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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프랑스 시위 "역사의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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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프랑스 시위 "역사의 도돌이표"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237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을 두고 1789년의 프랑스와 2026년의 프랑스가 마주한 현실은 기묘할 정도로 겹쳐진다. 18세기 말, 베르사유 궁정의 사치와 무모한 전비 조달이 불러온 국가부채의 덫은 절대왕정의 근간을 뒤흔들고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의 함성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2026년 오늘, 파리의 샹젤리제와 공화국 광장을 뒤덮은 최루탄 연기와 성난 군중의 외침 역시 그 뿌리를 파고들면 통제 불능의 궤도에 진입한 거대한 국가부채와 마주하게 된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숭고한 공화국의 표어 뒤편에서 국가의 숨통을 조여온 것은 언제나 차가운 대차대조표의 붉은 숫자, 곧 부채의 누적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계몽사상 그 자체보다 앞서 국가 파산이라는 냉혹한 재정 위기였다. 루이 14세 이래 누적된 대외 전쟁 비용과 특히 영국의 세력을 꺾기 위해 무리하게 참전했던 미국 독립전쟁 지원금은 왕실 재정을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당시 프랑스 세입의 절반 이상이 국채 이자를 감당하는 데 고스란히 소진되었다. 재정총감 샤를 알렉상드르 드 칼론과 자크 네케르가 연이어 경고했듯, 부채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국가의 존속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기득권이었던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은 면세 특권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고, 결국 재정 파탄의 부담은 고스란히 제3신분인 평민층에게 전가되었다. 175년 만에 소집된 삼부회는 개혁의 장이 아닌 계급 간 이해충돌의 뇌관이 되었으며, 부채의 청구서를 민중에게 떠넘기려던 왕정의 기도는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격랑을 촉발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훌쩍 지난 2026년, 엘리제궁을 뒤흔드는 파리의 시위 역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메커니즘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를 훌쩍 넘어섰으며, 연간 재정적자는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 상한선인 3%를 아득히 초과하여 5~6%대를 위태롭게 맴돌고 있다. 한때 프랑스 국채는 독일 분트채와 더불어 유럽 대륙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대우받았으나, 이제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국채와의 금리 스프레드가 좁혀지거나 역전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글로벌 고금리 환경의 장기화는 연간 국채 이자 지불액을 국방과 교육 예산을 위협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려놓았다. 1789년 프랑스 왕정이 감당해야 했던 ‘세입 절반의 이자 잠식’이라는 망령이, 21세기 디지털 문명 한가운데서 유로화의 외피를 쓴 채 부활한 셈이다.

1789년과 2026년을 잇는 첫 번째 공통분모는 바로 ‘비용 분담의 불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분노다. 18세기 민중이 면세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와 귀족을 보며 피를 토했다면, 2026년 파리 거리에 쏟아져 나온 노동자와 청년들은 ‘부자 감세’와 ‘공공복지 축소’라는 불평등한 청구서에 격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집권 이래 투자 활성화와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부유세(ISF)를 폐지하고 자본소득에 대한 단일세율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른바 ‘낙수효과’는 시장에서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고, 비어버린 국고의 공백은 결국 정년 연장이라는 연금 개혁과 공공서비스 지출 삭감이라는 형태로 일반 대중의 어깨 위에 얹혔다. 세출을 줄여 부채를 메우려는 정부의 긴축안은 대중의 눈에 ‘특권층의 감세 비용을 서민의 희생으로 메우려는 현대판 면세 특권의 비호’로 비친 것이다.
두 번째 공통분모는 ‘구조개혁의 정치적 기능 정지’다. 1789년의 삼부회가 신분별 투표 방식을 둘러싸고 마비되었던 것처럼, 2026년 프랑스의 국민의회는 극좌·좌파 연합, 범여권 중도파, 극우 국민연합이라는 극단적인 3자 분열 구도 속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파도 재정 긴축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유권자에게 설득할 용기를 내지 못하며, 적자를 줄이려는 정부의 예산안은 번번이 불신임 투표와 정치적 파업의 표적이 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고통 분담이 필수적이지만, 포퓰리즘과 진영 논리로 분열된 의회는 아무런 합의도 도출해내지 못하는 식물 상태에 빠졌다. 지도력의 부재와 정치적 교착은 재정 적자를 축소하기는커녕 더욱 키우는 악순환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세 번째는 ‘소비된 부채와 미래의 상실’이다. 18세기 프랑스 왕정의 빚이 미래를 위한 생산적 투자나 자본 축적이 아닌 전비와 귀족적 소비로 소진되었듯, 현대 프랑스의 천문학적 국가부채 역시 미래 성장 동력 창출보다는 방만한 공공부문 지출과 만성적인 복지 급여를 보전하는 경상경비로 탕진되었다. GDP의 57%를 상회하는 압도적인 정부 지출 비중은 경제의 활력을 갉아먹었고, 인구 고령화 속에서 생산성을 넘어서는 사회적 급부의 유지는 빚에 빚을 얹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결국 미래 세대의 소득을 앞당겨 현재의 안락을 연명해온 기성세대의 지체된 대가가 2026년 거리의 청년들에게 ‘더 늦게 은퇴하고, 더 많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암울한 절망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국가부채는 단순한 회계학적 잔고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 사회가 미래 세대와 맺은 사회계약의 무게이자,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자제력의 척도다. 1789년 바스티유를 무너뜨린 것은 단순한 억압에 대한 분노를 넘어, 파탄 난 국가를 방치하고 약자에게 짐을 떠넘긴 무능한 권력에 대한 응징이었다. 2026년 지금, 불타는 파리의 바리케이드가 던지는 메시지 또한 명확하다. 공정한 분담 없는 긴축, 생산성 없는 적자 지출, 정치적 결단이 실종된 부채의 유예는 필연적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파국을 부른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다시금 기로에 서 있다. 부채의 누적을 더 이상 시장의 인내와 외채 발행으로 은폐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237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금 국가부채를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