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추진·자동화 시스템이 화근… 600만 줄 코드에 갇힌 미 해군의 고민
함정 설계·운용 패러다임 전환 시급… 인력 감축과 첨단화 사이 '안전 사각지대' 발생
함정 설계·운용 패러다임 전환 시급… 인력 감축과 첨단화 사이 '안전 사각지대' 발생
이미지 확대보기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는 미국 해군의 차세대 주력 군함들이 오히려 이전 세대 군함보다 비전투 상황에서의 화재 위험에 더 취약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각) 군사 전문 매체 '워리어 메이븐(Warrior Maven)'은 크리스 오스본(Kris Osborn)의 분석을 통해 줌월트급 구축함과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이 직면한 구조적인 화재 위험성을 심층 보도했다.
이번 보도는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스마트 함정'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사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 된 첨단 군함… 고전압·고밀도 설계가 잠재적 발화점
미 해군이 자랑하는 줌월트급(DDG 1000) 유도탄 구축함과 제럴드 R. 포드급(CVN 78) 항공모함은 설계 단계부터 '통합 전기추진 시스템(IPS)'과 '전자식 사출 장치(EMALS)' 등 고도의 전기화 기술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이 역설적으로 함정 내 화재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차세대 함정의 화재 리스크가 단순히 장비의 결함을 넘어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전력 배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고전압 환경이 문제다. 전력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과 미세한 스파크가 노후화된 배선이나 변압기 결함과 만날 때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정의 자동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내부 전선 밀도가 급격히 상승한 점도 위험을 키우는 요소다.
줌월트급의 경우 '함정 통합 컴퓨팅 환경(TSCE)' 구동을 위해 600만 줄 이상의 소프트웨어 코드가 투입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복잡한 배선망은 가혹한 해상 환경과 염분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전선 부식으로 인한 단락 사고 확률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또한, 좁은 구획 안에 항공유, 유압유, 정밀 세척제 등 인화성 물질이 밀집된 군함 특유의 공간 구조도 치명적이다.
만약 전기적 결함으로 발생한 작은 불씨가 이러한 가연성 물질에 옮겨붙을 경우,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폭발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함정 전체를 위협하는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자동화의 함정'과 인력 부족… 초동 조치 능력 저하 우려
함정의 지능화가 반드시 안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휴먼 팩터(Human Factor)'의 문제도 심각하게 다뤄진다. 군사 전문가들은 첨단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승조원 수가 줄어든 점이 비상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제럴드 R. 포드함은 이전 니미츠급 대비 승조원을 약 600명에서 최대 1100명까지 줄였으나, 정작 화재 발생 시 현장에 투입될 '인적 자원'은 부족해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계가 화재를 감지하더라도, 좁고 복잡한 함내 구조에서 물리적으로 불길을 잡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장기간 작전 수행에 따른 승조원의 피로 누적과 주의력 결핍은 자동화 시스템의 경고를 간과하거나 오조작하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 해군 연구소(USNI) 자료는 최근 발생한 주요 함정 화재 사고 중 상당수가 정비 절차 미준수나 관리 소홀 등 인위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미 해군의 대응과 향후 과제… '기술 신뢰성' 확보가 관건
미 해군은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 센서, 연기 감지기, 가스 기반 자동 소화 설비 등 다중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하드웨어적인 소화 설비 확충보다 설계 철학의 근본적인 재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로는 미 해군이 스텔스 성능과 공격력 강화에 치중한 나머지, 시스템 복잡성 증가에 따른 안전 마진 확보에는 다소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건조될 차세대 함정은 전기 시스템의 물리적 격벽을 더욱 강화하고, 소프트웨어 기반의 실시간 단락 예측 기술을 도입하는 등 지능형 안전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미 해군이 직면한 화재 문제는 단순한 사고 예방 차원을 넘어, 첨단 기술의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는 적'인 내부 화재를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면, 수조 원을 투입한 최첨단 전력도 모래성 위에 쌓은 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냉정한 분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