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 전력사 에네르호아톰, 계약 과정서 10~15%대 리베이트 포착... 전시 리더십·서방 지원 신뢰 크게 흔들어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5일 보도에서 국영 원자력 발전 회사인 에네르호아톰(Energoatom)의 계약 과정에서 10~15%에 이르는 리베이트(뒷돈)가 오갔으며, 이로 인해 수백만 미국 달러가 흘러 들어간 정황과 키이우 호화 아파트에서 황금 변기를 비롯한 고급 사치품이 압수되었다고 자세히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스캔들은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큰 부패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대국민 신뢰를 크게 뒤흔드는 요인이다.
젤렌스키 친구 '1억 미국 달러' 돈세탁 의혹…국민 분노 최고조
이번 부패 스캔들의 핵심은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발전소를 보호하기 위한 건설 프로젝트를 포함해 국영 전력사 에네르호아톰의 계약에서 고위 인사들이 10~15%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이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은 지난 15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도청 증거 1000시간을 포함한 상세한 증거들을 확보하고, 70건이 넘는 압수수색을 진행해 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Nabu와 특별반부패검찰청(Sapo)의 수사로 드러난 세부 사항들, 예컨대 키이우 호화 아파트 내부에서 발견된 황금 변기와 현금으로 가득 찬 더플백 사진, 그리고 돈세탁 전략을 논의하는 공무원들의 음성 기록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구이자 전 사업 동반자인 티무르 민디치(Timur Mindich)는 이 사건의 '공동 조직자'로 지목됐다. Nabu는 민디치의 사무실을 통해 약 1억 미국 달러(약 1455억 원)의 불법 자금이 돈세탁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디치는 수사 몇 시간 전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갔다.
또한, 젤렌스키의 또 다른 측근이자 전 부총리인 올렉시 체르니쇼프(Oleksiy Chernyshov)는 120만 달러(약 17억 4600만 원)와 10만 유로(약 1억 69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불법적으로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우크라이나 뉴스 웹사이트인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전시에 대통령의 친구들이 어떻게 나라를 강탈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는 등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젤렌스키의 '미온적 대응' 논란 가중…전시 안정성 위협
이번 스캔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잔혹한 전쟁을 치르는 결정적인 순간에 지도부의 안정을 흔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태 발생 초기 미온적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
지난 여름,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독립적인 반부패 기관들을 검찰총장 산하로 두려 했지만, 대규모 시위와 서방 파트너들의 분노로 이 시도를 포기해야 했다. 이번 스캔들이 터진 후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응은 느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키이우에 본부를 둔 반부패 감시 단체인 반부패 행동 센터(Anti-Corruption Action Center)의 다리아 칼레니우크(Daria Kaleniuk) 전무이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처가 "매우 느리고, 매우 미약했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조치가 미온적이라는 비판은 이어졌다. 반부패 활동가인 비탈리 샤부닌(Vitaliy Shabunin)은 법무부 장관의 일시 정직 조치에 대해 “임시 정직이지 해임도 아니다. 진정 아무것도 몰랐던 대통령의 반응이겠는가?”라며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우크라이나 투자 은행가이자 정치 평론가인 세르히 푸르사(Serhiy Fursa)는 "우리는 전쟁 중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부가 남아 있는 정당성마저 잃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독립 반부패 기관 수사에 EU는 '긍정적 신호' 평가
한편, 이 같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과 복원력에 주목하며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키이우의 정치 분석가인 볼로디미르 페센코(Volodymyr Fesenko)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민디치와 연관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 소속 의원이자 의회 반부패 위원회 위원장인 아나스타시아 라디나(Anastasia Radina)는 "지난 7월의 시위는 일반적인 불의에 대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구체적인 비행, 구체적인 이름, 구체적인 금액에 관한 것"이라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실장 보좌관인 미하일로 포돌랴크(Mykhailo Podolyak)는 이번 수사가 "우크라이나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한, 카타르지나 마테르노바(Katarína Mathernová) 키이우 주재 유럽연합(EU) 대사는 이번 수사와 당국의 대응이 "우크라이나의 독립 기관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리아 칼레니우크 전무이사 역시 "이번 수사는 긍정적인 이야기, 긍정적인 신호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Nabu와 Sapo가 직면한 압박은 엄청나다. 이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Nabu와 Sapo,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편을 들 때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야당인 유럽 연대(European Solidarity)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 정부를 야당 인사가 포함된 기술 관료 중심의 '통합 정부'로 교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로스티슬라프 파블렌코(Rostyslav Pavlenko) 유럽 연대 소속 의원은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퇴 요구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추가 수사 내용,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연루된 새로운 정보가 나올 경우 정치적 위기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