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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화의 '용광로' 이스탄불 신비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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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화의 '용광로' 이스탄불 신비로 가득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투어(17)-유럽 횡단(터키·그리스)

그리스의 아크로 폴리스
그리스의 아크로 폴리스
한국사람들 좋아하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들

금발머리와 푸른 눈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뒤로 하고 달려온 터키 이스탄불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검은 머리의 터키인들이 가득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위치했던 이스탄불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광대한 풍경은 실로 가슴이 벅찰 정도로 웅장했다.
과거 유럽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의 수도가 있었던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스탄불은 유럽의 끝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기독교 세계의 끝이자 이슬람 세계가 시작되는 문명이 충돌하는 곳이다.

유럽을 표방하며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유럽인들은 터키를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가입을 거부하고 있고 터키인들은 자국의 화폐를 선호하지 않고 유로화를 선호하며 유럽 경제권에 기대는 관광대국이었다.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괴롭힌 것은 뜨거운 태양도 복잡한 탁심 거리도 아닌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개혁)이었다. 환전을 하니 수천만 리라를 넘어 수억 리라를 받았다. 엄청난 돈을 받고 나니 부자가 된 것 같았고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음식을 시키면 음식 값에 수백만 리라를 지불해야 했다.

어느 곳에서는 단위를 없애고 새 화폐를 요구하는 곳이 있어 숫자들이 넘쳐나는 계산 때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화폐 개혁 전에는 평균 급여가 10억 리라가 넘었고 1달러당 1.5리라 하던 1940년대와는 달리 1달러가 130만 리라가 넘는다고 했다.

환전 초기 가방 안에 돈뭉치를 들고 다니며 마음껏 돈을 쓰고 나니 나중엔 다시 가난한 여행객이 되어 버렸다. 돈의 가치, 지폐의 가치에 대해 체험하고 환차익에 따른 투자를 체험하게 되었다.

결국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기 때문에 터키 사람들은 자국화폐를 모으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탁심광장의 터키인들은 열심히 케밥과 아이스크림을 팔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기독교 너머로 본 검은 머리 예수와 이슬람 문화


소피아성당의 예수그림
소피아성당의 예수그림
기독교 상징인 예수를 금발과 푸른 눈의 백인으로 평생 알아왔던 나에게, 소피아성당(아야 소피아)에서 만난 검은 머리와 검은 피부의 예수상은 나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 유대인인 예수의 얼굴이 금발이 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데도, 서양에서의 기독교는 아랍계 얼굴을 한 예수를 성상화한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인의 얼굴로 변한 것을 보며 인도에서 본 석가모니의 얼굴과 한국의 석가모니가 다른 것처럼 문화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진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사에서 알았던 오스만투르크와 오스만제국 그리고 터키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통해 축소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가서 전쟁을 치를 정도의 강력한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으며, 십자군 전쟁이 서방세계의 아름다운 기사들의 수도 정복이 아닌 약탈과 범죄, 탐욕과 치욕의 전쟁이었다는 다른 관점의 세계관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 거친 수염과 느끼하게 생긴 건장한 터키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어울리게 되니 신기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과의 우정에 대해 진심으로 친근하게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유럽 길거리에서 먹던 케밥 역시 유럽에서 통용하는 이름일 뿐 케밥의 종류는 수십 가지이며 케밥은 단순히 고기를 부르는 용어였다. 케밥을 달라고 하면 흔히 먹던 케밥을 주지 않고 다른 케밥을 주었고 우리가 먹던 것은 ‘되네르 케밥’이라고 해야 했다.

다리가 아프자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강을 넘었고 도착한 곳에 어둠이 오자 동생과 나는 ‘술탄 아흐메드’라는 우리가 머무는 곳을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와야 했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택시들도 보이지 않았다.

터키어를 흉내내며 길을 찾아 대로변에서 계속 강을 향해 걸었고, 몇 시간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수많은 유럽의 배낭객들이 터키 여행의 무용담들을 펼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터키 기념품을 파는 한국여성들은 배낭여행을 와서 터키남자를 만나 터키에 살고 있다고 했다.

산토리니의 해변가 뛰어다니며 여행의 기쁨 만끽


산토리니
산토리니
이슬람 세계를 벗어나 그리스로 향하는 기차가 갑자기 국경도시에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기차는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놓고 떠나버렸다. 그리스로 가는 기차는 하루가 지나야 한다고 했다. 숙소를 물어보니 그냥 국경에서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모기에 물리며 국경도시를 구경하는 우리는 터키 할아버지들이 머무는 식당에 가게 되었고 한국인임을 알게 되자 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다친 다리의 흉터를 보여주고 한국에서 돌보던 고아들이 있었다며 우리를 반겼다.

친절하게 모기약을 뿌려주고 몇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고 수많은 동료들이 한국에서 죽고 자신도 치열한 전투를 겪었던 한국전의 실상을 이야기 해주었다.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그리스에 도착하니 지하철과 새로운 건물이 많이 생겨났지만 발전이 더디고 느리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수많은 아프리카 불법체류자들이 가짜 시계를 팔고 있었으며 골목에는 파키스탄과 아랍계 이민자들과 수많은 관광객들 속에서 그리스 인들을 찾기 어려웠다. 경비를 아낄 목적으로 공원에서 노숙을 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에 들고, 새벽에 눈을 떠보니 동생이 사라졌다. 나는 너무 놀라 아테네 도시를 소리치며 동생을 찾아다녔다. 누군가가 대로에서 잠든 동생을 태우고 어딘가로 떠나 버렸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다.

산토리니
산토리니
범죄가 심해서 가끔 소매치기도 있고 강도도 많다는데 공원에서 잠을 청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몇 시간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펑펑 울면서 혹시나 공원에서 만날까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찾을 수가 없었다.

거의 포기하고 경찰을 부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동생이 나타났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수돗가에 갔고 거기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건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 아테네폴리스와 아테네의 고대유적들을 감상하고 산토리니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에 경비 예산을 늘려 좋은 호텔에서 자기로 하고 마음껏 지중해식 음식을 먹기로 했다.

포카리스웨트 광고 같은 파랗고 하얀 지중해의 건물들이 작렬하는 태양과 멀리보이는 바다 아지랑이, 그리고 깊고 푸른 ‘태양은 가득히’란 영화의 바다와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주었다. 한국의 섬들 역시 단순한 흰색과 파란 페인트와 동그란 건물 모양으로도 관광 명소가 되어 그리스인들이 방문하는 콘셉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그리스의 신화가 저절로 떠올랐고,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이야기들이 마음껏 뇌세포와 시각 세포를 자극하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밤새도록 산토리니의 해변가와 골목들을 뛰어다니며 여행의 기쁨과 나이와 소속을 잊고 그리스 섬을 만끽했다.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 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탈리아의 바리(Bari)로 향하는 대형 페리에 몸을 실었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