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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ETF 매입 전격 보류…시장 개입 중단에 주가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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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ETF 매입 전격 보류…시장 개입 중단에 주가 '추락'

11일 일본 도쿄에서 한 보행자가 닛케이 평균 주가의 마감 정보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보고 있다. 도쿄의 주식 벤치마크는 지난주 4만 포인트 이상 상승한 후 868.45포인트(2.19%) 하락한 38,820.49로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11일 일본 도쿄에서 한 보행자가 닛케이 평균 주가의 마감 정보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보고 있다. 도쿄의 주식 벤치마크는 지난주 4만 포인트 이상 상승한 후 868.45포인트(2.19%) 하락한 38,820.49로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주가가 역사적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본 주식시장의 민낯이 드러났다.

일본의 주가 상승은 기업 체질 개선과 주가 안정책으로 거품 없는 상승세라고 자신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행의 시장 개입이 사라지고 있다. 엔고 직격탄을 맞자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셈이다.
1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1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은 이례적으로 ETF(상장지수펀드) 매입을 전격 보류했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TOPIX가 오전 거래에서 2% 이상 하락하면 반드시 ETF를 매입해 왔다.

일본은행은 구로다 도히코 전 총재가 취임한 2013년 4월 이후 ETF 매입을 대폭 확대했다. 금융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 규모는 매년 증가해, 매입 한도는 당초 연간 1조엔에서 코로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최대 12조엔까지 불어났다. 지난달 닛세이기초연구는 일본은행 보유 ETF 시가총액이 약 70조엔으로 일본의 연간 세수와 맞먹는 규모라고 밝혔다. 이는 도쿄증시 프라임 시장 시가총액의 7% 이상인 막대한 수치다.

이에 그동안 업계는 꾸준히 시장 개입설을 지적했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ETF 대량 매입으로 상장사 주식들을 보유해 실질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닛케이지수가 28.2% 오르는 등 주가가 상승세를 그리자 일본은행은 ETF 매입을 자제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ETF 매입이 3회에 그쳤으며, 물류 부동산 ETF인 J-REIT는 한 번도 매입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행과 금융당국은 주식시장의 구조적 개혁으로 인해 주가가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며 ETF 매입 방침 철회 의사를 내비쳤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는 지난달 "이제 ETF 매입도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이 시장개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문제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금리 해제 시기를 조율하면서 곧바로 주가가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내무성은 지난해 4분기 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연율 0.4%로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은행이 3~4월 내에 마이너스 금리 해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전망에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이 요동치며 순식간에 150엔을 육박하던 엔저 현상은 146엔을 넘나드는 엔고 현상으로 역전됐다.

이에 엔저 혜택이 사라진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닛케이지수와 TOPIX는 11일 각각 2.19%, 2.20%하락했다.

엔고 현상에 일본은행의 ETF 추가 매입도 없다 보니 추락하는 칼날을 잡아 줄 힘이 없어진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주가 상승세가 기업 생태 개선과 주주완화 정책 등 근본적 일본 산업의 체질 개선 효과라는 주장과는 달리, 엔테크 기회를 탄 외국인들의 투기와 일본은행의 시장개입으로 인한 주가 상승이라는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 됐다.

나미오카 히로시 T&D자산운용 수석전략가는 "일본은행이 다음 회의에서는 ETF 매입 자체를 폐지할 것"이라며 “시장에서도 매입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컸기 때문에 11일 ETF 매입을 하지 않은 것이 시세를 끌어내리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희망 사항에 그치고 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주가 하락 국면에서 일본은행이 보유한 ETF를 처분해야 한다. 일본의 연간 세수에 버금가는 자산 가치 정리는 우에다 가즈오 총재의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비대해진 탓에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시장에 내놓으면 프라임시장의 대규모 주가 폭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데 신고(井出真吾)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 전략가는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회견에서 'ETF를 살 수밖에 없었다'라고 발언한 바 있는데, 이를 보면 일본은행은 대량 매입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관저, 재무성, 금융청 등 다른 많은 부처의 참여가 필요하고, 뒷정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