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한해 전인 1895년 11월 27일 쓴 유언에서 자신의 유산 중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를 출연하여 노벨상 재단을 설립토록 했다.
당시 기금 액수는 미국 달러화로 약 440만 달러였다.
여기에는 웃지못할 에프소드가 전한다.
노벨이 이 유언장을 쓰기 직전에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 먼저 죽었다.
당시 프랑스의 한 신문이 형과 동생을 착각하여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동생 노벨의 부고 기사를 냈다.
그 부고기사의 제목이 "죽음의 상인 가다" 였다.
또 상인이란 표현은 그 죽음의 무기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이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노벨은 평소 순수한 과학적 동기에서 개발한 다이너마이트가 살상용으로 바뀐 것에 못내 가슴 아파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부고기사에서는 한 술 더 떠 사람을 죽여가면서 돈을 번 '죽음의 상인'이라고 했으니 통탄할 일이었다.
당황한 노벨은 조금이라도 그 이미지를 희석해 보려는 의도로 노벨상을 만들어냈다.
노벨상중에서도 평화상의 비중이 큰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평화상 뿐 아니라 의학상이나 화학 그리고 물리학 상 등도 과학적 진보를 통해 인류의 복지와 평화에 기여한 인물을 골라 수상한다.
노벨상에는 다이너마이트로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수여되었다.
김대호 경제연구소 소장 겸 대기자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