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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저녁은 다이어트 삼아 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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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저녁은 다이어트 삼아 굶어요"

MZ세대, 고물가에 '휘소가치'→'자린고비' 변모
캐시워크·파킹통장·샘플런 등 '짠테크' 신풍속도

A씨는 그동안 모은 캐시워크 포인트로 맘스터치를 먹고, 네이페이 포인트로 필요하 물품을 사는 등 그동안 앱테크와 서베이설문 등을 통해 얻은 리워드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래픽=이영은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A씨는 그동안 모은 캐시워크 포인트로 맘스터치를 먹고, 네이페이 포인트로 필요하 물품을 사는 등 그동안 앱테크와 서베이설문 등을 통해 얻은 리워드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래픽=이영은 기자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저녁은 다이어트 삼아 굶어요. 연 4000만원 모으기 목표로 고정지출 제외하고 '한 달 20만원 쓰기' 짠테크 중입니다" 30대 직장인 A씨의 올해 목표다.

휘발성을 가진 무의미한 물건이나 소비처럼 보일지라도 ‘내게 의미 있는 소비’를 중시하던 2030이 달라졌다. 백화점 명품 시장 '큰손'으로 떠올랐던 2030은 오픈런 대신 '샘플런'으로 철저한 지출 방어에 나섰다. 끝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 과시형 소비를 일삼던 MZ세대가 자린고비의 삶을 택한 것이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역대급으로 가파르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소비자물가가 지난달 6%를 찍었다. 지난 3월과 4월 4%대를 기록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 5.4%를 기록하며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는데, 6월에 마침내 6% 고지를 밟은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거의 2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이처럼 눈 깜빡하면 치솟는 물가에 2030의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요즘 누가 적금을 드냐'면서 명품을 지르던 MZ들이 앱테크와 파킹통장으로 하루 100원, 200원의 푼돈 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작은 돈에도 집착하게 된 까닭은 주린이(주식+어린이)·부린이(부동산+어린이) 열풍을 타고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등에 영끌(영혼가지 끌어 모은 돈)한 영향이 크다.

소득의 상당 부분을 미래자산에 투자했지만 고물가와 고금리 속에 증시 침체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자산가치가 폭락해 부의 희망이 사라져서다. 이제 2030은 '짠테크'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달 한화투자증권의 '2022 MZ세대 투자인식 보고서'에는 2030이 경험한 재테크 방법으로 예·적금(64%), 주식(54%), 앱테크(53%) 등이 높게 나타났다.

앱테크는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를 결합한 말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돈을 버는 재테크 수단을 의미한다. 광고를 보거나 미션을 수행하면 적립금을 주는 앱을 깔아 적립금을 모은 뒤 현금화 수단을 강구해 부수입을 버는 형태다.
2030이 즐겨 하는 앱테크 중 하나는 하루 만보를 걸으면 최대 100원을 벌 수 있는 '캐시워크'다. 모은 적립금은 유명 카페, 베이커리, 음식점 등 전국 여러개 제휴점의 쿠폰을 구입할 수 있다. 또 매일 열리는 퀴즈에서 추가로 적립금을 모을 수 있다. 재테크 커뮤니티에는 이렇게 모은 적립금으로 치킨이나 커피를 교환에 성공했다는 인증 글이 쏟아지고 있다.

파킹통장으로 커피값을 벌기도 한다. 파킹통장은 본래 투자와 투자사이 목돈을 보관하는 용도였으나 최근에는 '이자율 높은 입출금' 통장으로 각광받으며 2030의 목돈이 이곳에 몰리고 있다.

'2030 재테크 투혼기'를 쓰고 있는 블로거 B씨는 670만원의 가량의 돈을 파킹통장에 넣어두고 하루에 317원의 이자를 모으는 중이라고 썼다. 이렇게 한달만 모으면 1만 원이다.

B씨는 "적금 상품은 중간에 깨면 사실상 못 받는 이자가 많은데 파킹 통장은 매일 쌓이는 이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라며 "하루만 맡겨도 연 2% 이자를 주는 상품도 있어 커피값 벌 용도로 재테크하고 있다"고 했다.

오프런 대신 '샘플런'으로 꾸밈비용을 절약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샘플런은 국내외 화장품 회사가 '샘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료 샘플링 이벤트 일정과 참여 방법 등이 활발하게 공유 중이며 샘플런에 성공한 후기도 많았다.

한 뷰티 커뮤니티 회원은 샘플런으로 화장품 값을 벌고 있다고 했다. 이 회원은 "적어도 1년은 화장품을 사지 않고 버틴 것 같다"며 "짠테크 중 찐테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익 등 시험 응시료 인상에 취업준비생들은 어학시험까지 망설이게 됐다. 이달 2일 토익스피킹 응시료는 7만7000원에서 8만4000원으로, 중국어능력평가시험 HSK(중국한어수평고시) 응시료는 올 3월 최대 2만2000원까지 올랐다.

취업 커뮤니티 스펙업의 한 회원은 "토익스피킹 응시료가 8만4000원이 됐다. 시험 하나가 이렇게 비싸도 되는 거냐"며 "시험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응시료 부담에 지자체 응시료 지원 정책과 YBM 등 어학원 상품권 구매를 통한 결제 방법 등 응시료 절약 노하우도 등장 중이다.

또 대중교통, 도보 등을 이용한 만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알뜰교통카드'를 사용하거나 쓰지 않는 물건을 되팔아 생활비를 버는 '짠테크' 방법으로 고물가 시대를 넘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또 냉장고의 식재료를 다 먹을 때 까지 장을 보지 않는 '냉파족(냉장고 파먹기)'과 탕비실 커피 등으로 지출을 줄이는 '탕파족(탕비실 파먹기)'도 늘고 있는 추세다.

오리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쓴다는 아나바다가 MZ세대의 주도로 달라졌다"면서 "근검절약을 넘어 소유와 소비에 대한 인식이 변화돼 리셀을 포함한 중고거래 시장도 향후 지속 성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