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민은 내친김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나자 속이 다 시원해서 술잔을 거푸 두 잔이나 비웠다. 그러나 그는 듣는지 마는지 음식에서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최철민의 고백을 줄 곳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일견 사람됨이 곧아 보이기는 해도 언젠가는 교주행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진심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도 물질과 명예에 관한 일에 종사하다 보면 초심을 잃기 마련이어서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좋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는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니 아까 약속한 대로 자신을 잘 다스리면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복을 받을 거야.”
한성민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교활한 수법으로 돈이나 긁어모으지 않고. 진심으로 가르쳐서 사람들이 그 덕을 입는다면 존경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최철민이 몇 가지 재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과연 그 마음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 의심스러웠다.
결국은 재물 욕에 혈안이 돼 무예의 도를 터득할 수 없을뿐더러 주먹으로 불의를 응징하겠다던 정의감도 욕망을 위한 명분으로 쓰이지 않을까 저어했다. 마치 깨끗한 옷에 흙탕물이 한 방울 묻었을 때는 더러워짐을 안타까워하지만 두 번 세 번 ...........그러다가 옷이 다 젖어버리면 더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아예 더러움에 젖어버리듯, 최철민은 지금 그런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했다.
“형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절대로 불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형님, 솔직히 존경받고 돈도 잘 벌고 있지만 아직도 무술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무술은 거의 다 익히고 힘도 자신이 있습니다만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역시 도를 모르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무예가 예전만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해요.”
“그래?”
그것이 무술이든 마음수행이든 사사로운 욕망에 집착하고 있는 한 도를 얻기란 나무에서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따라서 최철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말 무예의 도를 얻고 싶다면 욕망을 버리라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네 마음속의 욕심을 버려라 하고 정곡을 찌르면 자존심을 상해할 것 같아서 전혀 딴 이야기처럼 물었다.
“자네, 이 수련원 규모를 얼마니 더 늘릴 계획이지?”
“그야........저.........?”
최철민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 모양을 본 그는 금방 짐작했다. 모르기는 해도 한국에 수백 개의 지부를 내는 것도 모자라서 미국 영국 일본 할 것 없이 전 세계에 수천 개의 지부를 둘 욕심을 말하기가 뭣해서 그럴 것이라 단정했다. 그나 그 정도라면 국위선양에도 좋아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격려하겠지만 그것을 빌미로 재벌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는지 의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