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64)] 꿈꾸는 도시에서 익어가는 꿈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꿈꾸는 도시의 모습 구현와인의 숙성된 느낌처럼 작가가 꿈꾸는 도시 그려






박건우의 꿈꾸는 도시들은 우리가 살고 일하며 생활하는 공간을 넘어 그 자체가 꿈을 꾸는 유기적 생명체가 된다.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난 늦은 밤, 도시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또 불이 꺼지면, 두 눈을 반짝이듯 도시는 꿈을 꾸는 것이다. 화면 속 선명함과 반짝임으로 도시의 꿈은 생생히 살아나고 도시는 큰 덩치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사람들의 꿈을 같이 꾸고 있다. 박건우의 도시가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것은 칠하기, 그리기라는 회화의 기본 행위에서 뿌리고 긁고 흘리는 행위까지 작가의 다양한 몸의 움직임과 궤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유화물감보다 묽어서 좀 더 빠르고 잘 흘러내리며 자유롭게 작업이 가능하다는 자동차 안료를 재료로 선택했고, 안료의 강렬한 색감은 서로 뒤엉켜 살아 숨 쉬듯 번뜩이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작은 집과 건물들은 그 자체가 도시를 구성하는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점이면서 얼룩인 비구상적 추상의 일부이며, 또한 모듈화되어 있는 도시의 거주민들이기도 하다. 도시의 거주민들인 집과 건물들은 추상적 붓질들과 함께 꿈틀대며 춤을 추며 꿈꾸고 있다. 꿈꾸는 도시를 그리는 박건우의 그림이 꿈꾸고 있다.
박건우의 도시 탐색은 이후 캔버스를 벗어나 새로운 꿈의 매체를 찾는다. 평면을 넘어서 오브제에 덧입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작가는 큰 와인병을 캔버스 삼아 도시의 꿈을 그리게 된다. 병이 ‘담는다’,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와인의 숙성된 느낌처럼 도시가 숙성되어 꿈을 이룬다는 의미 때문에 와인병을 선택했다는 작가의 설명처럼 거대한 와인병에는 작가가 꿈꾸는 도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평면 작업을 하던 작가에게 대형 오브제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음이 틀림없다. 시판 와인병과 프라이팬 등 공산품에 자동차 안료로 기존과 유사한 추상표현주의적 작업방식으로 꿈꾸는 도시를 그리면서 오브제 작업을 준비하던 작가는 ‘금보성 아트센터’의 2015년 올해의 창작상 수상을 통해 큰 와인병 오브제에 꿈꾸는 도시를 담기 시작한다. ‘공개작업전시’라는 다소 독특한 작업과 전시 형태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아트센터 외부와 내부에서 49일 동안 4m에 달하는 와인병 4개와 씨름하며 작품 연작을 내놓는다. 이 와인병들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도시민들이 지나다니며 지켜보는 가운데 완성과 미완성, 작업과 재작업을 넘나들며 태어난 작은 도시들이다. 작업 전 작은 와인병에 시험적인 작업을 하고, 컴퓨터 에스키스 후 작품 제작에 돌입했던 작가는 와인병에 직접 붓을 맞대면서 기존의 추상표현주의적 회화 방식이 큰 와인병에서는 계획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회화의 기본 요소들로 돌아가게 된다. 이로써 와인병 도시의 꿈은 기호이미지를 입게 되는 것이다.


박건우 와인병의 꿈꾸는 도시는 점, 선, 면이라는 도형의 기본 조형요소를 이용하여 평면적이며 입체적이고 기호화된 도시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내 몸에 저장되었던 회화와 조형의 기본 요소들이 대형 작업을 통해 기호화되어서 작품에 나타난 것”이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기호화된 도시의 모습은 와인병의 조형과 만나 ‘밝은 꿈을 담고 숙성시키는 도시’의 아이콘이 된다. 강렬한 색으로 꿈틀되는 유기적 생명체와도 같았던 기존의 캔버스 위 도시는 FRP(Fiber Reinforced Plastics, 섬유강화플라스틱)로 만든 거대한 흰 와인병에 도시의 밝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디자인적 오브제로 다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둥근 와인병은 우리에게 익숙한 직사각형의 빌딩과 다리들, 삼각형의 집, 공장, 교회들, 주변 산과 가로수, 포도 등의 자연 이미지 등 도시와 관련된 여러 이미지들이 친근감을 주는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 붉은색 등 밝은 색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와인병을 기울이며 술잔에 술을 따르고 꿈과 이야기를 나누는 유쾌하고 활기찬 도시를 생각하듯 도시가 된 커다란 와인병은 밝은 꿈을 꾸고 있다.

● 작가 박건우는 누구?
세종대학교 및 동대학원 회화과 석사를 마쳤으며, 9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995년 수채화로 작업을 시작했으며, 유화로 작업 매체를 변경하며 2013년부터 박태식이라는 이름이 아닌 박건우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신사임당미술대전기념 2008 국제초대작가전, 베이징 관음당아트페어, 하노이 아트페어, New York-Seoul Art Festival 등 다양한 아트페어와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금보성 아트센터 올해의 창작상을 받았으며, 현재 진주에서 캔버스 속 회화를 공공미술로 확장시키는 계획을 모색하며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