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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철강업계 신사’ 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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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철강업계 신사’ 불려

1974년 부산파이프 이사로 입사한 뒤
1980년 사장 취임 후 40여년간 이끌어
냉철한 선구안적 능력‧과감한 투자로
‘외유내강’ 승부사 면모 발휘해 성장
세아그룹 매출 규모 300배 이상 키워내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오른쪽) 생전 세아제강 포항공장을 방문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세아그룹이미지 확대보기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오른쪽) 생전 세아제강 포항공장을 방문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세아그룹
오는 10일 영면 10주기를 맞는 고(故) 이운형 세아그룹 선대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바탕으로 경쟁이 치열한 철강업계에서 ‘신사’로 불렸던 기업인이다.

1974년 세아제강의 전신인 부산파이프 이사로 입사한 후, 1980년 사장으로 취임하며 약 40년간 세아그룹을 이끌었다. 당시 이운형 회장은 성공적인 송유 및 유정용 API 강관을 개발을 진행하며 창사 이래 가장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려 강관업계 최초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시켰다.

이러한 리더십은 그를 대한민국 산업화를 다진 숨은 주역으로 평가 받도록 했으며, 주요 계열사를 해당분야 선도 기업으로 육성하여 세아의 체력을 굳건히 하는데 일조했다.평생을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리더십은 부드러웠지만 그 무엇보다 단단했고 위기 때 마다 빛을 발했다.

또한 이운형 회장은 ‘나서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경영방식을 가졌던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겸손하고 온화한 경영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운형 회장을 향해 사람들은 ‘철강업계의 신사’라고 불렀다.
별칭’답게 이운형 회장은 큰 조직을 이끌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과 더불어 마치 자상한 아버지처럼 부드러운 면모로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실제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운형 회장이 평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땐 문을 잡아주고, 신입사원을 귀한 손님처럼 맞이하며 그들이 그간 겪었을 취업의 고충을 위로해 줬다. 마주치는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만나면 먼저 안부를 묻고,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현장 임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려 했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회사에 충정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한 커다란 동기부여가 됐다.

늘 부드럽고 자상한 겉모습과는 상반되게 이운형 회장은 냉철한 선구안적 능력과 과감한 투자로 ‘외유내강’의 승부사 면모를 발휘하며 세아를 성장시켰다. 타 기업보다 한발 앞선 2001년 지주회사체제를 구축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을 회생 불가능한 기업이라고 여겼을 때, 특수강 사업이 국가 기간산업에 반드시 필요하며 철강사업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이라 판단하여 인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의 노력으로 세아는 2003년 기아특수강을 성공적으로 인수하였으며, 인수 후에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고수하여 만년 적자 기업을 불과 1년만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킴과 동시에 한국의 특수강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특히, 성숙기에 접어든 강관산업 위주의 세아그룹 포트폴리오를 특수강 사업으로 넓히며 세아그룹의 지속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12년 이운형 회장은 세아그룹을 글로벌 철강회사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이 선정한 철강산업부문 최고기업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운형 회장의 안목은 세아 최초의 합작사인 부산번디(현 세아 FS)가 품질 안정을 이룬 후 소형 튜브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한편,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부산번디에 이어 1985년 외국 합작사로 설립된 한국알로이로드(현 세아 ESAB)가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플럭스 코어드 와이어(FCW)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해 1987년 7대 선급 승인을 받아 세계적인 품질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창원강업(현 세아특수강)을 인수해 사세를 확장했다. 다양한 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는 당시의 분위기를 경계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철강 핵심역량’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졌던 그의 통찰력과 결정은, IMF 외환 위기 때에도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아울러, 타 기업보다 한발 앞서 지주회사제를 도입하여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전문화를 이룰 수 있던 배경도 이운형 회장의 탁월한 경영 능력에 기인한다.

세아 FS, 세아 ESAB은 세아그룹 내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한 이후, 급변하는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해 보다 많은 성장 기회창출을 위해 2021년 어팔마캐피탈에 매각되었다. 현재는 두 회사 모두 세아그룹에서 편출된 상태이나, 세아홀딩스는 두 회사의 성장을 위한 협력과 신뢰의 지지 표현으로 현재 30% 지분을 지속젂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운형 회장은 1996년 그룹의 사명을 부산파이프에서 ‘세아’로 바꾸면서 기업이념을 ‘세상을 아름답게’하는 기업으로 재정의한 것도 이운형 회장의 따뜻한 인품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운형 회장은 세아의 가치가 곧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을 이끈다는 사명감으로 세아가 만들어 내는 철강 소재와 부품이 자동차, 조선, 항공, 기계, 발전, 에너지, 건설 등 국가 산업 전반에서 든든한 기초가 되어 철강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기여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업이 되길 바랬다.

실제로, 세아는 이운형 회장이 재정의한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1996년 연간매출 4694억원, 영업이익 255억원에서, 이운형 회장 타계 직전 해인 2012년 그룹매출 6조1692억원, 영업이익 4019억원을 기록하며 외형규모가 13배 가량 확대됐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