내가 뭔가 방해를 하는 것처럼 미안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들 나름의 문화라고는 해도 참 요상한 나라에 와있는 것 같다. 그들이 그렇게들 나름 살아가고 있는데 잠시 들른 외국인인 내가 뭐 따지고 들일은 아니다. 내가 백인이 아니라 무시하는 건가, 인종차별 당하는건가 하는 자격지심이 자꾸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트롬쇠 관광안내소는 나름 홈페이지도 거창하고, 건물안내도 요란한데 비해 직원들은 싸가지 없음의 극치였다. 왜 돈받고 거기 앉아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에는 이 손바닥만한 트롬쇠를 북구의 파리라고 주장해놔 어이가 없었다. 건물 외벽에도 ‘비지트 트롬쇠’, ‘데스티네이션 트롬쇠’ 등등 간판도 제법 그럴듯하게 붙여놨다. 안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버스스케줄표 박스에서 꺼내는 일에 여럿이 들러붙어 엄청 바쁜 척들 한다.

물론 삶의 속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견딜 수 있는 노동강도가 다르다는 건 안다. 이들은 그렇게 살 필요가 없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 극동아시아인의 과중한 업무가 삶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부작용이 많다는 것도 안다. 나 역시도 거기에 진력이 날만큼 난 상태다. 그러나 효율적, 기능적인 것이 다가 아닐지라도 확실히 아시아인들, 특히 한국인들이 머리도 평균적으로 훨씬 좋은 것이 이미 IQ 조사결과 나와 있는데다가, 부지런함과 성실성까지 더하니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일단 늙은 여자에게 다가가 “인터넷 와이파이 되는 카페를 알려달라”고 하니 “난 몰라. 도서관으로 가봐” 한다. “도서관 열람시간은 어떻게 되느냐”고 다시 물으니 또 “몰라. 아마 일찍 닫긴 할거야” 한다. 어떻게 이 도시에는 인터넷 카페조차 없느냐고 하니 옆에 있는 뚱한 백인 여자애에게 “너 아니?” 하니 그 여자애도 모른다고 도리질을 한다. 도서관 오픈시간은 이 지역 지도에 나와 있었다. 그저 널러있는 지도 한 장에서 찍어서 보여주기만 해도 되는거다. 할망구가 당당하게 “아이 돈 노”하는데 기가 턱 막혀온다.

게다가 백인여자애에게 트롬쇠대학으로 가는 버스시간표를 하나 얻으면서 “내일 백야마라톤하는데 길 막고 버스도 안다닐 수 있지 않니?”하고 물어보니 “걱정하지마. 버스는 다 다녀”하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는거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당연히 구간별로 경찰 나서서 길 막고 버스도 시간별로 운행 정지됐다. 상식적인걸 물어보는데도 한마디로 상식이 없는 애였다.

뭐 그래, 너네 부자 나라고, 천혜의 자연환경에 먹고 살 걱정도 없는 복지환경에 게다가 유전까지 펑펑 나와주니 이런거 안해도 잘들 사는거 안다. 그래도 인간에 대한 예의란게 있는 법인데 하는 짓들이 이따위니?

더 가관은 옆에 나란히 있는 동남아 여자애다. 지들 잘난 줄 아는 백인들은 그렇다 쳐. 역시나 종이조각 만지작거리며 딴청 피우길래, 걔는 언어를 잘 못해서 안내는 안하는 앤 줄 알았다. 근데 키큰 백인남자가 와서 영어로 나와 같은 걸 물어보니까 인터넷 카페의 위치를 알려준다. 손님도 몇 안되는 조그만 목조가옥 사무실에서 옆에서 뻔히 돌아가는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척 한 것이다. 게다가 정직원인지 성수기 알바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트롬쇠 박물관에서처럼 아시안을 채용한 건 아시안이 오면 대응하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근데 씹어? 정말 욕이 절로 나온다.


◇이 아름다운 교회도 입장료 받네

기분전환을 위해 마음의 안정을 좀 얻어볼까 하고 그 유명하다는 북극교회로 가보기로 했다. 그냥 걷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눈앞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걸었다. 여름철에는 하루 두차례 연주회가 있다. 6월1일~7월31일 매일 오후 2시에 오르간 콘서트가 있고(25분간 70크로네), 8월15일까지는 자정에 맞춰 백야콘서트가 열린다. 날도 추운데 밤시간까지 나돌아다닐 생각은 없고 오후 2시 콘서트나 보자고 갔다.

안내지도상에는 중심가에서 20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고 돼있는데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에 있다. 근데 이 다리를 건너는게 생각보다 보통일이 아니었다. 속도를 내며 쌩하니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과 소음을 고스란히 견디며 건너야하는 거다. 이것까지는 계산에 못넣었다. 매연과 추위때문에 목도 칼칼하고 콧물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뒤틀어진 심사는 펴질 생각을 안한다.

근데 뭐냐, 마음의 평화 좀 얻어볼까 했더니 무슨 교회에서 입장료를 받아. 35크로네를 내야한다. 하긴 신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몇 명 찾아오는 신자들마저 헌금이라고 동전 몇개를 내는 마당이니, 이런 건물을 유지하는데 돈이 꽤 필요한 것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뒤틀어진 심사는 대체 펴질 줄을 모른다.

잠시 빵조각이나 뜯으면서 기다릴까 하는데 역시나 북극교회 뒤 주거지역에는 인적도 참 드물다. 마침 슈퍼모델 뺨치는 키큰 금발 틴에이저가 지나가길래 식당이나 마켓 없니 물어보니 “한 10분 가면 피자 파는 집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거기서 더 좀 가면 음식살 수 있는 마켓도 있거든”이라고 한 5분은 영어로 지껄인다. 영어 연습할 사람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 다 알아듣지도 못하겠는데, 나도 172㎝로 이곳에서도 작은 키가 아닌데 한참을 올려다봐야하는 그 미모의 여자애가 예뻐 죽겠다.

여기는 동네마다 있다는 음식점이 이탈리안 피자 파는 집이다. 대개들 중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운영한다. 어쩌다가 보면 터키음식을 겸하는데도 있다. 식당을 찾아갔더니 오후3시 이후에나 연다면서 뒤쪽에 있는 케이블카나 타고 갔다 오라고 한다. 마켓 위치를 물어보니 없다고 우기면서. 마켓에 갔더니 역시 나이가 얼마 들어보지 않는 애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진짜 친절했다. 남자애는 샌드위치를 마이크로웨이브오븐에 데워준다고 나서서 “즐거운 휴가 보내라”며 싹싹하게 인사를 하고, 계산대에 앉은 여자애도 환한 미소를 보낸다.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의 친절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진짜 작은 동네지만 거주지역에만 와도 이런 ‘정’이라는게 있다. “생긴대로 논다”는 말이 있는데, 보니까 노는대로 생겨지는 것 아닌가 싶다. 내 눈에는 영화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처럼 사람의 마음씀에 따라 외모의 오호가 더 갈리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곳에서도 눈부신 미소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불친절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니 그런 것들이 완전히 가려져버린다. 천성도 있고 개인차고 있고, 물론 직업이 되고 세월의 때가 묻으면서 변질되는 것들이 있지만 최소한의 직업적 책임감도 없는 행동들에 기가 질려버린다. ‘덕분에’ 내 표정도 뭐씹은 표정으로 굳어져버렸다.

교회만은 정말 아름다웠다. 돈내고 볼만하다. 1965년 세워진 이 교회는 북부유럽의 자연을 반영하고 있는데 흰색의 삼각지붕이 여러개 이어진 모습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삼각 지붕들 사이의 틈새로 보여지는 풍경이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신비함을 더한다. 뒤쪽으로 난 전면 창으로는 내가 건너온 다리도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25분간 이어지는 오르간 연주는 현대적이고 모던한 곡과 전통적인 성가로 나뉘는데, 오르간이 왜 교회음악으로 주로 쓰이는지 알 것 같았다. 신비하고 현묘한 소리를 다들 조용히 감상한다. 인간이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온갖 웅장한 표현방법들을 다 모아놓은 이곳에서의 한 때를 기억하기 위해.

◇조용한 북구에 요란하고 즐거운 이탈리안

이번엔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 다시 중심가쪽으로 가는 해변쪽에 있는 북극박물관에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독일 함부르크에서 왔다는 노부부가 버스비를 물어보길래 한번 탈 때 28크로네, 24시간 유효티켓은 60크로네라고 버스스케줄 보는 법까지 안내했다. “노르웨이어까지 배웠다니까요” 이래가면서. 관광안내소가 불친절하니 관광객들끼리 정보공유하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지.

천장이 낮은 19세기 관세청 창고를 개조한 2층 목조가옥에 들어선 북극박물관은 난센과 아문센의 북극탐험, 스발바르제도에서의 북극곰 사냥 등의 전시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서있다. 이 박물관은 아문센이 트롬쇠에서 출항한 배를 타고 가 실종되고 나서 50주년이 되는 날인 1978년 6월18일 개관했다고 하는데, 이 도시에는 참 아문센 동상이 여기저기도 많다.

갑자기 박물관 입구 매표소가 요란해져 돌아보니 4명의 이탈리안 중년 남녀가 표 한장씩 사기를 온갖 소란을 다 떨고 있다. 흰 콧수염을 기르고 개중 영어가 좀 되는 듯한 남자가 짧은 영어 실력으로 “여기 여자들은 키가 작아 어린아이 만한데 어린이 가격으로 해달라“는 등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10여분 간 온갖 제스처를 섞어 전달하다가 들어간다. 들어올 때부터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 있던 여직원의 심정이 좀 이해 갔다. 영어를 잘 못하는 관광객들에게 영어로 입장료 얼마다, 이딴 소리를 알아들을 때까지 질러대야하니.

하지만 차가운 북구에서 따스한 햇살 아래 낙천적으로 살아온 이들을 만나니 즐겁다. “이탈리아에서 오셨지요?”하고 영어로 물으니 한 여자가 이탈리아어로 큰 제스처를 해가며 묻는데 “이탈리아어 할줄 아남?” 그런 뜻인거 같다. 내가 알아들일 리가 없지 않겠수. 이탈리아어를 알아서 이탈리아에서 왔냐고 물었겠소, 딱 보면 시끄러운것이 이탈리안인줄 알겠구만.

◇북유럽까지 와서 성질 부려야?

폴라리아 수족관에 미리 가서 30분마다 번갈아 상영하는 9분짜리 오로라와 15분짜리 스발바르제도의 동식물에 대한 파노라마 필름을 보며 기다렸다. 5면으로 된 스크린이 더욱 입체적이다. 물개 먹이 주는 쇼는 낮12시30분, 오후3시 등 하루 두번 있다고 하는데 시간은 지났다.

오후7시께가 되자 백야마라톤 사무국의 L이 국적별 참가자들을 집계한 종이를 프린트해 가져다 준다. 여기까지 와서 속어로 ‘곤조’, 즉 성질을 부려야 일이 좀 돌아가는구나 싶어서 허탈하다.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네 것도 예약해놨으니 가서 식사하라”면서 “오후 1시에 있는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갔니?”하는 것이다. 기자회견이 있으면 얘기를 해줘야알지, 여기저기 돌리기만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 황당하고 내 취재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오점이지만, 더 이상의 화는 안내기로 했다. 이 정도 하는 것만 해도 노력들 많이 한 거다.

한국인 참가자도 2명 있다. L을 도와 입장객을 확인하던 T라는 남자가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삼성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들에 대한 정보를 보여줬다. (노르웨이 TV에서도 삼성 갤럭시3 광고를 많이 하는데, 주로 판매대행사가 하는 CF인듯 싶다. 삼성 갤럭시들을 많이 쓰는데 나름 반가워서 “삼성이 한국거인줄 아니?”해도 다들 떨떠름해하며 별로 반응들을 안보인다. 우리식의 애국주의적 기업 선호가 여기서는 별로 의미들이 없나보다) 트롬쇠대학의 Spreke Tanker 팀에 소속된 김정임씨가 풀코스 마라톤에, 손민정씨가 하프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한다.

취재중에 뭐가 잘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이 와중에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이 대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이 파티에 돈내고 참가한 150명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뷔페식으로 파스타 퍼다 먹는 거나 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대만 출신으로 독일에 살고 있다는 키작은 동양여인이 있기에 얘기를 좀 나눴는데, 마라톤 시작한 후 한 6, 7년동안 매년 세계 각국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왔단다. 그러고보면 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마라톤대회들을 많이 연다. 한국에서도 언론사들이 경찰의 협조를 얻어 길을 막고 마라톤대회를 여는 것이 꽤나 큰 수익들을 내는데, 결국 마라톤 인구들에게 이런 저런 도시에서 뛰어봤다는 얘깃거리를 파는 큰 장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