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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극한 공정' 돌파구 찾나… 700°C 견디는 '용암 반도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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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극한 공정' 돌파구 찾나… 700°C 견디는 '용암 반도체' 탄생

USC 연구진, 텅스텐·그래핀 적층형 메모리 공개… 10억 회 기록 성공
금성 탐사·핵융합로·심해 시추 등 '전자 부문 불모지' 공략할 게임 체인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금성 표면'과 '핵융합로 내부'에서도 멀쩡히 작동하는 꿈의 메모리 기술이 나왔다. 실리콘 기반 기존 반도체가 녹아내리는 700°C 고온에서도 데이터 파괴 없이 10억 번의 쓰기·지우기 작업을 견뎌내는 신소재 칩이 개발되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금성 표면'과 '핵융합로 내부'에서도 멀쩡히 작동하는 꿈의 메모리 기술이 나왔다. 실리콘 기반 기존 반도체가 녹아내리는 700°C 고온에서도 데이터 파괴 없이 10억 번의 쓰기·지우기 작업을 견뎌내는 신소재 칩이 개발되었다. 이미지=제미나이3
그간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금성 표면''핵융합로 내부'에서도 멀쩡히 작동하는 꿈의 메모리 기술이 나왔다. 실리콘 기반 기존 반도체가 녹아내리는 700°C 고온에서도 데이터 파괴 없이 10억 번의 쓰기·지우기 작업을 견뎌내는 신소재 칩이 개발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우주 항공, 에너지 안보, 차세대 반도체 공정 전반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남가주대학교(USC) 연구팀은 지난 13(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화씨 1300(섭씨 약 700)의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차세대 메모리 칩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기즈모도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칩은 별도의 냉각 장치 없이도 50시간 이상 데이터 처리 성능을 유지하며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용암보다 강한 '불사신' 메모리 탄생.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용암보다 강한 '불사신' 메모리 탄생.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텅스텐·그래핀 '나노 샌드위치'가 해결한 50년 난제


기존 반도체의 치명적 약점은 ''이다. 온도가 200°C만 넘어가도 칩 내부 전극 물질이 열 확산 현상으로 인해 서로 엉겨 붙으며 합선(Short)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이 물리적 한계를 소재의 '상극성'으로 극복했다.

연구팀이 설계한 칩은 △최상단의 텅스텐(Tungsten) △중간층의 산화하프늄(Hafnium oxide) △하단의 그래핀(Graphene) 구조다. 텅스텐은 금속 중 녹는점이 가장 높고, 그래핀은 원자 한 층 두께의 초박막이면서도 열적 안정성이 압도적이다.

연구를 주도한 조슈아 양 USC 교수는 "텅스텐과 그래핀은 마치 기름과 물 같아서 고온에서도 화학적으로 섞이지 않는다""이 성질 덕분에 물리적 합선이 원천 차단된 '불사신 메모리'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실제 테스트에서 이 칩은 1.5볼트(V)의 저전압만으로도 가혹한 열기를 견디며 정상 작동했다.

우주 안보부터 에너지 주권까지… '데이터 영토'의 확장


이번 기술은 그간 전자기기 투입이 불가능했던 영역을 인류의 '데이터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안보적 가치가 크다.

우선, 행성 탐사 및 우주 항공분야에서 표면 온도가 460°C에 달해 탐사선이 몇 시간 만에 고장 나는 금성 탐사 임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주 아르테미스 2호 미션에서 확인했듯, 우주선의 열 관리는 곧 임무의 성패와 직결된다.
에너지 및 자원 개도 기대된다. 초고온 환경인 핵융합로 내부 점검 로봇이나 지각 깊은 곳을 뚫는 심해 시추 장비에 탑재해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고온 엔진 내부나 제철소 가동 설비에 직접 센서를 부착해 공정 효율을 극대화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현이 가능해진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고 있는 초미세 공정 역시 열 관리와의 싸움이다. 고온 내성이 강화된 신소재 구조는 향후 2nm 이하 차세대 공정 설계에도 영감을 줄 수 있다.

실용화까지 넘어야 할 산…투자자 시선 집중할 세 가지 변수


다만 이번 연구 성과가 곧바로 상용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 교수는 "메모리 칩 외에도 이를 구동하는 로직 회로 등 주변 전자 부품 전체가 고온을 견디도록 설계돼야 비로소 완전한 컴퓨터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실험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단계에 불과하며, 대량 생산 공정으로 확장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투자 시장이 이 기술의 파급력을 가늠하려면 향후 세 가지 지표를 집중 추적해야 한다.

첫째, 메모리 소자를 넘어 고온 환경에서 작동하는 프로세서(로직)와 전원 공급 장치까지 결합한 완전한 시스템 구현이 가능한지 여부다. 둘째, 텅스텐과 그래핀이라는 신소재를 기존 반도체 적층 공정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편입시킬 수 있느냐는 제조 공정의 호환성 문제다. 셋째, 극한 환경용 특수 반도체 시장의 성장 속도가 민간 우주 산업 및 위성 통신의 팽창 곡선과 실제로 맞물리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조슈아 양 교수는 "갈 길이 멀지만, 소재의 설계도는 완성됐다"고 자신했다. 이제 반도체 업계의 시선은 이 '용암 반도체'가 실험실을 나와 실제 우주선과 발전소에 탑재되는 시점으로 향하고 있다. 혁신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뜨거운 곳에서 이미 시작됐다. 용암보다 뜨거운 환경을 견뎌내도록 설계된 이 초소형 적층 칩은 인류의 데이터 영토를 금성 표면과 지구 심층부까지 밀어붙이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초 연구에서 양산 기술로 이어지는 다음 단계가 이 기술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