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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반도체 전쟁, 다음 라운드는 ‘고급 패키징’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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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반도체 전쟁, 다음 라운드는 ‘고급 패키징’ 대결

중국 반도체 산업 자립에 불을 붙인 화웨이의 '기린9000s'칩 기판 사진.  사진=바이두 갈무리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반도체 산업 자립에 불을 붙인 화웨이의 '기린9000s'칩 기판 사진. 사진=바이두 갈무리
첨단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히 첨단 반도체·제조 기술 및 장비의 수출 규제를 넘어 반도체 제조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고급 패키징’ 시장을 두고 정면 대결을 펼칠 모양새다.

중국의 인공지능(AI) 및 첨단 반도체 역량을 억제하기 위해 7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미국은 그다음 단계로 ‘반도체 패키징’ 사업의 자국화에 나섰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국가 첨단 패키징 제조 프로그램’에 30억 달러(약 3조 87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웨이퍼 형태의 반도체를 최종 제품 형태로 ‘포장’하는 패키징 공정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마저 외주에 의존할 정도로 반도체 산업에서 비중이 작았다.

하지만, 5나노급 반도체 시대가 열린 이후 반도체 설계 및 미세 공정 난도가 급상승하고, 수율(양품 생산 비율) 향상도 더디어지면서 제조사들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각각 다른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의 작은 기판에 얹고, 패키징 공정으로 통합해 최종 완성품으로 만드는 ‘고급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미래 첨단 반도체 제조와 공급의 핵심 요소로 급부상했다. 엔비디아의 A100, H100 등 첨단 AI 반도체 제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자국 내에서 첨단 AI 반도체를 만들고 공급받으려면 자국 내 패키징 산업을 활성화할 수밖에 없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애리조나 피닉스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TSMC에 추가 보조금을 지원해서라도 패키징 공장을 함께 짓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국내 기업인 SK하이닉스도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미국에 150억 달러를 들여 첨단 패키징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백악관 대변인 로빈 패터슨은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제조의 모든 요소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 첨단 패키징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역시 ‘반도체 패키징’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최근에야 겨우 7나노급 반도체 양산에 발을 들인 중국 입장에서 당장 직면한 반도체 공정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첨단 고성능 AI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반도체 패키징’만 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 분석기업 티리아스 리서치의 설립자 짐 맥그리거는 블룸버그를 통해 “패키징은 반도체 산업 혁신의 새로운 기둥이며, 이는 업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아직 최첨단 역량을 갖추지 못한 중국의 경우, 미국 정부의 제한을 받지 않는 패키징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확실히 더 쉬운 방법이고,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이미 자체적으로 상당한 반도체 패키징 산업 규모와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10대 패키징 기업 중 3위 JCET, 5위 통푸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3개 업체가 중국 기업이다.

국가별 시장 점유율도 52%의 대만에 이어 21%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규모나 경험만 보면 오히려 중국이 미국이나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 중국이 작정하고 반도체 패키징 기술에 투자하고 고도화할수록 미국과의 성능 격차를 빠르게 줄일 수 있다.

JCET는 지난 8월 실적발표에서 “고성능 컴퓨팅 및 스토리지 등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솔루션에 중점을 두고 고급 패키징 기술과 제품 개발을 강화하는 중”이라며 “IT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고성능 첨단 패키징 기술의 방향이 점점 명확해지는 만큼, 고품질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JCET는 지난해 4나노급 패키징 공정 양산도 시작했다.

중국 정부도 패키징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과학기술부 산하 중국 국립자연과학재단(NSFC)이 지난 9월 칩렛(다수의 서로 다른 반도체를 조합하고 패키징해 하나의 반도체로 완성하는 제조 방법)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최대 4600만 위안(약 83억 7000만 원)의 자금을 투입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싱크탱크 인스티튜트 몽테뉴의 중국 전문가 마티유 뒤샤텔 박사는 “중국이 (미국의) 기술 이전 제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고급 반도체 패키징이다”라며 “이는 현재 중국이 (미국의 제약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자할 수 있는 안전한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