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공급망 붕괴에 글로벌 유조선 걸프만으로 집결… '에너지 패권' 재편 가속
석유화학발 '2차 인플레이션' 경고… 가공식품·생필품 가격 올 하반기 본격 상승 예고
석유화학발 '2차 인플레이션' 경고… 가공식품·생필품 가격 올 하반기 본격 상승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CNBC 등 주요 외신의 3일(현지시각) 보도를 종합하면, 케플러(Kpler) 집계 기준 4월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520만 배럴을 기록하며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EIA(미국 에너지정보청) 주간 데이터를 인용한 블룸버그는 4월 말 특정 주간 기준 원유 수출이 하루 640만 배럴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전쟁 발발 전인 2월(390만 배럴) 대비 월평균 기준 33% 이상, 주간 최고치 기준으로는 64% 이상 폭증한 수치다.
걸프만으로 모이는 유조선… 미국, 중동 빈자리 꿰찼다
3월 선박 통행량은 평소 한 달 기준 200척에서 240척 이상으로 늘었으며, 대형 유조선 (VLCC·최대 200만 배럴 적재) 50~60척이 미국 항구를 향해 항진 중으로,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코퍼스크리스티는 현재 미국 전체 원유 수출의 절반가량을 담당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주로 휴스턴이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3월 한 달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이 154척에 그치며 전쟁 전 월 3000척 대비 5% 수준으로 급감한 데 따른 것으로, 세계 최대 수출항인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와 이라크 바스라 항이 사실상 봉쇄된 결과다.
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약 62달러(약 9만 1481원)에서 5월 초 현재 배럴당 108~116달러(약 15만 9354~17만 1758원) 수준으로 치솟으며 전쟁 이후 40~50% 이상 급등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가 쇼크 넘어선 '2차 인플레이션' 공포… 장바구니 물가 전방위 압박
문제는 유가 상승이 단순히 주유소 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석유화학 가격 충격을 투자자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석유화학 성분이 완성품의 95% 이상에 들어가 소비자들이 가격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중동 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화학 공급 차질이 예상보다 빠르고 큰 폭으로 진행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연료·비료보다 후순위로 선적되어 미국과 유럽에 대한 충격은 2026년 하반기에 집중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미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간 기준 3.3%로 2024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경제학자들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연말까지 4%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연준 목표치 2%의 두 배 수준이다.
우선 식료품 분야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은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는데, 원재료인 폴리머·수지 가격 급등이 제품 가격을 밀어 올리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류와 신발 부문 역시 나일론·폴리에스터 등 합성 원료 대부분이 석유 기반인 만큼 가을 신학기 쇼핑 시즌을 앞두고 직접 타격이 예상된다.
유럽에서는 화학·철강 제조업체들이 전기 및 원료 비용 급등분을 상쇄하기 위해 이미 최대 30%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ECB는 2026년 말까지 독일·이탈리아 등 에너지 의존도 높은 국가가 기술적 침체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대체 불가능"… 공급망 병목 현상의 한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미국 수출 호조를 '영구적 구조 변화'보다는 '전시 비상 대책'으로 본다. 미국산 원유는 중질유에 최적화된 아시아 정유 시설에 곧바로 투입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수출 용량도 한계에 다다랐다. 코퍼스크리스티의 수출 용량은 파이프라인 제약으로
하루 최대 260만 배럴이 상한선이며, CEO 브리튼은 파이프라인을 확장해도 추가 50만 배럴 처리가 한계라고 밝혔다. 합산 최대 310만 배럴 수준으로, 미국 전체 원유 수출 상한도 도크 용량 제약으로 500만 배럴 초반이 현실적 한계다.
IEA가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의 공급 차질'로 규정한 이번 사태에서, 사우디의 대안 수출로인 동서횡단 파이프라인(페트로라인) 가동량은 하루 최대 300만 배럴로 전쟁 전 호르무즈 경유 물량 600만 배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이란은 하루 5억 달러(약 7377억 원)의 손실을 입고 있으며, 봉쇄 이후 이란의 원유 선적량은 하루 210만 배럴에서 57만 배럴로 73% 급감했다.
한국, 이중·삼중고 직면… 에너지 안보 총체적 재점검 시급
한국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조달하며, 석유화학·반도체의 핵심 원료인 납사(나프타)의 약 35%도 같은 경로를 거친다. 한국 국적 선박 26척이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가운데, 정부 보유 전략비축유는 실제 소비 기준 26일분으로 줄어들었다.
반도체 공급망도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카타르로부터 헬륨의 64.7%를 조달해왔는데, 이란의 라스 라판 공격으로 카타르 헬륨 생산이 멈추면서 헬륨 가격이 40% 이상 폭등했다. 반도체 공정에서 헬륨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소재다.
정부는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이 중 10조 1000억 원이 고유가 부담 완화에 직접 투입되며, 5조 원은 유류 가격 상한제 재원으로, 4조 8000억 원은 소득 하위 70% 계층에 1인당 10만~60만 원의 소비쿠폰으로 지급된다. 지방교부금으로는 9조 7000억원이 배정됐다.
아울러 IEA 공동 비축유 방출(한국 기여분 2,250만 배럴)과 UAE 긴급 원유 2400만 배럴 확보를 통해 실질 가용 비축일수를 8~9일 추가로 확보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유류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고, 공공 부문 차량 운행 5부제 및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병행하고 있다. OECD는 한국의 성장 전망을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인 0.4%포인트 하향 조정하고, 물가 전망은 2.7%로 상향했다.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납사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의 한국 석유화학 단지 가동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국산 원유·LNG 수입 비중 확대와 원전 가동률 상향,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등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