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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기획공연…'태평무 보유자' 박재희가 선사하는 당대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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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기획공연…'태평무 보유자' 박재희가 선사하는 당대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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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박재희 출연, 김진미외 13명)
5월 29일(수) 7시 30분,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대구동구문화재단(DGCF)·아양아트센터·벽파춤연구회 주최,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주관,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재단 후원으로 태평무를 일군 무사(舞師) 벽파 박재희에게 보내는 존중의 헌무(獻舞)인 ‘2024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기획공연’이 운집한 영남 관객의 열띤 호응을 받으며 명불허전(名不虛傳)이 되었다.

20세기 초 민속무용이 무대로 진입하고 ‘승무’, ‘살풀이춤’이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성준(韓成俊, 1875~1941)은 1935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시작으로 본격 전통춤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00여 종에 달하는 전통춤을 집대성하였다. 한성준의 제자는 이강선(李剛仙), 장홍심(張紅心), 손녀 한영숙(韓英淑, 1920~1989), 강선영(姜善泳)이 대표였다. 한영숙의 제자가 바로 박재희이다.
화두적 주제가 된 갑진년(2024년) 박재희의 ‘태평무’는 익숙한 디딤과 사위의 형식으로 ‘옛 우물’이나 ‘일월오봉도’를 만나는 기분을 감지하게 만든다. ‘무서운 균형’과 ‘고도의 진지성’으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태평무’는 한국 전통춤의 자존심(自尊心)을 지켜왔다. 추상적인 내용과 상징을 일반화하고, 장단을 서민 친화한 전통춤이면서도 움직임과 기교에서 우아한 기품의 격조를 유지하였다.

‘태평무’를 우회한 여섯 갈래의 춤은 ‘태평무’와 조화를 이룬 춤으로써 위대한 전통의 박재희 춤을 옹호하는 교양이 되었다. 박재희의 방대한 춤 가운데 ‘가르침’과 ‘배움’ 사이의 ‘춤이란 무엇인가?’를 인지시킨 춤 구성은 춤 주체의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었다. 소박한 귀납법의 창대한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전통이라는 미지의 공간은 마법 이상의 신비적 힘을 창출하게 만든다.
후학들은 ‘승무’, ‘학춤’, ‘선살풀이춤’, ‘가인여옥’, ‘살풀이춤’, ‘달구벌입춤’을 선무(先舞)하고, 스승 박재희는 화답으로 ‘태평무’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박재희(예술감독)는 강릉을 품은 바다의 힘으로 전설이 된 무용가 한성준-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전통춤 맥의 견고함을 보여주었다. ‘선살풀이춤’(장유경)과 ‘달구벌입춤’(윤미라)은 대구 출신 무용가가 영남지역의 특징을 담은 특별공연이었다.

승무(춤 손헤영 외 4인, 법고 김나영 외 9인)이미지 확대보기
승무(춤 손헤영 외 4인, 법고 김나영 외 9인)


승무: 예술성과 극성 강화의 춤은 타고(打鼓)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무게 중심을 가져가며 일심(一心)의 대나무 같은 지조를 보인다. 심오함 사이의 인간적인 면과 정(情)의 틈새를 보여주는 멋을 풍긴다. 군무는 염불장단에서부터 당악과장까지 전 과정을 절제와 비움, 역동성으로 채운다. ‘승무’는 독일철학의 심오함과 맞닿아 있으며, 진법 인원 복식 북의 수에 따라 색다른 외양과 분위기를 조성한다. (춤: 손혜영, 류언선, 장윤정, 서보근, 남윤주 법고: 김나영, 방명희, 조연우, 김하나, 이귀은, 고선옥, 김수진, 김나경, 김민경, 이서현)

살풀이춤(홍지영, 손헤영, 고수현)이미지 확대보기
살풀이춤(홍지영, 손헤영, 고수현)


살풀이춤: 한성준이 제1회 무용발표회에서 레퍼토리로 선정한 이래 전통춤으로 추어지는 춤이다. 절제미, 우아미에 걸친 수묵의 분위기로 몽환의 경지를 이끄는 사위와 움직임은 국화에 견주어진다. 홍지영(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중부지회 지회장), 손혜영(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영남지회 지회장), 고수현(국가무형유산태평무 이수자)에 이르는 3인무는 백색 판타지를 연출하면서 박재희류 ‘살풀이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내공의 움직임과 천의 운용이 주제를 해석해 내는 연기력과 더불어 프랑스의 백색 발레와 오버랩되었다.

학춤(강소정, 최미옥)이미지 확대보기
학춤(강소정, 최미옥)


학춤(鶴舞): 1979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춤이다. 한영숙의 ‘학춤’은 무용수가 학 형상의 의상을 입고 학의 우아한 자태와 습성을 묘사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민간에서 추던 민간 학춤을 바탕으로 한성준이 1930년대에 구성한 원전을 기본으로 한다. 한영숙이 세련된 스타일로 가다듬어 발전시키고 박재희가 실천적 행위로 재구성한 춤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강소정, 최미옥 이인무는 선비정신의 상징인 흑백 구성의 전통춤 ‘학춤’의 진정한 의미를 알렸다. 갇힌 틀에서 열린 마음을 연출하며 사유의 시간이 되었다.

선살풀이춤(장유경)이미지 확대보기
선살풀이춤(장유경)


선살풀이춤: 무대 양식화된 긴 모자, 부채에 긴 명주 천을 연결하여 시원하게 추는 춤이다. 전통춤과 창작춤을 오가며 한국춤의 장점과 기교적 우수성을 모색한 한국무용가 장유경(계명대 명예교수)이 2003년에 초연하고, 2019년에 재구성한 작품이다. 부채의 반원과 명주 천이 만나 힘 있는 직선과 동적인 곡선이 서로 교차하여 투박한 춤사위를 연출한다. 독무로 선보인 장유경의 춤은 맺고 풀어내는 어울림 속에서 전통춤의 익숙한 장단을 따라간다. 응축된 힘으로 부채와 천을 이용하여 장중과 활달의 춤을 연출하였다.

달구벌입춤(윤미라)이미지 확대보기
달구벌입춤(윤미라)


달구벌입춤: 영남춤 대표인 ‘수건춤’(‘덧배기춤’)을 윤미라(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달구벌입춤보존회 회장)가 독무로 선보인 춤이다. 영남춤의 본향인 대구(달구벌)의 투박하면서도 깊은 사유의 내면을 미적 형식에 담아 아름답게 표현한 춤이다. 대구 출신으로 진정성을 확보한 윤미라의 춤은 천과 소고를 운용하면서, ‘변주와 진법’의 축약의 묘를 생각하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정감이 묻어나는 춤은 달성권번의 박지홍에서 한국무용가 명무 최희선으로 이음하였고, 윤미라에게 정착하여 푸른 언덕의 미적 진보를 이루었다.

가인여옥(강유정, 김문영, 김한샘, 유혜리, 장연희, 조유진, 김현결)이미지 확대보기
가인여옥(강유정, 김문영, 김한샘, 유혜리, 장연희, 조유진, 김현결)


가인여옥(佳人如玉): 인품이 옥과 같이 맑고 깨끗한 사람을 그린 작품이다. 벽파 박재희가 부채를 활용하여 안무한 입춤이다, 특정한 춤사위나 뚜렷한 구성 없이 즉흥성이 강조된 춤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휘날리는 꽃잎 아래 일곱 여인(강유정, 김문영, 김한샘, 유혜리, 장연희, 조유진, 김현결)이 춘흥에 겨워 춤을 춘다. 부풀린 치마에 실린 춤은 정교한 수사로 단아함과 절제미를 창출한다. 여인들은 봄바람에 흔들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다룰 여인의 심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태평무(박재희 출연, 김진미외 13명)이미지 확대보기
태평무(박재희 출연, 김진미외 13명)


태평무: 경기도 도당굿의 무속 장단을 바탕으로 구성한 춤이다. 한성준 창안, 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태평무는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왕과 왕비의 마음으로 춤을 춘다. 붉은 단에 남색 치마, 당의, 쪽 찐 머리 같은 궁중 복식의 장중함, 굿 장단의 경쾌함에 따른 발 놀음이 강조된다. 내면의 우아함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신명 넘치는 춤으로 다양한 장단, 섬세한 손사위, 단아한 발디딤이 특징이다. 박재희 ‘태평무’ 예능 보유자가 후학들과 조화를 맞춘 춤은 한국무용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자유와 평화 기원의 춤이 되었다. (출연 박재희 한영숙류 태평무 보유자, 김진미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서울지회 지회장, 유혜리, 조유진, 김희원, 정희담, 김문영, 이은진, 김한샘, 임미례, 강경수, 홍지선, 강윤주, 김현결, 전여경)

박재희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보유자는 이대 무용과·동 대학원 출신으로 청주대 무용학과 명예교수이다. ‘박재희새암무용단’을 창단, 제1회 박재희 무용발표회(1981년)를 가졌다. 숱한 공연과 해외 초청공연을 통해 한국 춤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으며 한국무용의 발전과 세계화에 노력하였다. 한영숙류 춤을 중심으로 전통춤만을 추어 온 한국무용가이다. 그녀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충청지역무용교수연합회 등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벽파춤연구회 이사장, 한영숙춤보존회 회장으로서 전통춤 발전에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대구동구문화재단이 기획한 ‘2024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명불허전(名不虛傳)은 교과서 진본을 접하는 감동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이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