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런스 “세제 부담·지정학 위기 회피 목적”…글로벌 자본 ‘거점 재배치’ 급증
싱가포르 매력도 1위, 한국은 공동 8위…제도적 유연성이 가른 자산가들의 선택
싱가포르 매력도 1위, 한국은 공동 8위…제도적 유연성이 가른 자산가들의 선택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자산가들이 국적은 유지한 채 자산과 거점을 분산하는 '다중 관할권 전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이주 전문 컨설팅 기업 헨리앤파트너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규모가 큰 미국인들이 위험 분산을 목적으로 해외 거주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건수가 지난해 기준으로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는 글로벌 자본의 이동 경로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자산가들의 이러한 행보는 글로벌 자본의 '거점 재배치'를 유발하며, 지역별 자산 가격과 금융 인프라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플랜B는 끝났다…‘다중 관할권’ 구축하는 3가지 배경
글로벌 자산가들이 단일 국가에 삶과 자본을 모두 종속시키지 않는 흐름은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했다. 과거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하나의 대안(플랜 B)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세계적인 지정학적 불안정을 고려해 세 개나 네 개의 관할권을 확보하는 다중 거점 전략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들은 주거지는 A국, 시민권은 B국, 사업과 금융 자산은 C·D국에 쪼개어 배치하는 방식으로 통제권을 분산한다.
바실 모어-엘제키 헨리앤파트너스 미주 개인고객 부문 대표는 미국 자산가들이 탈출 목적이 아니라 위기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 확보'를 위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선호에 자본 집중…한국, 공동 8위에 그친 이유
자산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정착지는 싱가포르로 나타났다. 싱가포르는 견고한 법치와 깊은 자본시장, 정치적 안정성, 고도화한 자산 관리 생태계를 강점으로 평가받아 100점 만점에 79.5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향후 아시아 내 자산관리 시장에서 싱가포르 중심의 자금 흡수력이 더욱 강화되고, 리스크 헤지 기능을 수행하는 특정 금융 허브로의 자금 쏠림이 심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면 미국은 세금 문제로 62.3점에 그치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미국 자산가의 절반 가까이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같은 유럽 프로그램을 선호해 남유럽 부동산과 사모시장으로 자금 유입을 견인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절차가 신속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으로 분산했다.
한국은 65.7점을 기록해 프랑스와 함께 공동 8위에 올랐다. 한국은 우수한 치안과 거주 안정성, 정보기술(IT) 인프라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자산 운용과 승계 측면에서는 싱가포르 등 경쟁국 대비 세제적·제도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주요 국가별 매력도 점수(100점 만점) 순위를 보면 싱가포르(79.5), 뉴질랜드(75.8), 케이맨제도(74.3), 사이프러스(73.5), 네덜란드(72.8), 포르투갈(72.5), 이탈리아(72.3), 한국(65.7), 프랑스(65.7) 순이다.
글로벌 자산 이동 흐름…해외 자산가들의 의사결정 체크포인트
글로벌 자산가들의 거주지 다변화 흐름은 자산 방어의 표준 전략으로 안착했다. 특정 국가의 정치적 변화나 세제 개편이 자산 전체에 타격을 주지 않도록 분산하는 움직임이다. 자본 흐름을 추적하는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이 실전 투자 관점에서 해외 자산가들의 자금 이동 경로를 예측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핵심 의사결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별 거주자 판정 기준과 다중 과세 회피 전략이다. 해외 자산가들은 국적을 유지한 채 거점을 옮길 때 해당국의 '183일 룰(연간 체류 일수)'과 해외금융계좌 신고 의무를 최우선으로 검토한다. 이들이 이중과세방지협약을 활용해 '과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국가 간 자본 이동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둘째,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안전자산 이동 경로도 중요하다. 대만해협이나 중동 리스크가 고조될 때 글로벌 자산가들이 자금을 결집시키는 타깃 지역을 추적해야 한다. 이들이 리스크 회피를 위해 달러, 금, 싱가포르 역외 자산 등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역설적 유동성 패턴을 읽어야 글로벌 자본의 유입 경로를 선행 예측할 수 있다.
셋째, 선진 금융국의 패밀리오피스 규제 및 인센티브 동향이다. 자산가들이 정착지를 고르는 결정적 요인은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금융 허브들이 제공하는 제도적 혜택이다. 해외 자본이 자산 승계와 사모펀드 투자 유연성이 높은 국가로 쏠리는 규제 트렌드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글로벌 자본 유출입의 강도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다.
글로벌 자산가는 국경이 아니라 규제와 자산 보호 효율성을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자본 유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흐름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 간의 전통적 역학 관계가 재편되는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