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하석진은 같은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인생은 혼자다. 혼자서도 단단해질 줄 알아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했다.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쇼펜하우어는 고독이 주는 자유를 강조하면서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을 직시할 것을 주장한 철학자다. 18세기 독일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의지 철학을 발전시켰는데, 이후 니체와 프로이트를 포함한 많은 사상가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며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젊은 시절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를 접한 쇼펜하우어는 서양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 사이에 시공간을 넘어서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고, 동양 철학을 서구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두 문화권 사이에 다리를 놓은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방송에 등장한 이후 더욱 주목을 받게 됐지만 그전에도 쇼펜하우어는 니체와 함께 서양 철학 판매량 1, 2위를 다퉈온 대중적인 철학자였다.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외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염세주의자. 우울하고 어렵다는 평가가 있던 그의 철학이 오늘날 다시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펜하우어의 현실에 대한 냉엄한 인식 속에서 우리가 역설적으로 행복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의 사유 중 현시대를 살아가는 40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선별해 엮었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명제를 마흔만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는 시기도 없다. 마흔은 본격적인 중년의 시기로 들어가면서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역할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는 시기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삶을 달관하지 못하는 청년기에 머물러 있기에 늘 괴롭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는 부족하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흔들리는 마흔을 “인생의 분기점”으로 보았다. 마흔에 건네는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진짜 행복’을 위한 고통을 기꺼이 겪으라는 것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담긴 쇼펜하우어의 여러 가르침은 흔들리는 ‘마흔이’들이 오늘의 인생에 집중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쇼펜하우어를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페이지2북스)를 추천한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방송에 출연한 뒤 입소문을 타고 판매량이 덩달아 상승한 책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풀어 쓴 입문서 격 책이라면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쇼펜하우어의 짧은 글이 원문 그대로 담겨 있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더 깊게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하다.
또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에는 행복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인식이 잘 드러난다. “행복은 꿈일 뿐, 고통은 현실이다”라고 말하며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덜 불행한 삶으로 향하라는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행복의 이상이 신기루처럼 도처에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현실적이고 명쾌한 충고로 다가온다. 쇼펜하우어가 태어난 지 230년이 넘었지만 행복에 관한 그의 실용적인 조언이 조금도 낡지 않았음이 놀랍다. 삶의 변곡점에서 불행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풍선처럼 부푼 행복이 아닌 단단한 고독만이 줄 수 있는 삶의 평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지수 교보문고 인문예술MD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