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숭철씨는 점점 소멸하는 아내의 곁을 지켰고, 꺼져가는 아내의 영혼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저 아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문숭철씨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쓴 일기를 아내의 영혼이 기억 속으로 자리한 후 한 편의 에세이로 엮으며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고백한 후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아내의 영혼이 살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내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우리 집사람은 명이 좀 짧았지…."라며 아내와의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서 마치 남 얘기하듯이, 무슨 예행연습 하듯이 혼잣말 해보았는데 어딘가 작게나마 위안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무슨 조화일까. 딱 5분 정도였지만 무거운 마음이 다소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평소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본 함세웅 신부는 추천사를 통해 "아내를 끝까지 돌보고 지킨 남편의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 가득한 이 증언이 병고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분들과 가족들에게 위로의 계기가 되고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등 암 환자를 돌보는 모든 분들에게는 아름다운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아내의 병이 점점 깊어지면서 통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산나가 말을 할 때 점차 구성하는 어휘가 짧고 단순해졌다. 표현의 감도는 약해지고 그 빈도 역시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결함투성이가 되어버린 표현력으로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제는 말로 표현된 것, 의식에 드러난 것 너머로 보다 민감하게 촉각을 세우지 않으면 산나가 하고자 하는 많은 말들을 놓쳐버릴 수 있음을 의미했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가까운 이의 죽음과 소멸에 대해 미리 예비해둔다면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새로 탄생하는 순간을 축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