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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연재 2편] '4대 금융 강점' 시너지 발휘할 한국형 금융 생태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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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연재 2편] '4대 금융 강점' 시너지 발휘할 한국형 금융 생태계 구축해야

은행 중심의 성장 한계를 넘어, 디지털과 글로벌과 비은행을 통합한 한국형 금융 생태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주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주목하는 시장도 미국 대신 일본·대만 등 아시아와 유럽·캐나다 등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주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주목하는 시장도 미국 대신 일본·대만 등 아시아와 유럽·캐나다 등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4대 금융지주 체질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4대 금융지주는 외형상 유사해 보이지만, 그 내부의 체질과 전략은 분명히 다르다.

KB금융지주는 국내 최대의 리테일 금융 기반과 자본 건전성, 보수적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기 국면에서 시스템을 지탱하는 힘은 여전히 KB금융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전략 기획에 기반한 조직 실행력과 디지털 전환 속도에서 가장 앞선 평가를 받아왔다. 내부 혁신과 플랫폼 전략, 데이터 기반 금융 실험에서 다른 지주와 견줘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금융의 미래 방향을 시험하는 실험실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해외 네트워크와 글로벌 금융 경험에서 가장 긴 호흡을 축적해 온 지주로 평가 받는다. 외환과 글로벌 기업금융, 아시아 신흥시장 경험은 다른 지주들이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짧은 지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은행 확장과 기업금융 재편을 통해 구조적 도약을 모색해 왔다. 아직 완성형이라 보기에는 이르지만, 전략적 선택에 따라 성장 궤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가장 많이 남겨두고 있는 지주로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4대 금융지주가 갖고 있는 이들 네 가지 강점이 서로를 보완하지 못한 채 각자 고립된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4대 금융지주는 같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금융 전체가 하나의 방향성을 갖지 못한 채 네 개의 갈래로 분산되는 구조를 고착시키고 있다.

4대 금융지주, 네 개의 서로 다른 미래


4대 금융지주의 전략을 개별로 보면 모두 이치에 닿는다. KB금융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신한금융은 디지털과 실행 속도를, 하나금융은 글로벌 확장성과 외환·기업금융의 깊이를, 우리금융은 구조 전환과 성장 잠재력을 각각 추구해 왔다.

이 같은 강점들이 하나의 전략으로 결합되지 않는 순간, 각 지주의 우수성은 금융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일한 한 국내 금융 전문가는 "KB, 신한, 하나, 우리 모두 각자의 길에서는 잘 가고 있지만, 네 지주를 하나의 지도 위에 올려놓았을 때 한국 금융이 어디로 가는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자 다니 로드릭이 저서 '세계화의 역설'에서 지적했듯, 국가 경쟁력은 개별 조직의 효율성보다 이들을 연결하는 제도적·전략적 설계에서 결정된다. 4대 금융지주가 각자 잘하는 구조만으로는 국가 단위의 금융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은행 중심 시대 끝나


한국 금융은 오랫동안 은행 중심 모델에 의존해 왔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구축해 온 강력한 소매금융 기반은 한때 한국 금융의 성장 엔진이었다. 글로벌 금융 환경은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섰다. 성장의 중심은 비은행 부문으로 이동했고, 경쟁력의 핵심은 자본시장, 자산관리, 인프라 금융, 글로벌 네트워크로 옮겨가고 있다.

하나금융이 축적해 온 해외 경험과, 우리금융이 모색 중인 비은행 확대 전략은 바로 이 구조 변화에 대한 각기 다른 응답이다. 디지털 금융 역시 더 이상 보조 기능이 아니라, 신한금융이 보여주듯 금융 생태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 마빈 킹은 '금융의 종말'에서 은행 중심 금융은 위기에는 취약하고 성장에는 한계가 있으며, 자본시장과 비은행 부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금융 시스템은 반복적으로 불안정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이 직면한 문제는 개별 지주의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구조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금융 2030의 과제: 강점 조합과 전략 통합

앞으로의 금융 경쟁은 KB금융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신한금융이 얼마나 디지털에 강한지, 하나금융이 얼마나 글로벌한지, 우리금융이 얼마나 빠르게 변신하는지의 단순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그룹들은 이미 공동 데이터 인프라, 핀테크 협업 표준, 자본시장과 자산관리의 통합 플랫폼을 통해 집단적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은 4대 금융지주가 각기 다른 디지털 전략과 글로벌 전략, 비은행 모델을 반복 설계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금융의 스케일도, 국제 경쟁력도 본격적으로 커지기 어렵다.

금융 위기에 관한 고전인 미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가 보여주듯,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개별 기관의 실패보다 조정 메커니즘 부재에서 발생한다. 4대 금융지주가 서로의 강점을 조정하지 못한 채 병렬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는 평시에는 비효율로, 위기 시에는 시스템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

전략 지도 없다면 다음 10년도 없다


지금 한국 금융에 필요한 것은 KB·신한·하나·우리 가운데 누가 더 잘했는지를 따지는 비교표가 아니다. 금융 산업 전체의 방향을 연결하는 전략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공동 디지털 인프라 구축, 데이터 표준화, 금융지주별 역할 분담, 해외 시장 개척의 전략적 조율, 자본시장 중심 금융 생태계로의 전환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는 설계가 필요하다.

미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저서 '기업가적 국가'에서 강조했듯, 국가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혁신이 아니라 이들을 연결하는 금융과 제도의 방향성에서 만들어진다. 한국 금융 역시 이제 개별 금융지주의 경쟁을 넘어, 4대 지주가 함께 산업 전체를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4대 금융지주 강점 한 방향에 모아야


KB금융의 안정성, 신한금융의 디지털 역동성, 하나금융의 글로벌 확장성, 우리금융의 구조 전환 잠재력은 서로를 대체하는 요소가 아니다. 이들 강점이 하나의 전략 지도 안에서 조합될 때, 한국 금융의 크기와 깊이는 비로소 확장될 수 있다.

지금은 한국 금융이 서로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시기다. 은행 중심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글로벌·비은행이 조화를 이루는 금융 생태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는, 바로 4대 금융지주가 그 같은 인식을 할 수 있는지에 달린 것이다. 4대 금융지주의 강점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지 않는다면, 한국 금융의 다음 10년도 없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