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형 선사 8곳 이상, 18척 VLCC 신조 추진... 한국·중국 조선소에 문의 쇄도
선박 노후화·환경 규제 강화에 친환경·고효율 선박 수요 늘어
선박 노후화·환경 규제 강화에 친환경·고효율 선박 수요 늘어

지난 5일(현지시각) 조선 해운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앞으로 몇 달 안에 약 18척, 총 22억5000만 달러(약 3조523억 원)를 웃도는 VLCC 신조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VLCC 신조선에 관심이 쏠리면서 여러 유명 해운사가 한국과 중국 조선소와 구체적인 건조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협상에 나선 해운사는 CMB.Tech, 그리스 차코스 쉬핑 앤 트레이딩, 대만 포모사 플라스틱 마린, 국내 팬오션, 인도 국영선사(SCI), 중국 코스코 쉬핑 에너지 트랜스포테이션(CSET), 산둥 쉬핑을 비롯해 스위스 어드밴티지 탱커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선사 바흐리 등이다. 이들 선사는 주로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3대 조선사와 중국 다롄 조선, 장쑤 뉴 한통 중공업 등에 선석 확보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다.
대부분 선사가 최소 2척 이상 신조를 고려 중이며, 한 익명 선사는 중국 장쑤 뉴 한통 중공업에 최대 4척 건조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CSET는 대규모 선대 확장 전략으로 약 7억9000만 달러(약 1조717억 원)를 투자해 VLCC 6척을 중국 다롄조선소에 발주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팬오션도 5년 만에 VLCC 신조에 나서 한 척에 1억2700만 달러(약 1722억 원), 총 2척에 2억5400만 달러(약 3445억 원)를 투자한다. 스위스 어드밴티지 탱커스 역시 선대 현대화를 목표로 한국과 중국 조선소에 VLCC와 다른 종류의 탱커선 발주를 이어가고 있다.
◇ 10여 년 만의 시장 복귀…LNG 연료선도 등장
특히 차코스, 포모사 플라스틱, SCI 등 3개사가 10여 년 만에 VLCC 신조 시장에 복귀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차코스는 2015년 현대중공업에 유조선 2척을 발주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LNG 이중연료 추진 VLCC 2척 건조를 국내 대형 조선 3사와 논의 중인 유일한 선사로 알려졌다. 대부분 신규 VLCC는 기존 선박용 경유(MGO) 같은 연료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지만, 차코스처럼 일부 선사는 LNG 이중연료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포모사 플라스틱이 2006년 일본 조선소에 최대 8척, SCI가 2010년 중국 장쑤 정성 중공업에 4척을 발주한 것이 이들의 마지막 VLCC 신조 계약이었다.
한 조선 전문가는 "한국 조선소들이 VLCC 건조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대형 컨테이너선 문의 또한 활발해 VLCC 선석 확보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VLCC 수익성이 컨테이너선보다 낮아 조선소들이 탱커 가격에 대해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자료를 보면, 기존 연료 VLCC 신조선 가격은 현재 1억2500만 달러(약 1694억3750만 원)로 지난해 1억2900만 달러(약 1748억5950만 원)보다 3% 낮지만, 최근 발주되는 VLCC 신조선 가격은 한 척에 약 1억2600만 달러(약 1707억9300만 원)에서 1억2700만 달러(약 1721억4850만 원) 선에서 형성돼 있다.
◇ 선가 하락과 선대 노후화, 신조 발주 부추겨
이탈리아 해운 분석기관 반케로 코스타의 랄프 레친스키 애널리스트는 "최근 VLCC 운임 강세와 OPEC의 꾸준한 원유 생산량 증가가 선주들의 신조 발주 관심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OPEC 주요 생산국이 VLCC의 주요 이용자"라며 "여기에 러시아·브라질·미국 등과 교역량 증가도 VLCC 수요를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국영선사 바흐리는 2025년 상반기 안에 최신 VLCC 최소 10척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친스키 애널리스트는 또한 VLCC 선대 노후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세계 VLCC 선대의 평균 선박 나이는 12년에 이르러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단일 선체 탱커를 이중 선체 탱커로 바꾸는 것이 의무화하면서 많은 VLCC가 만들어졌다"며 "현재 VLCC 선대의 18%가 20년 넘었고, 22%는 15년에서 20년 된 노후 선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탱커는 낡을수록 용선주 승인을 받기 어려워 벌크선과 달리 25년이나 30년 된 VLCC를 운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선박 교체가 꼭 필요하다"며 "강화하는 환경규제와 연료 효율성 요구에 따라 최신 친환경 설계와 스크러버 장착 등 신기술을 적용한 신조선 수요가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조선 가격 하락 또한 선주들에게 매력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클락슨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VLCC 수주잔량은 총 103척이다. 이 가운데 일본이 8척, 한국이 20척을 건조 중이며 나머지는 중국 조선소에서 만들고 있다. 2024년 VLCC 신조 발주는 총 52척으로 지난해 17척보다 크게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 6척, 2026년 26척, 2027년에는 43척의 VLCC가 인도될 예정이어서, 특히 2026년과 2027년에 인도 물량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같은 대규모 신조 발주 흐름은 단기적으로 VLCC 시장 공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조선 도입을 통한 선대 경쟁력 강화, 환경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운임 시장 안정에도 이바지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