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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리어왕에게 보내는 존중의 사(辭)…"세상이란 정글 속 희극인지 비극인지 선택은 관객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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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리어왕에게 보내는 존중의 사(辭)…"세상이란 정글 속 희극인지 비극인지 선택은 관객 몫"

[나의 신작연대기(11)] 발레안무가 백연의 '메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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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안무의 발레 '메타아이'
백연(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대표) 안무의 '메타아이'는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여 진실 직시, 바른 판단의 초월적 지혜 가치를 조망한다. 타인은 물론 이 세상의 수많은 실체의 의도를 간파해내지 못하는 인간의 인식적 한계는 거짓과 아첨이 가득한 인생에서 우리의 인식체계를 뒤흔드는 풍랑으로 다가온다. 안무가는 진실에 눈먼 권력자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가려진 진실을 보게 되는 '리어왕'의 주제와 대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을 제시한다. 안무가는 '리어왕'의 핵심 대사로 플롯을 재구성하고, 각 장에 압축적 이미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표현, 인간의 삶에 나타난 초월적 시야의 가치를 드러낸다.

'메타아이'는 건축가 이원석(홍익대 건축학부 교수)의 '공기언덕'을 공간적 상징으로 사용한다. 타자(他者)로부터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형을 생성하고자 했던 '공기언덕'은 세 가지 구조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두 가지 구조물은 영상작업을 통해 우물과 강, 땅과 물의 은유로 구현되었다. 흰 배경 위 검은 등고선의 공기 오브제의 구조물은 백연에 의해 ‘눈’의 이미지로 재해석되어 '메타아이'의 공간적 상징이 된다. '메타아이'의 전체적인 내용은 인식에 대한 다양한 내적 질문을 통해 삶에 드러나는 역설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물질과 지식으로 가득 찬 강은 거짓과 위선, 아첨이 뒤섞여 범람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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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강물을 마시며 인생의 고지로 오르지만, 오히려 깊은 땅속으로 들어간다. 우매한 인간의 삶은 진실을 외면한다. 이를 바탕으로 장면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이 전개되고, 각 내용은 리어왕의 대사를 동인(動因)으로 인간의 역설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프롤로그에서 영상과 움직임으로 “인간은 가리어진 눈으로 바보들의 무대에 태어나, 오르고 또 오르는 습성으로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곧 추락한다”가 표현된다. 한 인간의 상징인 리어왕은 대형 삼각형 영상 안에서 꿈틀거리며 검정 튜튜를 벗어나려 한다. 삼각형이 빨간색으로 차오르자 치솟으며 사람 모습의 영상 이미지가 추락하여 사라진다. 인간 추락의 상징적 이미지가 복선으로 깔린다.

1장: ‘범람하는 물질과 지식의 강’, “인간은 물질과 지식의 우물을 마시며 갈급함을 해결한다. 마시고 또 마신다. 범람하는 우물은 어느새 강이 되고, 목마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강물의 냄새를 따라 모여든다.” 이원석의 작품 이미지를 시작으로 물, 글자 이미지, 금색 강물 같은 이미지를 영상으로 드리우고, 남자 무용수는 물질과 지식의 물을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안무가는 인식의 세계에서 구분할 수 없는 진짜와 가짜를 말한다. 여자 무용수 셋은 그로테스크하게 머리를 감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가운데 두 명은 흰색으로 얼굴, 몸, 머리카락을 칠하고 금색 속눈썹을 붙였다. 흰색은 현실 세계의 몸의 색과 다른 죽은 몸이다.

코델리아 연상의 현실 이미지의 무용수는 진짜를 사유하게 한다. 세 무용수의 머리카락 움직임을 구성한 장면은 리어왕의 전개에 나타나는 세 딸(고너릴, 리건, 코델리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세 딸 가운데 코델리아의 진실한 말은 무용수 셋의 머리카락이 엉켜서 함께 춤을 추는 이미지와 얽히고, 설킨 움직임과 함께 구분할 수 없는 진실의 이미지이다. 구분 불가의 혼란에 빠져드는 리어왕의 심상이 그로테스크하게 반영된다. 우물과 강을 은유하는 건축가의 이미지는 물질과 지식을 좇는 인간의 동물적인 감각을 드러낸다. 군무는 엮이고 쌓이고 넘어지는 이미지 등으로 우매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다양한 조형 이미지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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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나르시시즘적 질문, 가리어진 눈’,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목마른 인간, 이 중 가장 잘 보고 가장 잘 듣는 지혜로운 권력자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가장’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자기중심적 표현이다.” 주인공이 금빛 조명을 향해 손을 뻗을 때 군무들은 주인공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상징적 움직임은 기준을 나누고 서열을 나눈다. 음악과 박수 소리에 맞추어 역동적 군무가 시작된다. 군무가 종료된 후 두 딸이 손을 비비는 동작은 간사한 말과 아첨의 이미지이다. 바흐의 샤콘느와 함께 직선적이고 딱딱해 보이는 코델리아의 움직임이 이어지며 냉철하고 이성적인 이미지가 표현된다.

리어왕 주제·대사를 모티브
거짓과 아첨 가득한 인생서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 제시

3장: ‘인간 본색, 욕망의 고지’, 세상의 중심에서, 인간은 보고 듣기 위해 애쓰지만, 소통의 도구는 아첨으로 변질한다. 타락한 언어는 우리를 삼켜버리고, 드러나는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내며 우리를 없어질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타락한 언어’는 인간의 욕망의 도구가 되고 인간을 오염시킨다. ‘주의하라!’는 내용은 네 명의 남녀 무용수가 확성기로 “대단해요! 최고예요! 사랑해! 존경합니다!” 등의 단어를 외치는 동시에 “가진 것 이상으로 보여주지 말고,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지 말며, 가진 것을 모두 빌려주지 말고, 듣는 모든 것을 믿지 말며 단 한 번의 주사위에 모든 것을 걸지 마십시오”라는 광대의 대사가 오버랩되며 표현된다. 상충되는 언어 배열로 역설적 인간의 삶 자체를 보여준다.

확성기를 든 무용수가 ‘러브’라는 단어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빨강 스타킹을 팔에 휘감은 군무가 아첨하는 혀가 주인공을 유혹하는 느낌을 준다. 그로테스크한 음악은 리어왕 대사의 핵심 추출물인 욕망의 혀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마지막 군무는 붉은 '공기언덕' 이미지가 욕망의 삼각형으로 붉게 솟아오르다가 싱크홀처럼 땅속으로 꺼지는 이미지로 암전된다. 경사 무대는 본무대의 백색 무대의 사선 구도와 조화를 이룬다. 다리막 또한 원근감을 고려하여 좁혀지며 입체적인 느낌을 주면서 몰입감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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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안무의 발레 '메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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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안무의 발레 '메타아이'


4장: ‘패러독스, 진(眞)의 고지를 향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의 심연에 닿을 때 자신을 뒤따르던 진실의 그림자를 직시한다. 희망일지도 모른다.” 실존적 인간의 독백이다. 삼각형의 후무대에서 파도 영상 이미지가 내려오면서 본무대로 물이 차오른다. 솔로(김유식)는 처절함 가운데 자신을 찾아간다. 물이 사라지면서 솔로가 이어지고 그림자 이미지가 바닥에 투사되면서 자기 그림자를 통해 깨닫는 인간의 실존적 성찰이 담긴다. 한 번 더 드로우 커튼과 샤막이 올라가면서 구름 이미지의 흰색 '공기언덕'이 등장한다. 이 구조물에 ‘감은 눈’의 영상이 보이고 객석 쪽으로 빛이 드리우며 8명의 군무가 다양한 움직임으로 빛을 향해 후무대에 진입한다.

에필로그에 안무가는 ‘진위가 혼재된 세상에서 인간 존재를 인식한 우리는 끝없이 낮은 자세로 진실을 향해 걷고 또 걸어 현명한 죽음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사유적 담론을 담는다. 마무리 군무에 무용수들은 검정 튜튜를 입고 나온다. 프롤로그의 남자 주인공이 벗어나고자 했던 검정 튜튜가 마지막에 공통으로 사용되어 일관성 의미를 부여한다. 초반부터 강조된 무용수들의 조형적인 군무는 끝까지 그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것은 안무구조 중심의 조형적 이미지를 각인하고자 하는 안무가의 의도이다. 이러한 조형적 이미지는 4장에서 해체적이다. 각자의 움직임을 시차에 따라 배치하여 혼란스럽고 해체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파편적·역동적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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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안무의 발레 '메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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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 안무의 발레 '메타아이'


'메타아이'는 인간의 아둔함을 깨우치는 경전으로 기능한다. 철학적 바탕 위에 미학적 축성을 쌓는 행위는 거룩하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현대적 느낌으로 변형된 음악을 통해 슬프지만 비장한 느낌으로 감정의 삼각형에 실핏줄이 돌게 한다. 동시에 내리는 검은 꽃가루와 밝은 백색 조명은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형용할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이라는 정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안무가는 역설적인 삶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관객이 선택하도록 만든다. 군무 전체가 쓰러지면서 건축가의 작품에 ‘뜨는 눈’의 이미지가 드러나면서 암전되고 발레 '메타아이'는 종료된다. 백연은 발레철학자의 경건한 의무를 이지적으로 수행하고 걸작을 생산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김정환(한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