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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페트로 달러' 흔드는 中·러·사우디…美 "절대 용납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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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페트로 달러' 흔드는 中·러·사우디…美 "절대 용납못해"

러시아, 석유 루블화 결제 선언
사우디·중국, 위안화 결제 협의
원유거래 달러화 독주체제 흠집
미국 지배력 약화…붕괴신호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러의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러의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페트로 달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 러시아는 "러시아산 석유 또는 천연가스를 사려면 루블화로 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중국·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그 말대로 현재 러시아 에너지를 루블화로 구매하고 있다. 페트로 달러 체제가 일부 붕괴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의 패권을 둘러싼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페트로 달러에 대한 도전이자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도전이다.
지난 3월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수출용 원유 일부에 위안화 결제 도입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뜻은 심상치 않다. 사우디와 중국이 페트로 달러에 도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원유 거래는 달러화 독주체제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는 지금까지 달러로만 거래할 수 있도록 협의되었다. 이것이 바로 페트로 달러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강력한 힘은 상당수 페트로 달러 체제에서 나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페트로 달러가 흔들리면서 중국이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를 뜻하는 '페트로 위안'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전력이 러시아 견제에 집중되어 있는 틈을 노린 것이다.

중국은 '페트로 위안'으로 '위안화의 기축통화화(化)'를 노리고 있다.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국제 원유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낼 수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도 최근 미국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갑작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 등 사우디 안전보장에 대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중국은 사우디 원유의 4분의 1 이상을 수입하는 최대 수입국으로 앞으로도 꾸준한 협력 및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진짜로 사우디와 중국의 페트로 위안이 성립될 경우 '달러 기축통화 패권'이 덩달아 흔들릴 수 있다.

사실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달러의 무기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미국은 러시아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고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6300억 달러(약 765조원)를 동결시켜 사실상 돈이 있는데도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하는 등 전 세계에 강력한 달러의 힘을 보여줬다. 노골적으로 달러를 무기화한 것이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달러화를 "경제적 대량살상무기(WMD)"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달러화의 지나친 무기화·정치화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각 국가들이 자국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게 만들었다. 외환보유액 가운데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금이나 유로화, 위안화를 늘리는 경우도 생겼으며 기축통화로서의 위상도 약해졌다.

1974년 석유파동 이후 지금까지 석유 대금의 달러 결제는 세계경제의 불문율이었다. 석유는 금본위제를 탈피한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 핵심축이다.

그러나 미국·사우디 동맹은 2010년대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선 셰일오일 혁명으로 미국에서 석유가 생산되면서 중동 산유국의 가치가 하락했고 사우디는 외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사우디의 입장에서도 미국은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우방이 아니게 됐다.

이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때 사우디의 최대 적대세력인 이란과 핵 협정을 타결한 데 이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까지 해제하면서 중동에서 사우디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이란은 사우디 왕실에 큰 위협이 되었다.

실제로 이란은 이슬람혁명 수출로 이라크의 시아파와 민병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반군을 지원하는 등 사우디의 안보를 계속 위협했다. 게다가 예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사우디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기로 한 바이든의 결정은 사우디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안보 약속이 흔들린 것이다. 게다가 인접국인 사우디와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아프간 철수도 미국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지속적으로 사우디와의 관계가 하락한 미국에 반해 중국은 사우디와의 협력을 증대하고 있다. 사우디에 대한 중국의 누적 투자는 2021년에 434억7000만 달러(약 58조2000억원)까지 이르렀다. 협력은 단지 석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사우디가 자체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것을 도왔고,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협의했다"며 “사우디와 미·중 간 역학관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물론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지는 분명치 않다. 사우디 리얄화를 달러에 연동시킨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면 사우디의 기본 경제 시스템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여전히 사우디의 최대 무기교역국이자 안보보장국이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의 전통적 협조체제에 금이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러시아는 SWIFT 결제망에서 퇴출된 이후 자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받기 시작했고,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통해 달러를 배제한 결제 시스템 도입도 추진 중이다. 인도마저 러시아와 무역을 지속하기 위해 루피(인도 화폐)와 루블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전 세계 외환보유액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각국 중앙은행의 총 외환보유액(12조505억 달러)에서 달러 비중은 58.8%(7조871억 달러)였다. 1999년 71%에서 12%포인트나 낮아져 반세기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달러의 지배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며, 국제 통화 시스템도 파편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도 지난 3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두 개 이상의 기축통화 시스템을 보유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와 연합 전선을 구축해 그동안 달러로 결제했던 석유 거래에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했다. 지난 9월 중국 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과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달러 대신 위안화(50%)와 루블(50%)을 결제 통화로 사용했다.

물론 러시아는 현재 SWIFT 결제망에서 퇴출당해 정상적인 국가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쟁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석유 결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러시아·이란 등 미국과 척을 지고 있는 산유국들은 지나치게 크고 많은 원자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미국과 척을 지더라도 저렴한 가격의 석유와 자원을 수입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으로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위협받는 사태가 온다면 페트로 달러 체제의 주역이었던 사우디가 그 기폭제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달러에 대한 도전을 쉽게 용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다정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2426w@g-enews.com