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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17)]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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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17)]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슥슥-. 개수대에서 엄마의 소리가 난다. 설거지를 하시는 엄마에게서 나는 소리. 시계 초침 소리처럼 나의 일상에 너무나 당연하게 스며든, 이상스레 평온함마저 가져다주는 엄마의 소리. 퇴근 후 엄마와 다정한 몇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나는 뭐 그리 대단한 글을 쓴답시고 이렇게 방안에 틀어박혀 한참을 골몰중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여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로 맺어지는 먹먹한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누구 말마따나 이 이야기를 듣게 되면 누구든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해 자백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라 생각한다. 저만치, 내가 끄집어 낼 수 있는 건 전부 기억 속에서 꺼내보려 노력하지만 몇 가지 잔상만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의 삶 속에 ‘엄마’가 주신 것들을 생각해보니 절로 참회가 나온다. 작고 사소한 것 같지만 대단하고 거대한 일들. 열 살, 스무 살에 느껴지던 ‘감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엄마’가 되면 사무치게 알게 될 일들. 마냥 어린 아이 같던 내가, 교사랍시고 아이들을 챙기다보니 순간순간 알게 된 엄마의 마음. 그리고 나쁜 ‘딸’, ‘너’를 마주하게 된다.

‘너는 정말 이기적이었구나. 엄마도 소녀일 때가, 그리고 너 만할 때가 있었는데……. 무슨 강철로 된 사람 대하듯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하고 받으며 살아왔구나.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을 텐데……. 엄마도 꿈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을 텐데……. 엄마가 정말 외로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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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질책하는 내내, 먹먹한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을 막막하게 앉아있다. 뭔가를 써보려고 30분 이상을 앉아 있었지만, 단 한 줄도 쉽게 써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엄마의 세월은 정말 고단했기 때문이다. 닫힌 내 방문 너머로, 엄마의 설거지 소리만이 더욱 크게 들려온다.
‘엄, 마.’ 방문을 열고 나가, 살포시 엄마를 안아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역시 나보다 한발 앞선 우리 엄마는 양파다린 물을 가져다주신다. 맨날 뭐가 그리 바쁘냐며, 먹고 하라고. 예전에는 공부하라고 꾸짖던 엄마가, 이제는 좀 자라고, 쉬라고 하신다. 어린 아이처럼 그냥 막 울고 싶다. 엄마는 원래부터 엄마로 태어난 것이라고만,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은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는지 3-4년은 족히 된 것 같다. 평소 잘 울지 않는 언니가 이 책을 읽고 울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 책을 만지지도,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온통 빨갛게 둘러싼 책 표지에 새겨진 여섯 글자의 검은 타이핑. 나는 그게 이상하게 공포스러웠다. 피가 낭자한 데 조금씩 타버린 듯한 검게 새겨진 여섯 글자가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왠지 깊은 사연을 안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낯선 느낌의 메시지와 쉽게 쓰이지 않았을 것만 같은, 덩그러니 새겨진 여섯 글자. 그게 몹시 간절하고 슬퍼 보여서 나는 차마, 책장을 열어 보기가 싫었다.

이제는 다 커버려 도시로 나가버린 자식들. 아버지와 함께 생일상을 받으러 상경한 노모의 실종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엄마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어떻게 엄마를 잃어버리지? 소중한 것은 잃은 뒤에 깨닫게 된다고 했던가. 가족들은 평생 뿌리 깊은 나무로 자신들을 지키며 하염없이 기다려주던 엄마라는 나무를 잃은 뒤,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처럼 힘겨워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다음에야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땐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의 사소하고, 때론 보잘 것 없게 느꼈던 말들이 마음속에 해일처럼 일어났다고 고백하는 딸.

스무 살에 만나 오십년이 흐르는 동안 평생을 서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본 적이 없는 남편. 장탈이 잦은 아내에게 따뜻한 물 한잔 건네준 적이 없는 사람. 말도 없이 집을 나가 팔도를 떠돌다가, 몸이 아파 운신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기신기신 돌아오곤 했던 남편. 아내를 잃고 난 뒤, 단 한 번도 아내를 기다려 준 적 없던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했던 그는, 텅 빈 고향집에 내려가 무력하게 아내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죽는 날까지 한이 서린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 그는 목에 차오른 울음 대신 “대체 어디에 있소!”라고 소리를 팩 내지른다. 아마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회한 섞인 분노일 것이다.

엄마를 찾는 데 가장 열심인 큰 딸. 엄마를 잃기 전 날, 떡 해오지 말라고, 그 떡 해 와야 아무도 안 먹는다고, 냉동실에 처박아 놓는다고 화를 낸 딸. 엄마가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어서 화를 낸 것이지만, 그 마음은 곡해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잠시 쓸쓸했을 뿐, 딸을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큰딸에겐 평생의 지울 수 없는 얼룩진 아픔이 남을 것이다. 엄마가 머리 아픈 이유를 자신에게 ‘나쁜 년’이라는 소리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어 - 어어어’ 소리내어 우는 딸. 붙잡은 수화기 너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물범벅이 된 아버지. 엄마를 잃어버린 드라마틱한 일이지만, 나는 신경숙 작가가 펼쳐놓은 엄마를 둘러싼 한 가족의 이야기 앞에 그저 무력해 졌다. 이 이야기가 가진 핍진성 앞에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소설을 읽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엄마’를 ‘잊고’사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자책과 우리의 후회.
그들의 엄마, ‘박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낯선 지하철역에 홀로 남겨진 그 시각에,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걷고 또 걸었던 그 시각에, 그 옛날의 기억을 추적하듯 과거로 돌아간 엄마의 시간 속에서, 어찌나 걸었는지 슬리퍼에 발등이 패어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는 그 시각에, 남편은, 그리고 자식들은 ‘나는 뭘 했는가?’를 괴로워한다. 그 가슴 치는 후회와 자책을 지켜보며 나는 나를,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 세상에 존재한 사람인 것 같은 엄마의 푸르던 날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던’ 부당한 엄마의 젊은 날들.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일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게 해준 것처럼 할 수 있나?’ 딸의 말은 내게도 울림을 준다. 나 역시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인생 통째로 아이들에게 내맡기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

“언니, 단 하루 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p.262 발췌)

우리는, 아니 누구랄 것도 없다. ‘나’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고시생 백수 시절, 나는 네모나게 박제된 듯한 고시원의 좁다란 방에 누워 생각하곤 했다. 꿈을 이루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뭐든 내 것부터 내어주는 엄마를 생각하며 허투루 행동하지 말고, 최소한 열심히 사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 책에서 엄마의 자랑, 큰아들 형철이 졸업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한걸음에 내달려온 엄마의 손을 잡고, 이 손을 가진 여인을 어쨌든 기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자게 돈을 많이 벌겠다던, 엄마를 향해 가졌던 빛바랜 다짐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바람을 이룬 지금의 나는 어떠한 딸일까? 잃기 전에, 잊고 있던 엄마의 삶을 사랑하고 존경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때로 생각하곤 한다. 엄마가 아니면 체력이 바닥인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를.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엄마의 헌신이 얼마나 컸는가를. 엄마는 매일 아침 내가 따뜻한 밥을 먹는 모습을 봐야 편하신가보다. 속이 거북해 아침을 먹기 싫다고 해도 꼭 먹으라고 챙겨주신다.

며칠 전, 새벽에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내게, 엄마가 김치볶음밥을 가져다 주셨다. 눈도 못 뜬 내가, ‘5분만…….’을 외치며 못들은 척을 하자, 엄마는 지치셨는지 먹지 말라며 가지고 나가셨다. 그전까지 잠에 눌려있던 무거웠던 내 정신이 갑자기 확 깨어났다. 내가 안쓰러워 밥부터 먹고 시간을 아끼라고 가져다주신 거였는데……. 겨우 뜬 내 눈에 들어온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엄마를 안아드렸다.

잊지 말자.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아래의 시는 ‘엄마’라는 주제로 우리 학교 학생이 지은 창작시이다. 어느 날, ‘강화문학관’에서 개최한 글짓기대회에 우리 학교 아이들을 보낸 적이 있다. 주제가 ‘엄마’였는데, 아이들은 그 날 글을 쓰며,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며 흠뻑 울었다고들 했다.

엄,마.
잊고 있나본데, 나와 여러분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다.

엄마로 산다는 건
김희진
엄마로 산다는 건
한 여자의 일생을 포기한다는 것

엄마로 산다는 건
자식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는 것

엄마로 산다는 건
비바람으로부터 꽃을 지켜내야 하는 것

이젠 내가 당신이란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야 할 때
(대상 수상작)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