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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은 이정화 여사 13주기, 현대가 “손길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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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은 이정화 여사 13주기, 현대가 “손길 그리워”

2009년 별세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모친 이정화 여사, 사진=글로벌이코노믹DB이미지 확대보기
2009년 별세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모친 이정화 여사, 사진=글로벌이코노믹DB
오는 10월 5일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고(故) 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이 된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로 자란 이 여사는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미대 재학 중에 정 회장과 연애 결혼해 범 현대가로 들어왔다. 그는 손위 동서인 이양자씨가 1991년 세상을 떠난 뒤 18년간 현대가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왔다.
정씨 일가는 현대그룹이라는 한국경제의 이정표 격인 기업을 일궈냈다. 지금은 친척·형제간 계열이 분리돼 ‘범 현대가’로 불리는 이들 기업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여성이 기업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인 고 변중석 여사에서부터 물려 내려진 내조 위주의 생활이 이 여사를 이어 후대에도 이어졌다.

특히, 이 여사는 젊은 시절 다른 형제와 달리 시아버지(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눈에서 멀어져 있던 정몽구 명예회장이 힘든 기업인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며, 그의 성공의 디딤돌이 됐다.

1990년대 후반 형제간 갈등으로 집안이 뿔뿔이 흩어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 여사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집안의 중심을 다져 나갔다. 정씨 일가가 지금까지 우애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가 이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여사는 검소와 근면함을 한 평생 실천했던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챙겼고, 19년간 시어머니 병 수발도 도맡았다. 친척 경조사는 잊지 않고 챙겼고, 신문배달원이나 미화원들에게도 명절날 선물을 건네는 자애로운 어머니였다.

이 여사는 자식들에게 ‘겸양’도 강조했다. 자식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준 속담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였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이 여사는 자녀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겸양의 미덕을 강조하고 스스로 이를 실천하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 회장의 안주인이었지만 계열사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던 이 여사를 위해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3년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의 지분을 선물해 대주주로서 고문을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직함이었을 뿐 그는 ‘내조’에만 주력했다.
자식, 그 가운데에서도 맏아들이자 장손인 정의선 회장에 대한 애정은 컸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대차그룹을 이끌어야 할 숙명을 안은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공식 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이 여사는 2008년 당시 기아 사장이었던 정의선 부회장이 자신이 추진해왔던 ‘디자인 경영’의 첫 작품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하비 신차 발표회장에 모습을 나타내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발표회장에서 정 회장은 “어머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한평생 헌신해온 그의 존재감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컸다.

한편, 오는 4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회장 자택에서 이 여사의 제사가 있다. 범 현대가 친척들도 자리를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이 여사에 대한 정의성 회장의 그리움은 클 것”이라면서 “수 많은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며 힘을 북돋워 준 이 여사의 업적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