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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인생 열어줄 곳 향해 가파른 산 힘겹게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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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인생 열어줄 곳 향해 가파른 산 힘겹게 올라

[정경대의 의학소설-생명의 열쇠(48)]

생명의 열쇠(48)


7. 토굴 속의 은사


새 인생 열어줄 곳 향해 가파른 산 힘겹게 올라


[글로벌이코노믹=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 수민은 그녀를 은근한 눈으로 쳐다보고 말했다. 수민은 오빠의 무뚝뚝한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녀의 속내를 오늘 처음 짐작했다. 그래서 거실로 자리를 옮겨 앉아서 우리 오빠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는 잔뜩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신명나게 늘어놓았다. 그녀는 수민의 수다스러운 오빠 자랑을 즐거운 표정으로 끝까지 다 들었다. 이야기 대목에 따라 웃기도 하고 눈을 크게 떠서 놀란 시늉을 하는 등 맞장구도 쳐주었다.

그 시각 소산은 담배 한 보루를 사들고 버스로 관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서울대학교 옆 광장을 가로질러 아파트와 문화원 사이 완만한 오르막 차도를 지나 산 초입에서부터 가파른 길을 택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가파르고 거칠기는 해도 바쁜 걸음으로 오르니 겨우 십 분 만에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혹한을 몰고 온 맞바람이 어찌나 센지 걸음을 빨리 할 수가 없었다. 귀도 떨어져나갈 듯 시려서 수민이 준 목도리를 두르지 않고 온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래 목을 한껏 움츠려서 두터운 잠바 깃을 세웠다. 그러고는 한발 한 발 힘들게 앞으로 나아갔다. 혹한 바람도 바람이지만 비탈을 가로지른 얼어붙은 좁은 길이 하도 미끄러워서 마음만 급했지 발을 제대로 옮겨놓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은사를 만날 기쁨이 가슴에 벅차있어서 마음만은 힘이 넘쳐서 날아갈 듯 가벼웠다.

미끄러워 넘어질 듯 몸을 못 가누기 일쑤고 어떤 때는 정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면서 인적이 끊어진 외로운 산길을 혼자 가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산에 미친 등산객이라 할만 했다. 그러나 그 길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을 열어줄 곳을 향해 고맙게 이어주는 징검다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운명의 세계에 이르도록 여러 발길이 개척해놓은 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여하간 그는 추위를 견디면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며 험한 길을 오른 끝에 넓고 평평한 능선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아래를 굽어보니 산에 둘러싸인 계곡 가운데 숲에 숨은 듯 푸른 기와지붕 용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멀지 않은 발치여서 그는 맞바람에 아랑곳없이 뛰다시피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내리막길이 험하지 않은데다 미끄럼도 덜해서 단숨에 암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암자는 쥐죽은 듯 조용해서 적막하였다. 산 밑에 다소곳한 암자는 여느 시골집처럼 자그마 한데 뜰이 꽤나 넓어서 황량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큰 소나무 아래 사랑채 같은 요사채에도 스님과 보살이 다 출타하고 없는 듯 기척이 없고 은사가 머문다는 토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요사채 작은 창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 나와서 다행이다 싶어 바삐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문을 두드려 “계십니까?” 하고 두어 번 부르자 “누구세요?”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쑥베옷을 입은 키가 작고 좀 뚱뚱한 보살이 문을 열고 나왔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hs성북한의원 학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