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여인의 고향이 '사랑'이라서 그런 것일까"

공유
0

"여인의 고향이 '사랑'이라서 그런 것일까"

[정경대의 의학소설-생명의 열쇠(64)]

생명의 열쇠(64)


8. 자연이 나였구나!


"여인의 고향이 '사랑'이라서 그런 것일까"


[글로벌이코노믹=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 소산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반드시 너의 병을 내가 고쳐주마! 하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가 쏟아낸 강렬한 눈빛과 다부진 입술, 그리고 진실만을 말한다는 듯 가다듬은 목소리가 감동을 실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그런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듯 자포자기했던 삶의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는 알 수가 없어도 그가 있어 불치라 단념했던 신부전증이란 병이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소리 소문 없이 불어와 차디찬 땅에서 새싹을 틔우는 봄바람처럼, 홀연히 찾아온 그가 죽음에서 구원해줄 소식을 품에 안고 있어서 생명의 불씨를 되살려 줄 것 같은 느낌이 뜨겁게 가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느낌의 소리가 가만히 들려왔다. 인연은 우연찮게 오는 것, 그리고 인연은 운명적인 것이라 세속을 초월한 영혼만이 아는 것, 내 느낌은 자의로 지어 낸 것이 아니라 영혼의 발현이야! 하고 속삭였다.

수월은 그가 은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에도 생각 속에 잠겼다. 어느 사이 가슴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는지는 몰라도 그가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여인의 고향이 사랑이라서 그런 것일까? 먼 타국에 가있다가 돌아온 집도 병이 깊어 그런지 그리 행복한 보금자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온 얼마 뒤부터 깊은 병도 잊은 채 행복해한 자신을 돌이켜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알 수 없는 사이에 사랑이 똬리처럼 틀고 앉아 행복의 불씨를 모락모락 피워 올린 자신의 모습이 뚜렷이 그려졌다.

사실 그녀는 미국유학시절에 사귄 남자가 있었다. 의과대학 3년 선배인 그는 공교롭게도 신장전문의였다. 뛰어난 신장병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세계적인 의학 잡지에 여러 차례 논문을 발표해서 명성도 상당했다. 그러나 유일한 치료방법으로 보편화된 투석과 수혈이라는 고정관념 이외에는 신부전증을 치료할 그 어떤 방법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런 그가 귀국한 뒤에 어느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몇 차례 집으로 찾아오기는 했으나 요즘 들어 소식이 뜸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와 만날 때도 사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기다려지지가 않았다. 대학시절과 미국유학시절에도 그랬다. 10년 넘게 매우 가깝다면 가깝게 남다르게 지낸 사이였다. 그러나 그 긴 세월동안 만나면 즐겁기는 해도 가슴을 일렁이는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인연이 아닌 10년 지기도 하루 만에 만난 인연보다 사이가 깊지 못하다고 했을까? 그녀는 그렇게 자문해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을 멈추었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hs성북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