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월물 강세 약화에 컨탱고 옵션 부활…브렌트 순매수는 6개월 최저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란의 평화 합의 이후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한동안 힘을 잃었던 원유 공급과잉 베팅이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이란의 합의 이후 원유 선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원유 공급과잉을 예상한 일부 옵션 포지션이 다시 유효한 가격대에 접근하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가가 급등하기 전 일부 트레이더들은 원유 공급이 수요를 웃돌면서 단기 선물 가격이 장기 선물 가격보다 낮아지는 이른바 '컨탱고(contango)' 구조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컨탱고는 원유·금·곡물 같은 선물시장에서 가까운 만기 가격보다 먼 만기 가격이 더 높은 상태를 말한다. 공급이 넉넉하거나 수요가 약할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근월물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4월 말에는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9월물보다 배럴당 5달러(약 7700원) 넘게 높아졌고, 9월물은 10월물보다 4달러(약 6100원) 높게 거래됐다.
이 같은 급등세로 인해 해당 스프레드가 0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설정된 금융결제형 풋옵션 포지션은 사실상 가치가 사라졌다. 이 포지션 규모는 2만 계약 이상으로 월 2000만 배럴에 해당한다.
◇근월물 프리미엄 축소에 옵션 베팅 재부상
상황은 미·이란 합의 이후 달라졌다. 원유 선물이 하락하면서 해당 계약 간 가격 차이는 다시 1달러 아래로 좁혀졌다. 이에 따라 한때 무의미해졌던 공급과잉 베팅 옵션이 다시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로 돌아왔다.
이는 원유시장이 다시 공급 부족보다 공급 과잉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쟁 위험이 고조됐을 때는 당장 인도 가능한 원유의 가치가 크게 올라 근월물 가격이 급등했지만 긴장이 완화되자 수요 둔화와 재고 부담을 반영한 기존 약세 논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유가 하락이 일방적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블룸버그는 “평화 합의가 흔들릴 경우 원유시장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적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지난 몇 달 동안 줄어든 저장 탱크 재고가 즉시 채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브렌트유 순매수 6개월 최저
약세 흐름은 선물시장 참가자들의 매매 흐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최근 주간 자료에 따르면 머니매니저와 대형 투기 세력의 브렌트유 매수 우위 규모는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이들의 브렌트유 순매수 규모는 3월 말 이후 거의 4분의 3 감소했다. 투자자들이 유가가 더 오를 가능성을 예전보다 낮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옵션시장에서도 유가 급등 가능성을 반영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 가격 부담은 크게 낮아졌다. 3월 중순 원유 흐름이 제한되고 공급 우려가 커졌을 당시 브렌트유 2개월 콜옵션 프리미엄은 30포인트를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졌다.
이는 시장이 유가 급등 위험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던 국면에서 벗어나 상승과 하락 위험을 보다 균형 있게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합의가 최종 확정되고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옵션시장은 공급 차질보다 가격 안정 또는 추가 하락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70달러선 하회 베팅도 등장
보다 직접적인 약세 베팅도 나오고 있다. 17일에는 9월물 브렌트유 70달러(약 10만7000원)·69달러(약 10만6000원) 풋스프레드(put spread) 약 10만 계약이 거래됐다. 이는 1억 배럴에 해당하는 규모다. 19일에도 71달러(약 10만9000원)·70달러(약 10만7000원) 풋스프레드 4100만 배럴어치가 추가로 거래됐다. 풋스프레드는 유가가 특정 가격대 아래로 내려갈 때 수익을 얻도록 설계된 옵션 전략이다.
블룸버그는 “이 거래가 장외시장에서 유가가 향후 한 달 안팎 사이 배럴당 70~71달러(약 10만7000~10만9000원) 아래로 떨어질 것에 베팅한 대규모 디지털 옵션을 헤지하기 위한 딜러 거래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옵션 포지션도 유가 하락을 키울 수 있는 변수로 거론된다. 예컨대 8월물과 9월물 브렌트유 75달러(약 11만5000원) 행사가격에는 각각 약 4만5000계약의 미결제약정이 남아 있다. 옵션을 매도한 딜러들이 가격 하락에 맞춰 위험을 줄이려면 선물을 추가로 팔아야 할 수 있다.
이 경우 유가가 특정 가격대를 밑돌 때 딜러들의 헤지성 매도가 더해지면서 하락세가 가속화될 수 있다. 원유시장에서는 지정학적 위험 완화와 옵션시장 구조가 맞물리며 가격 변동성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미·이란 합의는 단순히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원유 선물과 옵션시장의 포지션 구도까지 바꾸고 있다. 전쟁 우려로 묻혔던 공급과잉 베팅이 되살아나면서 국제유가는 다시 수급 약화와 재고 부담을 반영하는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