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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슈퍼사이클 위기 下] 태양광·전기차 외치면서 원료는 내몰라라…'자원 종속'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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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슈퍼사이클 위기 下] 태양광·전기차 외치면서 원료는 내몰라라…'자원 종속' 우려

정부, 자원외교 실패·적자 누적 이유로 공기업 해외개발 제동, 민간 활동마저 위축
"직접 개발 대신 민간 지원으로 역할 변경" 해명에 업계 "실패 경험 살려야"

구리·니켈·철광석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앞으로 30년 간 계속 오르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해외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서 해외 원자재 개발 투자와 확보에 앞장 서야 할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오히려 '모든 해외자산 매각'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자원외교 실패'의 책임과 적자 재정 타개를 위해 보유한 해외자산을 정리하라는 정부 정책에 따른 조치이다. 그럼에도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산 매각과 해외자원개발 중단 방침은 국내 민간기업의 해외자원 개발마저 위축시키는 부작용은 물론, 금속 원자재를 사용하는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어려움까지 가중시키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란 위기 국면에 해외자원개발의 맏형 격인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자원개발 현주소와 대안을 짚어보는 2회연속 기획을 마련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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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에너지로 전환과 4차 산업혁명 이행이 속도를 낼수록 태양광발전·전기차·3D프린터 등에 필요한 부품소재를 만드는 주요 금속광물자원의 수요가 더 많아진다.

미래 산업을 선점하는데 필수인 금속광물자원의 글로벌 수요가 앞으로 수십년 간 계속 증가할 것이란 전망에 중국·일본 등 경쟁국들이 해외 광물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해외자원 개발축을 맡은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해외광물자산마저 매각하는데 속도를 올리고 있다. 게다가,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원 직접개발 업무마저 차단하는 등 '족쇄'를 더욱 단단히 채우고 있어 업계를 중심으로 '원자재 슈퍼사이클' 위기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공기업 해외개발 막으니 민간기업도 덩달아 위축
지난 2018년 3월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해외자원개발 부실 원인규명 토론회'의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8년 3월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해외자원개발 부실 원인규명 토론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2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광물자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외 광물자원 개발률'은 지난 2012년 32.1%에서 늘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지난해 28%로 줄었다. 광물자원 개발률은 전체 광물자원 수입량 가운데 해외 자원개발로 확보한 광물자원량의 비중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와 장기간 개발에 따른 '부채 증가'를 이유로 정부가 2018년부터 광물자원공사에 보유 해외자산을 팔도록 하고, 신규 해외사업 추진을 금지시킨 결과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해외자원 개발의 총대를 멨던 공공기관의 손발이 묶이자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활동도 덩달아 위축됐다.

지난 2011년 석유·가스·광물 등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공공과 민간 전체의 투자액은 총 114억 1600만 달러(약 13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광물자원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 등 자원 공기업의 투자액은 전체의 약 62%에 해당하는 총 70억 3100만 달러(약 7조 9000억 원)였다.

그러나, 2019년 공공과 민간 전체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2011년의 18% 수준인 총 20억 6100만 달러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더욱이 자원 공기업의 투자액은 총 7억 2000만 달러로 민간보다 적었고, 2011년의 10% 규모로 급감했다. 2018년 3월 이후 신규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금지된 광물자원공사의 투자액도 ‘사실상 0원’이었다.

자원 공기업의 투자가 8년새 10분의 1로 줄어든 것과 비례해 민간기업 투자도 3분의 1 이하로 동반감소한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으로, 탐사 단계부터 생산 단계까지 근 10년에 걸쳐 1조 원 가량을 투자해야 하는 사례가 다반사이며, 그나마 개발성공 확률도 30% 안팎에 그친다. 물론 성공한다면 말그대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매력도 지닌다.

따라서, 리스크가 높은 해외자원개발에 광물자원공사 같은 공공 부문이 앞장서지 않는 한 민간기업이 주도해서 사업을 펼치기란 무리다.

더욱이 광물자원이 풍부한 중남미·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 정부는 상대국의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과 대화나 협상 창구를 여는데 소극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광물자원업계 관계자는 "해외 자원보유국 정부는 광물자원공사 등 상대국의 공공기관이 사업을 주도해야 신뢰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주 멜버른의 국제광물자원컨퍼런스(IMARC), 캐나다 토론토의 국제광업인연차총회(PDAC) 등 주요 국제회의에 참석해 보면, 중국·일본의 기관이나 민간기업들이 적극 참가해 시장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참여 기업이나 기관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즉, 문재인 정부 들어 자원개발 분야 대기업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중소기업은 이미 고사 상태라 민간 영역에서 해외자원개발 활동은 ‘사실상 스톱’ 상태라는 설명이었다.

◇ 정부 "직접개발서 민간지원으로 역할 바꾼 것 뿐"...업계 "실패 경험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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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심각성에도 정부는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산 전부 매각과 해외자원개발 기능 폐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달 열린 해외자원개발 혁신 제2차 태스크포스(TF)는 2017년 11월 제1차 TF가 권고하고, 2018년 3월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결정한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산 전부매각' 방침을 재논의하지 않았다.

코로나19와 현재의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도래하기 이전에 결정한 사안임에도 ‘이미 확정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논의 대상에 제외한 셈이다.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파나마 꼬브레파나마 구리광산,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등 최근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구리, 니켈 광산이 예외없이 모두 매각 대상이다.

더욱이 2차 TF는 1차 TF와 달리 매각이 지연되는 것을 막을 방안도 마련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월 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이 통합해 출범하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은 해외 광물자원의 탐사·개발·경영·투자 사업을 직접 할 수 없고, 출자나 민간기업 지원만 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0~2029년 자원개발 기본계획'은 '부실 자원공기업의 구조조정 계속추진'과 '민관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산 전부매각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각 프로젝트별로 사업성을 검토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며 "자원 공기업의 역할을 기존의 직접 투자에서 앞으로는 민간기업 지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일 것일 뿐 자원 공기업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자원 개발률 등 양적인 역할보다 자원안보 등 질적인 측면에서 자원 공기업의 역할을 고민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광해광업공단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장섭 의원실 관계자 역시 "통합 출범하는 광해광업공단은 민간기업 지원을 통해 해외 자원개발 활성화를 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간업계는 해외 자원개발사업에서 공기업이 중심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을 위한 주요 광물자원 비축·공급 정책에서, 주요 전략광종을 비축·공급하는 조달청은 국제시세보다 싸게 들여오기 어렵고, 기타 희귀금속을 비축·공급하는 광물자원공사는 비상시를 대비한 비축이라는 '전략비축' 원칙에 따라 현물임대·현물반납 방침을 유지하고 있어, 현재의 원자재 수급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에게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광물자원 비축·공급 정책을 개선하는 동시에 공공 주도의 해외 광물자원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신현돈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자원개발 분야는 탐사에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인 '리드타임'이 10년 이상으로 길고, 가격 변동 사이클도 장기라는 특성이 있다"며 "이러한 산업은 민간이 주도하기 어려운 만큼 공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단순한 비용지원 등 만으로는 민간기업이 적극 나서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공기업의 역할을 직접 투자에서 민간기업 지원으로 전환하더라도 실질적인 동반성장 효과가 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물자원산업협회 정강희 회장은 "광물자원공사는 부실경영의 잘못도 있지만 탐사기술 등에는 전문성을 갖고 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광산 개발에 실패해 본 경험을 가진 조직"이라며 "실패 경험도 자산인 만큼 광물자원공사에게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등 주요 해외자산은 매각을 중단하고 광업 전문가를 다수 양성해 글로벌 자원확보 경쟁에 대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